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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기업인 배임죄,‘경영판단 원칙’ 필요한가

중앙일보 2012.12.01 00:39 종합 36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기업인의 횡령·배임죄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자의적인 배임죄 적용으로 기업 경영과 투자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적법 절차에 따른 경영판단 행위에 대해선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 논리를 들어봤다.



형사처벌 공포로 기업 경영의 발목 잡아선 안 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고 그 사무를 위임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이 범죄는 형법과 상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에 각각 규정돼 있다. 이 중 특별배임죄는 주식회사의 이사 등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상법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배임죄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법을 개정해 이사 등이 경영상의 판단을 한 결과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때에는 특별배임죄에 따른 처벌을 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사는 회사를 위해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거래처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회사 돈을 횡령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외에 회사의 사무처리를 잘못함으로써 거액의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배임죄로 기소해 형사처벌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배임죄의 처벌기준이 다소 모호해 이사 등이 이익을 취한 경우나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처벌될 수 있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법익(법적 이익) 침해에 대한 사후적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위험’만 초래해도 처벌하는 것은 법익 침해의 전 단계에 국가의 형벌권이 미리 개입하는 것이다. 배임죄 무죄율이 일반 형사범에 비해 5배 정도 높은 것도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배임의 본질은 배신이다. 배신은 윤리적인 문제이며 손해배상 등 민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배임죄는 민사적 수단에 의해 해결해야 할 분쟁을 국가가 나서서 형사범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이것은 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이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처벌 대상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특경가법은 배임 등의 행위로 인한 재산상 이익의 규모에 따라 50억원 이상인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때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로 구성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지난 7월 발의한 경제민주화 1호법안은 처벌을 대폭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인 때에는 1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모든 배임죄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금지하며 ▶사면도 금지한다.



 오늘날 경제규모 확대와 통화가치의 하락 등으로 5억원을 넘는 경우는 흔하다. 300억원의 기준도 글로벌 기업의 프로젝트 규모로 볼 때 큰 금액이 아니다. 요즘은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글로벌 경쟁은 전쟁에 못지않다. 기업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리스크가 내재돼 있지만 오늘날 그 위험성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기업인이 형사처벌을 우려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판례가 인정하고 독일 주식법에서 인정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해 기업인을 배임죄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상법 특별배임죄 관련 조항에 “경영판단의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문구를 넣는 것이다. 경영자가 아무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경영판단을 한 경우에는 설혹 그 판단이 예측을 빗나갔더라도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영진 책임 제대로 물을 장치부터 만들어야



이지수
미국변호사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은 미국에서 판례법상 발달한 법리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명문규정이 없지만 간혹 판례에서 이 원칙을 일부 차용하고 있다. 배임죄에 이 원칙을 도입하자는 주장에 따르면 상법상 배임죄는 민사의 형사화를 촉진하고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자칫 잘못하면 재벌들의 편법적인 행위마저 면책시켜줄 위험을 안고 있다.



 먼저 경영판단원칙을 도입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돼야 할 전제조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영판단원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책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타인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 또는 신인의무(duty of trust)를 부담하게 된다. 이러한 의무는 다시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성의무(duty of loyalty)로 대별된다.



두 의무를 구별하는 기준은 의사결정을 내린 자에게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 가운데 경영판단원칙에 의해 보호되는 영역은 이해상충이 없는 주의의무 위반의 경우다. 반면 충성의무 위반에 대해선 경영판단원칙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를 풀어서 써본다면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자가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선의의 입장에서 내린 결정이라면 그 결정이 설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법원이 사후적으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경영판단원칙이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참여한 자가 어떠한 형태로든 이해상충이 있었다면 법원은 그와 같은 결정이 이기심에 근거한 것으로 봐서 그 의사결정에 대한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이를 ‘완전한 공정성(Entire Fairness)’이라고 부른다. 즉 이해상충이 있었다면 경영판단원칙은 처음부터 배제된다.



 우리나라의 업무상 배임죄는 어떠한가. 배임죄를 저지른 경영진이나 이사들 중에서 이해상충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배임죄로 처벌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회사나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충성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의무나 충성의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구별 없이 모든 경우를 경영판단원칙으로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발상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상법상 경영판단원칙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 간의 법적 구제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절차적인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다중대표소송 내지는 단독주주권에 의한 대표소송 청구권 등이 인정돼야 한다는 얘기다. 또 충성의무 위반 사건의 경우 원고로부터 피고에게로 입증책임이 전환되도록 하는 등의 절차적인 정비가 우선해야 한다. 거의 모든 입증책임을 원고가 부담하는 상황에서 업무상 배임죄마저 경영판단원칙으로 보호를 해준다면 억울한 피해자들의 구제는 더욱 힘들어진다.



 피해를 본 자가 책임이 있는 자에게 충분하고도 공평하게 법적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다음 경영판단원칙의 도입을 논의해야 순서가 맞다. 제대로 된 법리의 이해 없이 국민들을 선동하는 듯한 태도는 옳다고 할 수 없다.



이지수 미국변호사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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