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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앓는 10대, 눈으로 쓴 마지막 소원은

중앙일보 2012.12.01 00:42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경식 명예교수
사람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길이 있다. 아무리 큰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지막 순간 그 길 앞에 서는 운명을 피할 순 없다. 영원한 일방통행의 그 길에 일단 들어서면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향수’의 정지용 시인은 ‘임종’이란 시에서 죽음을 ‘영원한 나그넷길’이라 불렀다.


[현장 속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 … 호스피스 병동 24시
“여기가 천국” 담도암 70대 할머니 발마사지 받고 함박웃음
소원이 뭐니? 뇌종양 10대, 눈으로 쓴 글자는 열대수목원

 그 길을 잘 떠나기 위해선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혼자 힘만으론 어렵다. 곁에서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살아 있을 때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도 좋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하며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호스피스 병동은 이런 도움을 주는 곳이다. 라틴어에서 나온 호스피스란 말은 ‘삶의 편안한 마무리를 위한 총체적 돌봄’이란 뜻으로 쓰인다. 지난달 27~28일 이틀간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를 찾아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환자들과 가족·의료진·자원봉사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아름다운 마침표 ‘웰다잉’



 오전 8시. 회진을 돌던 이경식(69) 가톨릭대 명예교수(종양내과) 등 의료진이 304호실에 들어섰다. 육종암 말기로 입원 중인 50대 S씨가 있는 병실이다. “사모님이 그렇게 좋으신가요.” 이 명예교수가 말을 건네자 S씨는 옆에서 간호 중인 아내를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예…뭐…할 수…없잖아…요.”



 잠시 후 의료진은 306호실로 발길을 옮겼다. 50대 L씨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누워 있었다. 담당인 양성경 간호사가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 “임종할 때 한복을 입고 싶으시다는데 힘들 것 같아요.” 이유를 묻자 양 간호사는 “혈압이 많이 떨어지면 몸을 뒤척여 옷을 갈아입히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명예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그래도 준비해 주세요. 살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최대한 소원을 들어 드려야죠. 혈압이 너무 많이 떨어지기 전에 해 드립시다.”



 ‘한국 호스피스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 교수는 올해로 25년째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1988년 서울성모병원(옛 강남성모병원)이 국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호스피스센터를 열었을 때부터다. 그는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천국의 기쁨을 맛봤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환자들을 자세히 보면 꼭 아기 같아요. 아기들을 안아주듯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죠. 이분들을 보면 볼수록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은 배우자뿐이거든요.”



 오전 9시30분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자실. 분홍색 앞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봉사자 10명이 오전 회의를 시작했다. ‘청일점’ 조일권씨를 제외한 9명은 주부 봉사자들이다. 수요일 봉사조의 박을미 조장이 담당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환자들의 상태를 전달했다. “S씨는 발마사지를 하지 마시고 자세를 자주 바꿔주세요. L씨는 부인께서 많이 힘들어하니까 힘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봉사자들이 각 병실로 흩어졌다. 박씨는 김수정·차리리씨와 함께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10대 K군의 병실로 갔다. 침대 아래쪽에 방수천을 깔고 천천히 K군의 발을 닦아주는 마사지를 시작했다. 봉사자들이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손길로 발가락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자 K군의 얼굴에 방실방실 웃음꽃이 피었다. 이를 지켜보던 K군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요새 통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예전에는 가족끼리 여행도 잘 다니고 즐겁게 지냈는데….”



 봉사자들이 자음과 모음을 따로 적은 글자판을 꺼냈다. 병이 깊어 말은 못하지만 의식은 또렷한 K군은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예, 아니요’를 표현한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ㅇ’에 멈추자 K군이 눈을 길게 깜빡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K군의 의사를 확인하니 ‘열대수목원’이란 단어가 됐다. K군이 기나긴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선 환자의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는 ‘소원 성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결혼식을 못하고 살던 부부가 병원에서 결혼식을 하거나 가족·의료진·봉사자들이 모여 칠순·팔순 잔치를 열어주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동의 손미연 사회복지사는 “K군의 소원도 최대한 들어주고 싶지만 현재 몸 상태로는 어려울 수 있다. 혹시 다른 소원은 없는지 더 찾아보겠다”고 했다.



 오전 10시30분 상담실. 손 복지사가 폐암 말기로 진단받은 80대 L씨의 부인과 마주 앉았다. “아버님이 어머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나 봐요.” 손 복지사가 말을 꺼내자 할머니의 눈가가 붉어진다. “몰라. 얼마 전에 결혼 60주년이었어. 가족들이랑 좋은 데서 잔치도 했지. 할아버지랑 같이 오래 살았네. 하루도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는 그동안 남편의 투병 생활로 힘들었던 사연도 꺼내놨다. “지난 30년간 이런 병, 저런 병 해서 앓지 않은 병이 없었어. 그래도 얼마 전까진 괜찮아서 해수탕 사우나도 갔다 왔거든. 한 열흘 전부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어.”



 이날 대화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L씨의 마지막 소원에 대한 상담이었다. 손 복지사가 할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꼭 원하신다면 집에 잠깐 다녀오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자녀분들과 상의해 보세요.” 할머니는 윗옷 주머니에서 조용히 휴지 뭉치를 꺼내 눈가의 물기를 닦았다. “알았어. 물어볼게. 그런데 지금도 내가 없으면 막 찾아. 불쌍해….”



