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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12월의 주제] ‘함께했던 시간, 고마웠던 순간’

중앙일보 2012.12.01 00:50 종합 32면 지면보기

어느덧 12월입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한 ‘이달의 책’ 12월 주제는 ‘함께했던 시간, 고마웠던 순간’입니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고 빛나는 순간을 돌아보는 신간 두권을 추렸습니다. 각기 장르는 다르지만, 시간의 나이테에 마음이 차오르는 책들입니다.



이야기꾼 인생 50년, 사람이 하늘이었다



여울물소리

황석영 지음, 자음과 모음

496쪽, 1만 5000원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고(59쪽), 작가의 이야기는 어느덧 오십 해를 떠돌았다. 황석영(69)의 장편 『여울물소리』를 손에 쥐고 읽노라면 일생을 글 감옥에서 보낸 작가의 노고가 전해진다. 스스로 작가인생 50년을 반추하는 작품이라 했듯, 근대화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어낸 소설 속 주인공은 격변하는 한반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황석영과 여러모로 닮았다.



 양반가 서얼인 주인공 이신은 과거를 보러 상경했다가 신분의 벽 앞에서 체념하고 이야기꾼으로 변신한다. 전기수(傳奇<53DF>), 글 모르는 민중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전기수는 단순 전달자가 아니었다. 1인극을 하며 관객을 웃고 울리는 ‘딴따라’였고, 언문 대중화에 기여하는 ‘지식인’이였으며, 여론을 선도하는 ‘정치인’의 면모도 갖고 있었다.



 그가 이름을 ‘이신’에서 좀더 대중친화적인 ‘이신통’으로 바꾼 것은 그런 연유였다. ‘전기수 이름은 듣자마자 마빡에 알밤 맞은드키 딱! 하고 기억나야 되는 법’(163쪽)이라며 신통방통한 새 이름을 받은 신통은 『장끼전』을 읽으면서 진짜 이야기꾼이 된다. 이 장면은 1970년 ‘탑’을 발표하면서 황수영에서 황석영으로 개명한 작가의 인생과 겹쳐진다. 그의 기(氣) 센 이름은 문학을 본업으로 삼겠다는 출사표이기도 했다.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상, 신통의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간다. 그는 시전에서 연희패·농민·말단 군인들과 어울리며 시대의 아픔을 마주한다. 19세기 말은 ‘세상 어디서나 향청이 썩어서 민고(民庫)는 수령의 판공비를 대는 돈줄’(112쪽)이었던 때였다. 소설의 후반부는 이런 부조리에 대항하며 천지도(동학을 뜻함)에 입도해 혁명에 가담하는 내용을 담았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쓰며 줄곧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신통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선언하는 천지도에 투신한 것은 이야기꾼의 역할을 보다 사회참여 지향적으로 바라 본 것이다. 지배층의 수탈과 불평등에 항거해 진실을 기록하고, 용기 있게 발언하는 게 작가의 운명임을 신통을 통해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술방식이다. 화자인 아내 연옥은 집 나간 신통의 뒤를 쫓으며, 곳곳에서 만난 지인들로부터 남편의 행적을 수집한다. 즉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산별적인 에피소드를 퍼즐처럼 늘어놓은 후 하나로 꿰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자칫 영웅으로만 그려질 수도 있는 인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못난 지아비이자 불효자도 신통의 또 다른 모습인 셈이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신통은 지인의 증언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그의 독자들이 그를 불러내는 것이다. 화자인 연옥도 남편의 가장 열렬한 독자이지 않았나. 그러니 이야기꾼의 존재는 독자와 함께 완전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신통이 『임경업전』을 읽는 대목이다.



 ‘임 장군이 김자점의 모함으로 죽게 되자 흥분한 청중들은 간신을 죽여라! 외치며 장 보고 와서 들고 있던 빗자루, 호미, 마른 생선 등속을 내키는 대로 던져서 이신통은 이마에 멍이 들기도 하였다.’(277쪽)



 이마의 멍쯤은 영광의 상처로 이고 살겠다는 황석영의 자기고백 같기도 하다.



김효은 기자



늑대와 함께한 11년, 새롭게 눈뜬 세상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론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추수밭

344쪽, 1만5000원




철학자에게 주변 사물은 모두 성찰의 대상이다. 살아있는 동물은 더할 나위 없는 사유를 제공한다. 일례로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는 닭을 키우며 느낀 단상을 『계림수필』에 풀어놓은 바 있다.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인간의 본질을 되새겨보게 한다. 그 대상이 늑대라면 어떨까.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교수인 마크 롤랜즈는 실제로 늑대와 살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11년씩이나 밥 먹고 강의하고 여행하고 친구를 만날 때 언제 어디서나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함께함의 기록이다.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라는 부제에서부터 우리의 상식에 도전한다.



11년 동안 함께 산 철학자 마크 롤랜즈와 늑대 브레닌. 늑대를 개라고 속여 어디든 함께 가기로 결심한 롤랜즈의 모험담이 로드무비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사진 추수밭]
 서양동화에서 악역은 대개 늑대가 맡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늑대는 전혀 다르다.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늑대를 훈련시킬 수 없다는 속설도 뒤집는다. 저자는 웨일스어로 왕을 뜻하는 ‘브레닌’이란 이름을 붙였다. “늑대 브레닌은 그 어떤 인간보다 의연하고, 우아했다”는 표현에서 인간과 늑대를 대립시킨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인간과 문명에 대한 실망이다.



 영장류인 인간은 과연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가. 저자는 이성·언어·자유의지·사랑·행복 등이 인간 고유의 우월한 특징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늑대와 대화를 하는 듯하다. “늑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정규 교육이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늑대 브레닌에게 배웠다”고 했다. 늑대가 인간보다 못하는 일은 속임수와 계략이라고 한다.



 늑대는 인간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할 것 같지만 그래도 절망은 아니다. “인간도 한때 늑대였다”는 책 속의 표현은 희망을 암시한다. 저자에게 늑대는 두 가지 의미다. 실제 늑대인 동시에 인간이 문명이란 이름으로 잃어버린 본성이다. 한때 우아했지만 오래 잊혀진 기억의 복원을 꿈꾸는 저자는 인권만이 아니라 동물 권리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도 설득력 있게 풀어놓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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