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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코피노, 그 저주받은 낙인

중앙일보 2012.12.01 00:34 종합 37면 지면보기
박종원
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필리핀 유학 때의 일이다. 어학연수 행선지로 필리핀을 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물가가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사람’을 사고 부릴 수 있는 가격마저도. 이 글은 그곳 현지 사람을 대하는 한국 유학생들의 저급한 생각과 몰염치에 대한 고발이다.



 필리핀에서 친해진 형이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바람이나 쐬자며 시내로 나가자고 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한국에서 흔히들 말하는 ‘룸살롱’이었다. 20대가 쉽게 마실 수 없는 고급 양주를 시키고 여성들을 불러 옆에 앉히며 종업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형의 모습은 내겐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퍽 자연스러웠다. 형은 쭈뼛거리는 나를 귀엽게 여기며 여자를 불러 내 옆에 앉혔다. 한데 시중을 들던 여자들은 평소 접하는 이국적인 필리핀 여성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좀 더 동양적인, 한국적인 느낌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여성들에 대해 물어보자 형은 “코피노야”라고 짧게 답했다. 그 후 다들 술이 어느 정도 취했을 즈음 형님은 2차를 가야겠다며 파트너와 함께 호텔로 사라졌다.



 방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코피노’(Kopino)라는 말은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의미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보통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어머니가 자신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한국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부양할 아버지가 떠났음에도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선 원칙적으로 낙태가 허용되지 않으니 아이들은 태어난다. 2011년 추산된 통계로 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순수한 필리핀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당연히 한국인으로도 대우받지 못한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탄생의 축복도 받지 못한 채 코피노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힌 채 살아간다. 그들은 자국에서 2등 국민으로 차별당한다.



 모든 유학생이 이처럼 ‘생각 없는 유흥’을 즐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제받지 않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무분별한 향락에 빠지곤 한다. 코피노의 존재가 늘어갈수록 그것이 반한(反韓) 감정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모르는 채. 현지 영어강사에게 한국인의 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필리핀인들이 ‘돈 많고 거들먹거리는 유학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아야 한다. 모국에서는 백인들이 한국 여성들을 쉽게 여긴다며 발끈하면서, 우리의 몰염치에는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우리가 수만 명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한류가 뻗어나가고 경제발전을 이루었더니 자긍심만 높아졌지 ‘의식의 후진성’은 아직도 여전한가 보다.



박종원 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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