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최고 맥주' 만든 일본인 "비결은…"

중앙일보 2012.12.01 00:29 종합 22면 지면보기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조장의 주인 고바타 쇼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도쿄의 맥주 퍼브 ‘브루퍼브 판게아’에서 맥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취미는 여러 가게를 돌며 새로운 맥주 맛을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1000종류가 넘는 맥주를 마셨다. [사진 JTBC]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와인처럼 느껴지는 맥주 맛만 빼면 그의 모습도, 그의 맥줏집도 기자의 예상대로였다.

지금까지 마신 맥주만 1000종류 … 맛의 차이 대부분 기억
세계 최고 맥주 ‘와일드 인 센조쿠’ 만든 고바타
컴퓨터 전공 → 바텐더 → 주방장 → 웨이터
일본에 10명뿐인 ‘맛 감별사’ 자격증



 도쿄(東京) 시나가와(品川)구의 조용한 주택가 모퉁이에 있는 작은 맥주 퍼브 ‘브루퍼브 판게아(BrewPUB PANGAEA)’를 찾았다.



 “좀 일찍 오셨네요.”



약속 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한 기자에게 이곳 주인 고바타 쇼지(小畑昌司·41)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듯한 태도, 아무렇게나 챙겨 입은 듯한 반팔 티셔츠 차림에선 자신만의 외길에 빠진 매니어적 포스가 묻어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난 맥주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맥주에 파묻혀 사는 듯했다. ‘브루퍼브 판게아’는 주방과 카운터, 홀, 안쪽에 있는 화장실의 면적까지 다 합쳐야 14㎡가 조금 넘는 선술집이다. 종업원도 없다. 주방 안쪽의 맥주 제조 탱크들을 봐야 이곳이 ‘일본에서 가장 작은 주조장’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만든 맥주 두 종류가 지난 8월 도쿄에서 열린 국제 품평회 ‘2012년 도쿄 국제 맥주 경연대회(IBC 2012)’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특히 ‘사워 에일(Sour Ale·시큼한 맛의 맥주)’ 분야에서 동상을 받은 ‘와일드 인 센조쿠(洗足)’는 일본 맥주로는 해당 분야 첫 수상작이다. 금상과 은상 수상작이 없었으니 정상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만든 또 다른 맥주 ‘센조쿠 비터’는 ‘오디너리 비터’라는 부문에서 동상을 탔다. 센조쿠는 가게가 있는 동네의 이름이다.



 인터뷰는 목요일인 지난달 22일 저녁에 이뤄졌다. JTBC 영상 촬영까지 마치자 오후 8시를 훌쩍 넘겼지만 후미진 골목 끝 가게엔 손님이 한 명도 들어서지 않았다. 그는 “내 맥주를 즐기러 오는 손님들은 대개 심야에 찾아오는 단골”이라며 “손님이 없는 날엔 혼자서 맥주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손님들도 주인 못지않은 매니어인 모양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이번에 수상한 대회는 어떤 대회인가.



 “일본 크래프트 맥주협회가 주최하는 국제 품평회다. 1996년 시작돼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전통과 권위가 있다고 보면 된다. 전 세계에서 출품받았고, 전 세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43명(미국과 독일·영국 등 해외 심사위원 17명 포함)이 심사했다. 모집 분야는 105개 정도인데, 출품작들 중에서 수상작이 나오지 않으면 ‘수상자 없음’으로 결정한다.”



●일본에서 가장 작은 주조장에서 쾌거를 낳았다는 일본 언론 보도를 봤다.



 “주방에 있는 45L 탱크 12개가 전부다. 다른 주조장들은 보통 한 번에 1000~2000L씩 맥주를 만드는데 우리 주조장은 45L다. 500mL 잔으로 90잔밖에 안 나온다. 면적으로도 보시다시피 가장 작다.”



●‘사워 에일’이란 어떤 맥주인가.



“효모의 발효법을 달리해 신맛이 강하게 나도록 만든 맥주다. 미국에서 많이 마셔 ‘아메리칸 사워 에일’로도 불린다.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독특한 향기를 느끼기 위해 와인잔에 따라 마시는 맥주다.”