 오전 11시 임마누엘실(임종실)에선 식도암으로 고생했던 70대 C씨가 마침내 영원한 안식의 여행을 떠났다. 잎사귀가 떨어진 뒤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처럼 육신은 앙상했지만 얼굴 표정은 평화로웠다. 봉사자들은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하는 기도와 노래로 흐느끼는 유족들을 위로했다.



“우리 봉사자들이 더 많이 배워요”



 낮 12시 점심시간. 하지만 말기암 환자들은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다. 링거 주삿바늘을 꽂은 손등으로 방울방울 흘러드는 영양제가 식사를 대신한다. 그것조차 힘든 환자들은 포도당 원액을 주사로 맞는다. 장시간 누워 있는 환자의 몸속에서 영양제가 골고루 돌지 못하면 손과 발이 붓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환자별로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은 담당 영양사가 의사·간호사와 상의해 결정한다.



 병동 주방에는 환자 가족들을 위한 식탁이 마련됐다. 환자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가족들은 식사 시간에도 병실 근처를 떠날 수 없다. 수요일 식사 봉사를 맡은 이혜욱·황창연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과 밥을 떠서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날 메뉴는 북어콩나물국과 김치·김·깻잎·무장아찌였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요.” “번번이 이런 대접 받아서 어쩌죠.” 환자 가족들의 만족스러운 반응에 봉사자들의 표정도 절로 밝아졌다.



 오후 2시 담도암에 걸린 50대 K씨의 휠체어를 밀던 봉사자 예은주씨가 휴게실 창가에 멈췄다. 유리창을 넘어오는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환자의 정면을 환하게 감쌌다. K씨의 남편도 느린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미용사 출신인 예씨는 환자의 머리 주위를 천으로 덮은 뒤 빗과 가위를 꺼냈다. 쓱싹쓱싹 능숙한 가위질 소리와 함께 지저분하던 머리가 깔끔하게 변했다.



 “태어나서 이런 호강은 처음이에요.” 물이 필요 없는 특수 샴푸로 머리까지 감고 나자 K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옆머리가 좀 긴 것 같은데.” K씨 남편이 입을 열었다. “아녜요. 이게 좋아요. 남자는 여자를 잘 모른다니까.” 예씨의 말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K씨 남편은 멀쑥한 표정을 지었다. 예씨가 K씨 남편에게 돌발 제안을 했다. “부인이 참 예쁘죠. 뽀뽀하세요.” K씨는 슬며시 눈을 돌려 남편을 쳐다보고, 남편은 말없이 수줍은 미소만 지었다. “환자들에겐 ‘내일 해 드릴게요’란 말을 못해요. 내일까지 기다려주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예씨는 바닥에 떨어진 K씨의 머리카락을 쓸어 담으며 기자에게 귀띔했다.























 담도암으로 입원한 70대 L씨의 딸은 “자기 부모님처럼 성심성의껏 돌봐주고 발마사지도 해주는 봉사자들은 천사 같은 사람들”이라며 “어머니는 여기가 천국인 줄 아신다”고 말했다. “말기암 환자는 호스피스 병동이 아니면 갈 곳이 없어요. 일반 병원에선 어차피 치료가 안 되니까 집에 가라고 하죠. 집에선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요. 임종을 앞두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게 고작이죠.”



 그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오기 전까지 고생했던 사연을 털어놨다. “네다섯 군데 병원에 호스피스 입원 접수를 했는데도 병실이 나지 않아 보름 넘게 대기했죠. 할 수 없이 어느 요양원에 갔는데 돈만 밝히고 환자를 푸대접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어머니가 다른 기능은 쇠약하지만 청력은 아직 좋으시거든요. ‘왜 나를 팔아 넘기려고 하느냐’고 하시는데 가슴이 미어졌죠.”



 호스피스 병동 업무를 총괄하는 라정란 수녀는 “의학적으로는 말기암 환자들의 신체적 통증을 덜어주고, 심리적으로는 삶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호스피스는 결코 치료를 포기하고 수동적으로 임종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환자들이 끝까지 삶의 의미를 포기하지 않도록 사랑으로 돌봐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성모병원은 23개의 호스피스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라 수녀는 “병상이 부족해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며 “너무 임박해서 급하게 오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후 4시30분. 봉사자들이 다시 모였다. 이날 활동 내용을 정리하고 환자들의 상태를 꼼꼼히 적어 파일에 끼워뒀다. 다음 날 활동할 봉사자들이 읽어보고 참고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송순임 봉사팀장은 “현재 59명의 봉사자들이 7개 조로 나눠 매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봉사자들이 더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오후 6시 병실 한구석에선 나지막한 기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에서 농부 부부가 하루를 마치며 바친 것과 같은 기도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애달파하는 마음은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다. 통일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 승려 월명사는 누이를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을 ‘제망매가’란 향가에 담았다. ‘삶과 죽음의 길은/여기 있음이 두렵고/나는 간다 말도/못다 하고 가는가/…/아아 미타찰(극락세계)에서 만날 나는/도 닦아 기다리겠다’. 2012년 호스피스 병동 환자 가족들의 심정은 1300년 전 월명사의 마음과 전혀 다를 게 없다.



 병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8시에 가까워지자 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기력이 쇠약한 환자들은 대개 일찍 잠이 든다. 이날 하루 평화롭게 지낸 데 대한 감사와 큰 고통 없이 이 밤을 넘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병실마다 가득했다. 저 시곗바늘이 다시 한 바퀴를 돌아오는 다음 날 아침에도 무사히 눈을 뜰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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