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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증권에 담은 소중한 약속

중앙선데이 2012.12.01 23:32 299호 23면 지면보기
매우 장식적인 디자인에 섬세함을 더한 레이블, 한눈에 봐도 다른 와인 레이블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잘못 보면 달러 화폐로 착각할 수 있는 디자인인데 세로가 긴 직사각형이라 더욱 비슷하게 느껴진다. 정말 화폐와는 아무 연관성도 없을까. 이 고상한 레이블의 주인공은 ‘본드(BOND)’.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오크빌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미국 최고의 컬트 와인 중 하나인 할란(Harlan)이 기획해 만든 와인이다. 그 때문에 본드의 모든 와인은 할란이 사용하던 옛 양조장에서 할란을 양조하는 멤버들에 의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본드란 이름은 빌 할란 할머니의 처녀 때 이름. 양조장 이름을 구상할 때 좀 더 가족적인 이미지를 갖기 위해 사용했단다. 할란 와인은 가족의 ‘아버지’ 같은 든든한 중심적 이미지로, 본드는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감성의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연출됐다.

김혁의 레이블로 마시는 와인 <5> 본드(BOND)

본드 와인은 가족의 특별한 철학을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변할 수 있는 독특한 레이블이 필요했다. 당시 빌 할란은 은행이 만드는 지폐 인쇄 예술에 특히 관심이 있었다. 본드란 단어에 채권이란 의미가 있어 와이너리의 철학과 연결되는 본드의 오리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지폐의 음각 예술이 세계적으로 중요 비밀 문서(주식과 채권)를 인쇄하는 데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고 자신의 독보적 와인과 연결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오래된 본드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켄터키와 오하이오 철도회사에서 1870년 발행된 미합중국 본드 증권을 발굴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 증권을 인쇄한 회사는 미국 지폐를 인쇄한 원조 회사로 1913년 연방 조폐국이 설립되기 전까지 달러를 인쇄한 회사였다. 어쨌든 이렇게 얻은 원조 증권을 수년 동안 디자인적인 재작업을 통해 1870년대의 아름다움과 본드 와인의 특성을 살려내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우선 맨 위에는 빈티지가 씌어 있고, 그 아래 젊은 두상 조각 둘레에는 의무·우정·개성이란 단어가 각각 새겨져 있다. 중간엔 나파밸리와 더불어 와인을 만든 싱글 포도밭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 아래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본드만의 공약을 명시했다. “Bond는 최고의 빈야드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며, 그곳의 테루아를 가장 잘 표현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현재 본드는 모두 5개의 서로 다른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되고, 병마다 생산된 포도밭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이들 와인은 각 포도밭이 갖고 있는 최고의 특성을 병 속으로 옮겨놓은 본드 와이너리만의 철학을 잘 대변하고 있다. 모든 와인은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다. 따라서 각 포도밭의 유일한 개성만이 이름이 서로 다른 본드 와인을 구별짓게 한다.

레이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은 달러와 유사한 촉감의 종이 재질을 사용했으며, 각 와인에 특별한 색을 부여한 것이다. 이를 위해 달러 인쇄에 사용하는 특수잉크를 사용해 빈야드마다 다른 색을 사용했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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