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수원 뇌물 요구? 잘 알지 않느냐”

중앙일보 2012.12.06 00:49 종합 8면 지면보기
“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얘기하느냐. 잘 알지 않느냐.” 원자력발전소 부품의 품질 보증서를 위조한 강진중공업의 관계자는 5일 “한수원·납품업체 직원 사이에 뇌물의 먹이 사슬이 형성돼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관행처럼 퍼진 ‘공생관계’가 부품 위조를 묵인하고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걸 시사하는 답변이었다. 이 업체는 7월에도 대표가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금품 살포 등의 혐의로 울산지검에 의해 구속기소됐던 곳이다.


원전 부품업체, 유착 의혹 질문에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얘기하나”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강진중공업은 지난해 9월 고리원자력발전소 ‘냉각해수펌프’ 등에 들어갈 7종류 부품의 품질 보증 서류를 위조했다. 전에 받아놓은 시험성적서를 복사하거나 스캔한 뒤 일련번호와 날짜 부분에 다른 숫자를 오려 붙였다. 이 종이를 다시 복사하고 나서 검사업체 명의의 가짜 직인을 찍어 감쪽같이 꾸몄다. 강진중공업은 2010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이런 수법으로 83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판매 부서 직원들이 원전이 정한 납품 기한에 쫓기다 보니 이를 놓치면 실적을 추궁당할까 봐 위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영광·울진 원전에 이어 고리 원전 3·4호기에도 ‘짝퉁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사진은 부산 기장군의 고리 원전 3호기 전경. [중앙포토]▷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성산업도 지난해 9월 ‘디젤엔진용 실린더헤드’ 등 원전 부품을 납품하면서 4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했다. 수법은 같았다. 부품 납기일을 20일도 안 남긴 상태에서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으로부터 ‘부품이 국가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시험 결과를 통보받자 예전 서류를 이용해 위조 성적서를 만들었다. 규정대로라면 이 부품은 한수원 산하 23개 원전에 납품할 수 없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제기했던 정우택(새누리당) 의원은 “두 회사가 체결한 부품 계약은 106억원 규모”라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짝퉁 부품의 성능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분석 중이다.



 감사원이 5일 발표한 원전 분야 ‘국가핵심기반시설 위기관리실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수법은 교묘하면서도 대담했다. 두 회사가 5년간 한수원에 납품한 ‘짝퉁 부품’은 180개 품목, 1555개에 달한다. 가짜 품질보증서를 단 부품은 고리원전 3·4호기 등에 납품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민관 합동조사단은 이 가운데 8개 품목, 12개 부품의 경우 고리 2호기와 영광 1·2·3·4호기 핵심 설비에 이미 설치돼 있는 것도 확인했다.



 강진중공업은 입찰 과정에서 담합도 했다. 납품가격을 올려 한수원으로부터 돈을 더 받아내려는 목적이었다. 지난해 6월 입찰 마감일을 2~3일 앞두고 직원을 보내 ‘들러리’ 업체에 입찰서류를 전달했다. 마감일 아침엔 전화로 응찰 가격까지 알려줬다. 이 회사는 한수원으로부터 낙찰자 선정 통보를 받기도 전에 부품 생산을 위해 소재 공급업체에 먼저 하청 주문을 넣기도 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위조한 비파괴 검사 성적서 등이 부품의 성능과 관련 있는지에 대해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계속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부품 위조뿐 아니라 절도에 가까운 행위도 적발됐다. 한수원 고리원전의 직원 2명은 원전 부품 납품업체 대표와 짜고 현장에 보관하고 있던 ‘저압터빈 밸브’ 등의 예비부품을 빼돌렸다. 무단 반출한 부품은 업체가 보관하고 있다가 새 제품인 것처럼 꾸며 원전에 다시 납품했다.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이런 수법으로 횡령한 부품대금은 16억원이나 됐다. 이 돈은 한수원 직원과 업체 대표가 나눠 챙겼다. 조사 과정에서 적발된 한수원 직원 중 한 명은 지난 2월 자살했다. “원전의 특수성 때문에 한수원 현장 직원과 협력업체의 유착이 쉽게 발생할 수 있었는데도 감독과 내부통제는 부실했다”고 감사원 관계자는 지적했다.



 원전 안전검사와 정비 역시 부실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한수원이 현장 검사 횟수를 임의로 줄이거나 정비기간을 단축한 사실을 감사원이 적발했다.



 또 감사 결과 지난 2월 발생한 고리원전 1호기 정전 사고는 외부 용역업체 직원이 절차를 무시하고 품질검사를 실시하면서 발생한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2007년 4월 고리 1호기 정전 사고 때 비상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았는데 수년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를 키웠다. 한수원은 정전 사고가 발생하고 난 뒤인 지난 6월 비상발전기를 보완했다.



김준술·조현숙 기자



◆냉각해수펌프와 저압터빈밸브=냉각해수펌프는 원전 설비를 식히기 위한 바닷물을 순환시키는 기기다. 저압터빈밸브는 발전기 안의 터빈에 들어가는 증기량을 조절하는 장치다. 터빈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