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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내가 몸 던져야 공격이 살지요

중앙일보 2012.12.04 00:31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해란은 수비의 핵인 리베로에서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리베로들은 몸을 던지기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만 나와서 영 별로”라고 푸념하던 그는 잘 나온 얼굴을 찍겠다는 말에 웃어보였다. [성남=김도훈 기자]
팬들은 환호한다. 스파이크가 코트에 내리꽂힐 때마다. 그리고 집중한다. 상대편 공격을 완벽한 블로킹으로 잡아낼 때마다. 하지만 모른다. 그 모든 출발점이 몸을 날려 상대 공격을 받아내는 디그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여자 프로배구에서 상대의 공격을 가장 많이 퍼올린(dig) 선수는 도로공사의 김해란(28)이다. 프로 10년째인 그는 3일 현재 역대 통산 디그에서 ‘라이벌’ 남지연(29·IBK기업은행·3954개)을 제치고 독보적인 선두(4880개)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성남의 훈련장에서 ‘디그 여왕’ 김해란을 만났다.



 “경기 막판 나오는 디그는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전율이 있어요.”



 김해란의 말에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는 실제로 팀의 중심이다. 어창선 도로공사 감독은 “팀 전력의 30~40%를 차지하는 게 바로 김해란”이라고 말했다. 김해란은 대표팀에서도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지난 8월 런던 올림픽에서 그는 주전 리베로(수비전문선수)로 뛰며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한국 여자배구 4강 신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김해란도 어린 시절엔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를 꿈꿨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배구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센터를 맡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하나씩 그의 키를 넘어섰다. 게다가 발목까지 다쳤다. 남들보다 작은 키와 갑작스레 찾아온 부상. 김해란이 리베로로 전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그는 리베로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뒤늦게 시작한 만큼 ‘악바리’가 됐다. 어 감독이 “쉬라고 해도 굳이 연습에 나와 동료들보다 더 열심히 뛰고 더 늦게 들어간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황연주(26·현대건설) 등 까다로운 왼손 선수의 서브를 받기 위해 왼손잡이 후배에게 일부러 서브를 부탁하기도 했다. 경기에선 단순히 리시브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세터와 공격수까지 이어지는 그림을 그린 뒤 그 시작점이 되기 위해 고민했다.



 “리베로는 5~6년은 뛰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그는 말했다. 처음부터 리베로를 택한 것은 아니지만 최고가 됐다는 자긍심이 묻어났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데다 “못하면 욕 먹고 잘해야 본전”이라고 할 만큼 힘든 적도 많았다. 하지만 좋은 수비로 팀이 이기면 그런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내년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계획이에요. 그래도 코트엔 계속 서야죠. 내친김에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주전으로 나가서 디그상 받고 … 음, 그다음엔 ‘딱’ 은퇴할래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의 꿈은 여전히 반짝인다.



성남=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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