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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보를 부끄럽게 하는 가짜 진보

중앙일보 2012.12.06 00:28 종합 34면 지면보기
보수가 인간의 본성을 중시한다면 진보는 인간의 이성을 신뢰한다. 보수가 역사의 전통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진보는 역사의 발전을 믿는다. 진보의 이성은 열려 있고, 그 역사는 상향(上向)적이다. 진보의 이런 속성 때문에 젊은이의 가슴은 설레고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박수를 받곤 했다.



 역사의 진전에 동력을 부여해 온 진보의 가치가 어제 통합진보당이란 거짓 진보의 저질(低質)·종북(從北)성에 가차없이 유린당했다. 통진당 이정희 후보가 대선 TV토론에서 드러낸 언행은 황금시간대에 가족과 함께 방송을 시청하던 유권자에게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한국의 대선 후보인가’ 하는 수치심을 안겨줬다. 인터넷 댓글 수준의, 배설한다는 느낌을 주는 무례와 맹목적 증오가 학생과 청소년에게 미칠 국민교육적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무엇보다 통진당 후보는 진보의 이름으로 저질·종북·거짓·선동·궤변·억지를 부림으로써 이 땅의 진짜 진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통진당 진보는 열린 이성을 언어폭력으로 막아버렸고, 역사 발전을 종북선언으로 후퇴시켰다.



 통진당의 대선 후보는 자신에 대한 불리한 질문엔 “됐습니다”로 상대방의 말허리를 자르고,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라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 잔인한 언어는 많은 사람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계획, 천안함 폭침·연평도 공격의 책임을 묻자 통진당 후보는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지칭함으로써 그들의 도저한 종북성을 표출했다.



 지지율 1%도 되지 않는 통진당 후보의 발언들은 토론에 참석한 박근혜·문재인 후보에 대한 무례일 뿐 아니라 이를 보는 유권자 전체를 조롱하는 국민 모독이 아닐 수 없다. 통진당의 폐쇄성과 후퇴성은, 북한 왕조체제를 한국 현대사의 정통으로 보는 자학적 역사관과 수령주의 조직관과 무관치 않다 할 것이다.



 이런 정치세력에게 국회의원 5명 이상이 있다는 이유로 꼬박꼬박 매년 27억원 이상의 국민세금을 국고보조금 명목으로 제공하고, 이번 대선에선 또다시 후보 개인에게 27억원을 지원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허점은 없는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국이 눈부신 산업화와 경이로운 민주화를 차례로 이루면서 얻은 역동적인 이미지는 ‘진보를 부끄럽게 하는 자칭 진보’ 세력에 의해 상처받고 있다.



 영국 노동당의 정신인 페비안사회주의의 열린 이성과 독일 사민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킨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년)의 개방성은 진보다운 진보가 어떤 영혼을 간직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통진당 같은 거짓, 무례, 종북 진보에 간판을 내준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진보다운 진보를 세워 공동체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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