●수상 비결은.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한 게 평가를 받은 것 같다. 다른 주조장에선 만들기 어렵다. 규모가 큰 곳에서 이런 맥주를 만들다 다른 맥주와 조금이라도 섞이면 모든 맥주에서 신맛이 날 수 있다. 망치더라도 나는 45L뿐이지만 다른 곳은 1000L를 날려야 하니까 만들기 쉽지 않다.”(요미우리 신문은 “고바타는 작은 주조장이란 약점을 거꾸로 이용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맥주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처음엔 내가 맥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도 못 꿨다. 기자라면 자신이 맥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겠느냐. 나도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으로 만든 건 2010년부터다. 2004년 가게를 연 뒤 줄곧 다른 주조장에서 맥주를 사다 팔았다. 맥주의 맛에 관심이 커 2년여 정도를 공부해 2006년 맥주의 맛을 판정하는 마스터 자격증을 땄다. 일본에선 10명뿐이다. 3년 전쯤 내가 맥주를 받아오던 주조장 주인이 ‘너도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 술을 마시면서 들은 이야기라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맥주를 만들려면 공장도 크고 탱크도 커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좁은 데선 불가능하다’고 했더니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더라. 나중에 자료를 찾고 혼자서 연구해 보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도전하게 됐다.”



●앞서 맥줏집을 열게 된 계기는 뭐였나.



 “맥주가 좋아서다. 히로시마(廣島)에서 대학(컴퓨터 전공)을 졸업한 뒤 도쿄에 왔고, 이후 줄곧 음식과 관련된 일을 했다. 바텐더도 했고, 이자카야(居酒屋)의 주방장, 호텔에서 웨이터 생활도 했다. 스무 살이 넘어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이후 줄곧 맥주만 마셨다. 사실 어려서부터 뭔가 만들기를 좋아했다. 시계를 분해해 다시 만들기도 했고, 장난감도 직접 만들었다.”



●시행착오나 실패가 많았을 것 같은데.



 “일본 주조법상 만든 술은 버릴 수가 없다. ‘맥주를 손님들에게 팔아놓고 버렸다고 말한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라면의 경우엔 실패하면 그냥 버리면 되는데 맥주는 그게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만큼 좋은 맛이 나지 않더라도 ‘다음에 더 잘 만들어야지’라고 노력한다. 오늘 만든 맥주보다는 내일 만드는 맥주가, 한 주 전에 만든 맥주보다 이번 주에 더 좋은 맥주를 만들려고 항상 노력한다.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나 누워 있을 때도 하루 종일 맥주 생각만 한다. 처음 보는 맥주를 마시고서도 ‘나 같으면 이렇게 만들었을 텐데…’ 평가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맥주, 맛없는 맥주 모두 교훈을 준다.”



●맥주를 만드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아무도 가게에 들이지 않는다고 들었다(실제로 고바타는 ‘맥주 제조 장면을 직접 보며 인터뷰하고 싶다’는 기자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그래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하루 종일 혼자 만든다. 내가 혼자 작업해 만들어진 맥주가 맛이 없다면 내가 손을 안 씻었거나 기침을 하다 뭐가 들어갔거나처럼 실패 원인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함께 작업장에 들어와 있으면 실패 이유를 판단하기가 애매해진다.”



●얼마나 많은 맥주를 지금까지 만들었나. 좋은 맥주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만든 맥주가 30종류 정도 된다.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한 비결은 따로 없다. 난 ‘일단 무조건 많이 마시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맥주든 싫어하는 맥주든 무조건 많이 마셔야 한다.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수퍼 드라이’류의 맥주만 계속 먹어봐야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마신 뒤엔 그 맛을 음미해야 한다. 지금까지 마신 맥주가 1000종류 이상 되는데 난 그 맛의 차이를 대부분 기억한다. 맥주를 만들 때 비슷한 맥주를 마신 경험을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다른 가게에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게 취미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고민하고 연구하고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이다. 얼마 전엔 백악관에서 만든다는 맥주도 만들어봤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레시피가 있다. 머릿속에서 맛을 상상해 가면서 만들었다.”(그가 만든 ‘화이트하우스 맥주’는 지역신문인 ‘시나가와 경제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지역신문엔 “생각이 나면 곧바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게 작은 주조장의 강점”이란 그의 말이 소개돼 있다.)



●주량은.



 “기본적으로 난 맥주만 마신다. 다른 술을 마실 시간이 있으면 (연구를 위해) 차라리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2~3L 정도 마시고 잠들어 버리는 게 나의 음주 스타일이다.”



●맥주 만드는 일을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지금 하는 일이 질리거나 싫증날 것 같지는 않다. 새 맥주를 만들어 손님이 맛있게 마시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아내와 아이들이 종종 ‘같이 좀 놀아 달라’고 하지만 가족들도 큰 불만은 없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나.



 “없었다. 맛 없는 맥주가 나오면 완전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곤 했다.”



●장인 정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훌륭한 장인 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장인 정신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아니겠느냐. (JTBC 카메라 기자를 가리키며) 저쪽에 서 있는 카메라 기자가 영상을 항상 고민하는 것처럼. 이번에 동상을 받았는데 다음엔 더 좋은 맥주를 만들고 싶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