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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고 또 속이는 우리네 인생 그 씁쓸함에 대하여

중앙선데이 2012.12.01 23:29 299호 24면 지면보기
국립오페라단이 최초로 ‘유쾌한 오페라’ 오페레타에 도전했다. 창단 50주년을 맞아 ‘국민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박쥐’는 19세기 말 빈 오페레타 황금시대 최고의 작품. 세계 유명 오페라극장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밤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송구영신 레퍼토리다. 화려한 음악과 신나는 왈츠, 배꼽 잡는 웃음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털어버리고 가자는 의미다. 국립오페라단도 올해를 시작으로 ‘박쥐’를 연말 고정 레퍼토리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국립오페라단 오페레타 ‘박쥐’, 11월 28일~12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레타란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오페라보다 쉽고 가벼운 분위기로 작곡된 작품들이다.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의 1858년작 ‘천국과 지옥’에서 비롯된 후 빈으로 전해져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의해 꽃을 피웠다. 신화나 전설을 소재로 하는 오페라와 달리 동시대 이야기를 대중적이고 희극적으로 다루는 것이 특징. 대사와 춤을 적극 활용한 형식이 오페라와 연극의 경계로도, 오페라에서 뮤지컬로 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박쥐’의 매력은 진지한 음악과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맞물려 빚어내는 아이러니에 있다. 아름다운 아리아 선율에 속물스러운 가사를 입혀 예술의 권위를 스스로 꼬집는다. 12월 31일 저녁부터 1월 1일 새벽까지, 딱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기가 막힌 상황극은 국민연극 ‘라이어’식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원조를 보는 듯하다.
서로 딴생각만 하고 사는 아이젠슈타인과 로잘린데 부부가 고작 8일간의 이별을 앞두고 애절한 슬픔을 연기하며 사소한 거짓말로 각자 바람 피기를 시도하지만, 친구 팔케 박사의 계략에 휘말려 서로 속고 속이기를 거듭하다 온 동네 망신을 당한다는 얘기. 가면을 쓴 자기 아내도 못 알아보고 추근대는 남편, ‘지루해 하고 권태로워 하는 건 남편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거나 감옥의 죄수들을 쥐에 비유한 ‘은행가들은 남의 돈을 빼돌리쥐, 정치인들은 선거공약을 금방까먹쥐’ 등의 대사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가 넘친다.

2막 오를로프스키 공작의 카바레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샴페인 병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샴페인 거품, 정체를 속이고 향락을 즐기다 급기야 샴페인 잔에 빠지는 아이젠슈타인은 거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거품에 잠겨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이다. ‘술 마시고 잊어버리자, 바꿀 수 없다면 잊고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며 고단한 현실을 쾌락으로 덮으려 하고, 결국 모든 과오를 샴페인 탓으로 돌리며 막을 내리는 결말은 한바탕 웃음 속에 인생의 짙은 페이소스를 엿보게 한다.

어설픈 코믹 연기…더 망가지는 연습을
영국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제노바오페라 등에서 ‘박쥐’를 단골로 연출해 온 ‘박쥐 연출의 대가’ 스티븐 로리스는 한국 초연을 위해 원작의 1870년대를 1920년대 대공황기로 바꾸고 무도회장을 카바레로 옮기는 등 공감대 형성에 주력했다. 특히 한국화에 공들인 흔적이 뚜렷했다. 삼겹살과 김치, 소주가 등장하고 독일어 대사 중간 중간에 유머코드는 상당 부분 한국어로 처리해 자연스러운 폭소를 유도했다. 주인공이 말춤을 추거나 “궁금하면 오백원~” 등 최신 한국의 대중문화를 반영하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개그맨 김병만도 노래 없는 간수 프로쉬로 출연해 자연스러운 몸개그로 분위기를 띄웠다. 리처드 버클리 스틸, 파멜라 암스트롱 등 유명 오페라가수들이 한국어 개그를 하고 말춤을 출 땐 달라진 한국 문화의 위상에 대한 격세지감과 함께 클래식의 권위를 벗어 던지고 대중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미는 예술가들의 고민이 와닿았다.

그러나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할 때 연기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박쥐’의 대표곡 로잘린데의 ‘고향의 노래여’, 아델레의 ‘존경하는 후작님’ 등 오페라가수 본연의 임무인 아리아를 부를 땐 귀가 호사스러웠지만 코믹연기는 대체로 어설프고 어딘지 합이 맞지 않아 음악과 연기의 화학반응이 없었다. 희극연기가 가장 어려운 연기라며 궁색한 변명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뮤지컬도 수준이 높아져 연기파 배우들이 성악가 뺨치는 가창력을 뽐내는 상황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작정하고 내려온 이상 망가지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그래야 프로 예술가답다. 예술과 예능의 진정한 크로스오버를 위한 고민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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