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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선판 뒷전으로 밀린 외교안보

중앙일보 2012.12.06 00:24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대선판에서 외교안보가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동맹외교냐 균형외교냐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던 지난 대선 토론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워낙 경제·복지 이슈가 심각하다 보니 생긴 현상인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대선에서도 외교안보 이슈가 차지한 비중은 2% 내외였다. 대선판이 경제정책을 둘러싼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재선에 성공한 후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은 나라 만들기에 전념할 때’라고 말했다. 외치보다 내치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초강대국 미국과 처지가 다르다. 국가의 명운을 달리할 수 있는 불안정한 외교안보적 긴장 속에 살고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흑과 백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미국은 회색을 택해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국제적 미아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얼마 전 한 출판기념회에서 전직 경제각료를 지낸 분이 축사 중에 던진 의외(?)의 해답에 귀를 의심한 적이 있다. ‘다음 정권이 생명력을 갖출 수 있느냐 없느냐는 외교안보 팀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요즈음 경제 하는 분들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다.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외교안보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고 있다.



 지금 동북아시아 지역은 전에 없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의 센터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냉전적 갈등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관할 수만 없는 현실이다.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분쟁의 불씨 때문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중국의 부상, 영토 문제를 둘러싼 한·일, 중·일 갈등,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등이 그런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방파제를 이용해 이런 불씨가 발화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 우리 외교안보의 과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대선판에서 이런 과제에 대한 전략 토론이 들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 브레인에게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이 흥미롭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누가 정권을 잡든 밀려드는 이슈에 OJT(on-the-job training)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은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전체를 일관하는 전략성이 결여된 OJT방식의 대응은 자칫 잘못하면 산산조각으로 흩어진 대책의 양산으로 나타날 위험이 있다. 특히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른바 자카리아가 말하는 ‘멀티 파트너’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냉전의 양극구조나 미국의 일극구조하에서는 한·미 동맹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였다. 하지만 한·미 동맹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대신 멀티 파트너의 세계에서는 이슈에 따라 여러 나라들과 협력관계를 탄력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동맹으로서의 한·미 동맹을 외교안보 기축으로 삼아 온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실험이 아닐 수 없다. 가치가 다른 나라와도 협력하며 국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대한 외교안보 도전인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의 양곤대학에서 북한의 리더십에 대화의 시그널을 보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택한다면 미국은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그동안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던 입장을 수정하는 모양새다. 1기에 압박 정책을 펴다 2기에 관계개선 정책으로 돌아섰던 클린턴 정권이나 부시 정권과 유사하다. 더 이상 ‘자유’라고 하는 가치를 내걸고 북한을 몰아붙이지 않겠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여러 파트너와 함께 북한에 대해 서서히 압력을 가하면서 대화로 이끌어내는 ‘현실주의’ 정책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나라의 안전을 지킬 것인가. 정치가 짊어져야 할 최대의 책무다. 전략 없는 OJT로 이런 책무를 감당할 수는 없다. 때문에 멀티 파트너 시대에 걸맞은 제3의 전략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하되 ‘동맹’과 ‘균형’을 넘어서는 멀티 파트너십 전략이다. 이의 필요성에 대한 여야의 인식공유라도 대선판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외교안보가 계속 뒷전으로 밀리면 생명력 있는 정권이 탄생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장 달 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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