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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지역 전통문화 ① 도곡동 ‘역말 도당제’

중앙일보 2012.12.06 04:10 2면 지면보기
지난 10월 28일 도곡동 967-2번지 73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역말 도당제’가 열렸다. 이 날 유교식 제사에 이어 굿판이 벌어졌다. [사진 역말향우회]



마을수호신에 제사 … 주민들 함께 즐기는 동네잔치

고층 빌딩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강남. 이곳에도 전통의 맥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1970년대 초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자연부락은 자취를 감췄지만 마을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온 지역 전통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강남, 서초, 송파구 곳곳의 전통제사를 소개하는 ‘강남 전통 문화’ 연재 첫 번째로 도곡동의 마을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는 ‘역말 도당제’를 소개한다.



조한대 기자



도곡1동 주민센터 사거리에서 논현로를 따라 양재전화국 사거리로 내려오는 길 우측에 도곡 경남아파트가 보인다. 도곡동 967번지.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곳에 수령이 73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둘레가 810㎝, 높이가 22m에 이른다. 1968년 7월 3일에 보호수로 지정돼 강남구청이 관리하고 있다.



매해 9월 또는 10월이면 이 자리에서 ‘역말 도당제’가 열린다. 도당제는 주민을 지키고 마을의 안녕을 관장하는 마을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역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곳 마을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주요 교통수단인 현재와 달리 이전엔 주 수단이 말(馬)이었다. 말과 사람이 숙식을 해결하고 쉬어갈 곳이 필요했다. 이런 역(驛)이 있던 곳을 역말 또는 역촌이라 불렀다. 각 역은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주요 도로에 약 30리마다 있었다. 현재 도곡동도 역이 있던 곳이다. 지금 도곡 1동을 중심으로 2동, 역삼 1·2동 일부가 이에 해당한다.



마광수(68) 역말향후회장은 “역삼 2·3동을 방아다리, 포이동(현 개포동)을 산끝말, 밀미리라고 불렀는데 이런 마을마다 도당제를 열었다. 우리 동네는 120호가 모여 살아 주변에서 가장 크게 제사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마을 제사는 보통 음력 10월 1일에 열린다. 그러나 역말 도당제는 양력 9월 또는 10월 중에 한다. 올해는 10월 28일에 지냈다.



마 회장은 “음력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해서 이때 제사를 올렸지만 주민들의 집안 제사인 시제(時祭)와 날짜가 겹치고, 날씨가 추울 때라서 주민들이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90년대부터 9월 4째 주 일요일을 기준 삼아 예전보다 이른 날짜를 당주(무당)에게 택일 받는다”고 말했다.



마을 제사인 만큼 예전엔 준비에 드는 음식, 비용을 주민들이 함께 모았다. 주로 쌀을 거뒀다. 정해진 양은 없었다. 모은 쌀로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쌀을 팔아 다른 음식을 장만했다. 현재는 역말 원주민들로 구성된 ‘역말향우회’가 비용을 일부 부담한다.



마 회장은 “예전엔 마을 집집마다 쌀을 거뒀는데 보통 한 되나 두 되를 냈고 잘 사는 사람은 한 말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당제는 제사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마을 잔치와 다름 없다. 올해에도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가 돼서야 끝났다. 갓과 도포를 착용한 마을 사람들이 유교식 제사를 지낸 후 무당의 굿판이 벌어진다. 이 때 주민들은 이를 지켜보며 마을의 평온을 빈다.



김왕경(76) 역말향우회 고문은 “주민들이 제사를 위해 함께 일하고 모두 다 나와 즐기는 동네잔치다. 예전엔 밤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음식을 나누는 정도 잊지 않았다. 김 고문은 “옛날은 배고픈 시절 아니었나. 소머리를 과서 육수를 내 국수를 말아 나눠 먹었다. 제사를 하고 난 후 남은 과일, 떡 같은 음식은 주민들에게 일일이 나눠줬다”며 “지푸라기나 시대가 흐른 뒤엔 신문에 싸서 한 쪽씩이라도 100가구면 100개로 나눠 다 가지고 가게 했다”고 회상했다.



1970년대 초 영남개발이라고 불린 강남지역 개발이 시작됐다. 자연 부락이 아닌 도시 계획에 의한 행정구역으로 마을이 개편됐다. 이주민이 늘어났고 도당제는 원주민 중심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마 회장은 “도당제는 마을 형성과 역사를 같이 해왔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수백 년 전에 시작됐다. 종교를 떠나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그 위부터 내려온 지역 전통 문화다. 역말 원주민들이 모이는 구심점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주민이 늘어나고 개발이 되면서 예전에 비해 마을 주민들간 소통이 적고 인색해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강남구청 문화체육과 이철규(40) 주무관은 “2010년부터 매해 2000만원(시비 포함)을 지원해 주고 있다”며 “관이 주도해 지역 전통 문화의 명맥을 잇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지역민이 전통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있어 강남문화원의 신청을 받아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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