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류의 혼잣말

중앙선데이 2012.12.01 22:26 299호 30면 지면보기
“삼류네, 삼류.” 아내는 한 회만 보면 그 드라마가 삼류인지 아닌지 단박에 안다. 단 몇 장면만 보고도 그걸 어떻게 아는지 나는 궁금했다.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다. 혼잣말이 많은 드라마는 삼류라는 것. 삼류 드라마의 주인공은 혼잣말이 많다. 그는 연기하지 않는다. 표정이나 행동으로 연기하는 대신 혼잣말로 설명한다. 마치 극본 괄호 속의 지문을 그대로 읽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아예 주인공이 혼잣말로 해설하는 드라마도 있다. 지난 줄거리를 요약하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내가 일류로 치는 드라마는 예를 들면 영화 ‘대부’다. 소니가 속마음을 상대에게 말하자 돈 콜레오네는 아들에게 충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 말에 따르면 그건 삼류 드라마에 주는 경고라는 것이다. 아내는 양 볼에 사탕을 문 것 같은 말런 브랜도 흉내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너 정신이 있는 거냐? 네 생각을 절대 드러내지 마.”

삼류 드라마라고 해서 아내가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내가 즐겨 시청하는 드라마는 대부분 자신이 혀를 차는 삼류 드라마다. “세상에 혼잣말을 저렇게 많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비현실적이야. 완전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정말 비현실적인 것은 혀를 차면서도 끝까지 그 삼류 드라마를 보는 아내인데.
나는 슬그머니 아내에게 미안해진다. 세상에는 혼잣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바로 아내 코앞에.

점심 회식 때 박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부장님, 왜 그렇게 혼잣말을 많이 하세요?” 옆에 있던 이 과장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저도 몇 번이나 저한테 말씀하는 줄 알았어요.” 나는 당황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내가 무슨 혼잣말을 한다고 그래요. 난 혼잣말 같은 거 안 해.” 말한 사람들이 무안할 정도로 나는 정색한다. 화기애애하던 회식 자리가 갑자기 싸늘해진다. 다들 조용히 접시에 담아온 음식만 먹는다.

뷔페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정말 내가 혼잣말을 하는가? 그러고 보면 바로 앞자리의 이 과장이 가끔 “부장님, 저 부르셨어요?” 한다든지, “제게 뭐라 하신 거예요” 한 적이 있었다. 사실은 ‘가끔’이 아니라 자주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혼잣말을 한다. 처음에는 아주 짧은 단음절의 감탄사였다. 환호나 탄식 같은. 그러다 점점 길어졌다. 말이 되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는 어떤 중얼거림.

드라마와 달리 실제 생활에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답답하고 막막해서, 혹은 어이없어서, 혹은 홧김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 실수한 자신에게 변명해 주고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말. 감정의 셀프서비스 같은 것. 누군가와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 싶은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말하는 속내. 또는 성인이 된 자기 안의 어린아이가 내는 칭얼거림.
“난 뷔페는 싫은데. 이게 뭐야? 한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아서.”

함께 식사를 하던 동료들은 다들 못 들은 체한다. 이번엔 혼잣말이 아니었는데 다들 부장의 혼잣말이라고 여긴 것이다. 만일 그 자리에 아내가 있었다면 돈 콜레오네 흉내를 냈을 게 분명하다.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자신의 생각을 절대 드러내지 마.”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