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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대선과 공성신퇴(功成身退)

중앙일보 2012.12.06 13:52
18대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지역에 연연하지 않고 인재를 널리 골라 쓰겠다는 탕평인사 공약이 돋보인다. 또한 집권하면 선거캠프에서 고생한 사람들에게 전리품처럼 한 자리씩 나누어 주기 인사도 지양한다고 한다.사람들은 공을 세우면 그 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으로 강제 퇴출을 당한다. 토끼가 사라지면 사냥개는 잡아먹히게 되어 있어 일단 공을 세우면 퇴출 당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자세가 좋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적시의 공성신퇴로 토사구팽도 면하고 새로운 인생 2막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2500여년전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재상 범려(范?)의 이야기이다. 범려는 본래 초(楚)나라(지금의 하남성 남양)사람이었지만 월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당시 월왕 윤상(允常)은 오(吳)왕 합려(闔閭)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월왕 윤상이 죽자 태자 구천(句踐)이 왕위를 계승하고 국상(國喪)을 치른다. 오자서(伍子胥)와 손무(孫武) 같은 인재를 등용한 오왕 합려는 이 기회를 이용 대군을 이끌고 상중(喪中)인 월을 침입한다.



위기에 몰린 월을 구하기 위하여 범려는 지혜를 짜낸다. 죄수들을 모아 자살특공대를 조직 공격해 오는 오나라 군대 앞을 가로 막게 한다. 그리고 일제히 칼을 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지극히 잔인한 수법으로 자살하는 월의 군사를 본 오의 장병들은 혼비백산한다. 그 소란을 틈타 범려는 저격수로 하여금 합려에게 활을 쏘아 맞힌다. 화살을 맞은 합려가 진중에서 죽자 왕위를 이어 받은 태자 부차(夫差)는 그 괴로움을 잊지 않도록 자신의 침대를 버리고 땔감더미에 누워 자면서(臥薪) 복수를 결심한다.



그 후 월왕 구천은 범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오왕 부차를 조기에 제압하고자 오를 공격한다. 그러나 오히려 크게 패하고 구천은 오왕 부차의 포로가 된다. 범려는 구천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 서시(西施)를 미인계로 바치고 오와 굴욕적인 맹서를 한 후 구천과 함께 귀국할 수 있었다. 범려의 덕에 살아 돌아 온 구천은 그 쓰라림을 잊지 않기 위해 쓸개를 맛보면서(嘗膽) 힘을 키운다. 월왕 구천은 범려의 작전대로 오왕 부차가 승리의 자만과 미인 서시에 빠져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틈을 타서 오를 다시 공격한다. 이번에는 오왕 부차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오는 춘추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월은 춘추의 5강(春秋五覇)이 된다.



범려는 성공한 구천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애인 서시를 찾아내어 먼 길을 떠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지금의 산동성 도현이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모두 잊어버리고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무역업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큰돈을 벌었다. 도주공은 자신이 번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중국의 큰 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큰 부자를 도주지부(陶朱之富)라고 부른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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