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조 한류 스타 안재욱의 녹슬지 않은 힘!

중앙선데이 2012.12.01 23:56 299호 21면 지면보기
유료점유율 93%, 주간예매율 1위를 달리며 관객몰이 중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그 흥행코드의 비밀은 원조 한류 스타 안재욱(41)을 바라보는 한국 팬과 한류 팬의 다른 듯 닮은 시선에 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딱히 안재욱이 문제가 아니다. 이 작품은 올해 뮤지컬상을 휩쓴 ‘엘리자벳’의 번외편 격인 만큼 그 차별화가 관건이다. 전설적인 미모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황후 엘리자벳의 일대기도 흥미롭지만, 객석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 관객들로선 황태자 루돌프의 비극적 러브스토리에 더 혹하는 법. 황태자의 실감나는 사랑 표현이 관전 포인트라 할 만하다.

컬처#: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의 성공 포인트

공연 전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황태자라니, 황제가 되고도 남을 연륜 아닌가? 더구나 ‘엘리자벳’에서 보았던 저 나약한 루돌프라면…. 아무리 티켓파워가 있다지만 안재욱은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랬다. 안재욱은 ‘엘리자벳’의 루돌프가 아니었다. 흑백사진 속 실물의 유약한 이미지와도 전혀 달랐다. 역사의 갈림길에 처한 고뇌와 죽음도 불사한 사랑에 뛰어드는 순수가 중첩된 캐릭터는 오히려 카리스마를 뿜으며 여심을 흔들어댔다.

황태자는 몸소 땅으로 내려왔다. ‘엘리자벳’에서 19세기 말 합스부르크 제국에 감돌던 멸망의 기운을 상징하는 주인공'토드'의 퇴폐적 화려함은 없었다. 대신 황태자는 군중 속에서 가난한 여인 마리 베체라와 스케이트를 타고 빙판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친근하게 다가왔다.음악도 귀에 착착 붙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의 프랭크 와일드 혼 작곡답게 우리 입맛에 맞는 감성적인 발라드 열전은 ‘엘리자벳’의 신비롭고 초월적인 넘버들보다 진동은 덜했으나 여운은 길었다. 타고난 운명에 고뇌하면서 사랑으로 돌파구를 찾는 루돌프의 행보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죽음’과 평생 ‘밀당’한다는 엘리자벳의 그것보다 설득력이 강한 것은, “나는 나만의 것”이라 배부른 소리를 외치는 왕비의 자존보다 “마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결의하는 왕자의 헌신에 격하게 전율하기 때문. 지킬 앤드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넘버 ‘날 시험할 순간’조차 사랑을 향해 있었다.

역대 최다로 추정되는 키스신과 디테일한 애정표현은 진정한 ‘손발이 오그라듦’을 체화케 했다. 빙글빙글 빙판을 돌며 “하하호호” 웃어젖히거나 “날 위해 태양을 따 달라”는 둥 유치찬란한 대화가 오갈 때는 ‘저것들 왜 저러는 걸까?’ 싶다가도 부서지는 별빛과 새하얀 눈발 속에 두 손을 맞잡고 “넌 처음부터 날 찾으러 세상에 왔나 봐”를 듀엣할 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겉으론 야유와 조소를 보내면서도 내심 부러웠던 거다. 남편이 옆에 있어도 옆구리가 시리다고, 저런 사랑이 그립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왜일까?

답은 객석을 가득 메운 한류 팬들이 쥐고 있었다. 저들이 자막도 없는 공연에 완전 몰입할 수 있는 건 황태자 휘장을 두른 안재욱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안재욱이 누군가.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2000년대 초부터 아시아를 누빈 ‘원조 한류’다. 우리로선 공감이 쉽지 않지만 한류 팬들에게 한류 스타란 자기 나라 어디에도 없는 완벽한 판타지로서의 남성상, 곧 ‘백마 탄 왕자’의 화신일 터.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토하는 백발 성성한 일본 할머니 팬들 모습에 영화 ‘늑대소년’의 순이가 떠올랐다. 아니, 왕자의 모습으로 현현한 안재욱을 맞이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그녀들에게서, 47년 만에 하나도 늙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늑대소년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던 내 안의 소녀를 발견했다.

봉인된 문의 빗장을 열면 백마 탄 왕자가 굳건히 기다리고 있길 꿈꾸는 마음은 조카뻘 한류 스타를 응원하러 현해탄을 건너는 심리와 샴쌍둥이처럼 닮았다. 늙지 않은 것은, 아니 변하지 않은 것은 늑대소년이 아닐 것이다. 내가 꿈꾸던 모습의 ‘왕자님’이 내 앞에 나타나 주길 바라는 소녀의 마음, 호호백발 할머니가 돼서도 여전한 그 마음일 뿐.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랑에 아직도 감전되는 이유다. 순이 할머니가 늑대소년을 뒤로하고 돌아오면서 결코 집을 허물 수 없었던 것처럼, 극장을 나서는 우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왕자를 나만의 문 안에 다시 가둔다. 또다시 빗장을 활짝 열어줄 작품을 기다리면서.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