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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세상탐사] 검찰 갈등은 왜 전쟁으로 번졌나

중앙선데이 2012.12.01 23:54 299호 31면 지면보기
기자에겐 직업병이 있다. 자꾸 질문을 해대는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도 어떤 화제가 나오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묻는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모든 사실을 이른바 ‘6하 원칙’에 맞게 파악하도록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상대로 취재하고 있는 거냐”고 무안을 당하고 나서야 질문을 멈춘다.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로 이어진 검찰 분란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검사의 직업적 특성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이번 사태의 주역은 한 총장과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이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긴밀한 관계로 알려져 왔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결정적인 원인은 최근 뇌물수수 검사 파문, 성추문 검사 사건에 대한 대응을 놓고 생긴 균열이었다. 한 총장은 ‘중수부 폐지’ 카드를, 최 중수부장은 ‘총장 용퇴’ 카드를 각각 제시했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한 총장이었다. 지난달 28일 대검 감찰본부가 “최 중수부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김광준 검사에게 언론 대응 방안을 조언한 의혹이 있다”며 전격적으로 감찰조사 사실을 발표했다. 한 총장이 대검 간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공개 감찰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다. 앞서 최 중수부장이 김 검사 관련 첩보를 입수해 한 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점에서 무리한 측면이 강했다. 이에 최 중수부장은 “총장 진퇴 문제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총장과) 의견 대립이 있었다”며 정면으로 맞섰다. 뒤이어 대검 간부들이 한 총장 용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최악의 검란(檢亂)으로 치달은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두 사람이 예상을 뛰어넘는 강수를 두고 나왔다는 점이다. 정부 부처나 기업과 같은 조직에선 목격할 수 없는 장면이다. 대체 검사들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검사는 수사하고 기소하는 직업이다. 수사는 자존심을 건 싸움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양쪽 입장을 듣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판사와 달리 한쪽 입장에 서서 유죄를 받아내야 한다. 검사는 재판 결과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곤 한다. 승부 근성이 직업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 특성이 검찰 내부의 갈등을 전쟁으로 번지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충돌한 한 총장과 최 중수부장 모두 조직 내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럼에도 자존심이 걸린 대결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최 중수부장에 대한 공개 감찰 직후 한 총장 사퇴론이 확산된 데는 최 중수부장에 대한 검찰 내 평가가 크게 작용했다. 어느 검사는 “최 중수부장은 비슷한 기수의 동료들까지 ‘미래의 검찰총장 감’으로 꼽을 만큼 뛰어난 수사 능력과 인품을 갖춘 검사다. 그런 사람을 총장이 찍어내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다”고 전했다. 핍박하는 자와 핍박당하는 자의 선악(善惡)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검찰과 검사의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국가기관에서 인격 대 인격으로 부닥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특히 대검 간부들이 한 총장에게 ‘명예로운 용퇴’를 건의하고 한 총장이 거부 입장을 드러낸 지난달 29일 오전의 상황은 검찰 역사에 크나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제도로서의 검찰, 공조직으로서의 검찰은 사실상 붕괴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검찰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검사의 캐릭터가 제도보다 더 크게 보이는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총장이 누구냐, 서울중앙지검장이 누구냐, 중수부장이 누구냐에 따라 시시각각 수사 방향이 바뀌고 조직 운영이 달라져선 안 된다. 검찰은 오직 국민을 위해 정의와 법적 안정성을 지키는 곳이다. 조직 안에 있는 각기 다른 개성을 살리되 그 개성들이 조직, 나아가 제도를 흔드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번 분란에서 검찰이 얼마나 특권의식에 함몰돼 있는지 실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어떻게 전 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쟁을 벌일 수 있느냐. 그만큼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얘기 아니냐”는 것이다. 한 공무원은 “검찰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권력자라는 의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검찰 조직 앞에는 ‘외부로부터의 개혁’이란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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