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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미아리 텍사스

중앙일보 2012.12.07 00:19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홍등(紅燈) 빛에 반사된 회색 건물 무더기는 섬처럼 보였다. 한겨울의 새벽. 여명 직전의 어두움 속엔 위화감을 주는 그 홍등의 섬만이 떠 있었다. 막 종암경찰서 출입기자로 첫 출근하던 새내기 경찰기자에게 이 섬은 강한 인상과 의문을 던졌다. 그곳은 ‘미아리 텍사스’라고 불렸다. 20년도 더 된 얘기다.



 그 동네엔 큰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이른 새벽 겨우 눈곱만 떼고 출근했다가 기사를 마감하면 그 목욕탕에 가곤 했다. 그 무렵이면 한눈에도 그 섬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들은 둘러앉아 어느 족발집이 맛있는지 어떤 화장품이 좋은지 등을 이야기했다. 진하게 분칠한 외양은 낯설었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내 그들에게 익숙해졌다.



 한 번은 바로 옆에서 브러시 한 뭉치를 닦고 있는 손이 보였다. 일 때문에 뭔가 머릿속이 복잡한 날이었다. 그러다 그걸 보며 내 더러운 브러시를 떠올렸다. ‘내 브러시도 씻어야 하는데…’. 그러곤 잠도 부족한데 잡다한 생각까지 너무 많은 게 짜증스러웠다. 혼자서 이렇게 생각으로 속을 들볶다가 문득 그녀의 눈을 보았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짙은 마스카라 뒤의 총기 없는 눈동자엔 ‘무념무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눈빛이 있었다. 순간 묘한 충격이 오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형사들이 미아리 텍사스 단속을 나간다기에 따라나섰다. 텅 빈 유곽. 거울로 된 벽. 홍등밖에 없는 스산한 방. 싸구려 화학섬유로 만든 꼬질꼬질한 드레스. 그 ‘눈빛’이 퍼뜩 떠올랐다. 돌아오는 차에서 맥없이 투덜댔다. “단속보다도 저 더러운 환경부터 개선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의식 있는 여성’이라면 이 장면에서 성매매를 뿌리 뽑고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논했을 거다. 겨우 환경 개선 운운하는 건 욕먹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알게 된 게 있었다. 창(娼)도 일부 여성에겐 생계 수단이라는 것. 경찰이 적발해 돌려보냈던 미성년 성매매 여성이 다시 돌아왔다며 그녀를 경찰서로 끌고 온 포주, 성병에 걸려서도 건강이 아니라 영업 못하는 걸 걱정하는 여성을 보며 알게 된 거다. 먹고산다는 건 그토록 질기고 팍팍한 일이었다. 나라는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종암경찰서에 부임한 김강자 서장은 그 섬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그는 단속보다 성매매 여성 보호로 돌아섰다. 화대의 분배 비율을 정하고, 감금을 금하고, 휴일도 만들었다. 나오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나올 수 있도록 했고, 직업 자활도 도왔다. 그는 그렇게 집창촌의 질서를 만들어 갔다.



 또다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만들어진 ‘성매매 특별법’으로 성매매가 금지된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까지 소문난 ‘성매매 낙원’으로 통한다. 성매매는 아파트촌·오피스텔 등 어디로든 확산 중이고, 8조원대 산업 규모를 자랑한다. 여대생·주부까지 ‘알바’로 나선, 이 음성 거래 시장에선 위생과 인권 유린의 정도를 확인하지 못한다. 이 와중에 김 전 서장은 생계형 여성들을 위한 ‘제한적 공창제’를 주장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수요가 있고, 공급 의지가 있는 한 시장은 형성된다. 그건 자연법칙과 같아서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제도는 시장의 음성화를 막고, 그 시장에 생계를 맡긴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시장 밖의 반칙 행위들을 처단하는 것이어야 한다. 성매매 특별법은 집창촌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며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법 이후 그 섬의 여성들은 생계 터전에서 밀려났고, 풍선효과는 커지고 있다.



 물론 그 법이 다 문제도 아니고, 있는 법을 없애자는 건 과격하다. 하지만 반성할 때는 됐다. 이즈음에 이 법의 수호자와 당국자들이 생계형 성매매 종사자들과 진한 ‘토크 콘서트’라도 하면서 엉킬 대로 엉킨 성매매 산업 정리 방안과 생계형 종사자들의 생계 보장 대책을 다시 고민해보면 어떨까. 선한 정의감으로 불우한 이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은 인간 세상에서 종종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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