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지식] 다윈은 놓쳤다, 진화의 대원칙은 경쟁보다 협력

중앙일보 2012.12.01 00:07 종합 30면 지면보기
초협력자

마틴 노왁 외 지음

『초협력자』 낸 하버드대 마틴 노왁 e-메일 인터뷰

허준석 옮김, 사이언스북스

496쪽, 2만원




‘생존을 위한 투쟁’ ‘이기적 유전자’…. 찰스 다윈 이래 지구상의 생물계와 인간의 본성은 주로 이런 말로 축약됐다. 덕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세계에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살아 남는다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통용돼왔다.



 잘 알려져 있듯 다윈은 자연의 법칙으로 생존경쟁을 꼽았다. 적자(適者· the fittest)만이 혹독한 투쟁에서 승리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사라진다고 설파했다. 인간은 그 중에서도 ‘이기적인 영장류’로 손꼽힌다. 오죽했으면 유전자까지도 이기적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여기에 뭔가 결정적인 게 빠져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버드대 생물학·수학과 교수인 마틴 노왁(Martin Nowak)이다. 그는 “최후의 승자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협력하는 우리들”이라며 “협력이야말로 혁신의 힘이자 진화의 설계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과학 저널리스트 로저 하이필드와 함께 쓴 『초협력자(Supercooperators)』에서다. 수학·경제학·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협력과 진화의 관계를 촘촘하게 따졌다.



마틴 노왁
 노왁 교수의 주장을 잘라 말하면 이렇다. “경쟁이 생물계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예로 복잡하게 얽힌 온갖 피조물은 살기 위해 협력하는데, 심지어 박테리아도 그렇단다. 끈처럼 연결된 박테리아의 어떤 세포는 이웃에게 질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스스로 죽기도 한다. 또 다른 박테리아는 영양을 사냥하는 사자 무리처럼 집단으로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고등동물들의 협력 사례는 훨씬 더 구체적이다. 특히 인간 사회는 그 자체가 협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다윈이 적시한 대로 생존투쟁이 생물계의 음지였다면, 협력은 양지라는 것이다. ‘상호투쟁의 법칙’과 별도로 자연에는 ‘상호부조의 법칙’이 있다는 얘기다.



 노왁이 말하는 협력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을 넘어선다. 잠재적인 경쟁자들도 서로를 돕기로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적도 은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불교의 연기론(緣起論)마저 연상되는 대목이다.



 저술 작업이 고도의 협력을 통해 진행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진화 게임이론의 개척자 카를 지그문트의 제자인 노왁은 세계적인 수학자·과학자들과 손을 잡았다. 게임 이론에 확률과 통계, 컴퓨터 모형, 실험을 덧붙여 협력의 진화양상을 추적했다.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협력’ 하면 개미나 말벌 같은 곤충을 꼽아왔다. 그런데 당신은 인간이 이들보다 더 협력적이라고 말한다.



 “지구상의 모든 종을 통틀어 이렇게 다양한 협력의 메커니즘을 놀랍게 사용하는 것은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박테리아 등에서도 협력 메커니즘을 볼 수 있지만 책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법칙을 모두 활용하지는 않는다. 인간만이 언어를 가지고 있고, 이 언어로 소문·잡담 등 주변 평판에 근거해 서로 도우며 살아왔다. 인간이야말로 협력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종(種)이다. 그래서 초협력자라고 명명했다.”



 노왁은 언어가 인간의 진화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수다 떠는 재주 덕분에 인간들은 40억 년에 이르는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언어를 창출했다고 믿고 싶겠지만, 이는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언어가 우리를 창출했다”고 했다.



 노왁은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 이론을 응용했다. 상대를 배신해야만 자신이 이득을 얻는, 그리하여 결국 서로 가장 나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이론을 인간의 갈등과 투쟁을 그리는 데 유용한 밑그림으로 써왔다.



 하지만 노왁은 이 딜레마가 살아있는 생명체에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무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생명체가 집단을 이루고, 번식하고, 번성해온 진화과정이 반영이 안 됐기 때문이다. 또 서로가 서로를 믿고 함께하는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점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협력과 배신이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결과를 수학적 형태로 정교하게, 또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 다섯 가지 법칙 중에서 ‘상호성의 간접적인 형태’(‘우리’의 기브 앤 테이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왜 이게 중요한가.



 “평판의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이들을 돕는 거다. 간접 상호성은 협력의 진화를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만 아니라 뇌의 진화 작용을 촉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평판에 의존하는 인간의 본성이 우리의 뇌, 기억을 담아두는 능력, 언어와 도덕의 발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서로 간접적으로 돕는 형태가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소문·잡담 등으로 평판을 듣고 누가 좋은지 누가 나쁜지를 짐작해 누구와 거래할지를 판단한다는데, 이게 모두 협력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 협력에는 보상이 처벌보다 낫다고 했다.



 “처벌은 대개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이기적 동기를 촉진하는 데 사용됐다. 처벌은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를 유발시킨다. 처벌과 협박이 협력을 강제할 수 있다는 협소한 발상을 넘어서야 한다. 성공적인 조직은 언제나 처벌을 억제하려 애쓴다.”



 그는 처벌의 효과를 재기 위해 죄수의 딜레마를 변형한 게임을 했다. 피실험자들에게 협력, 배신, 그리고 값비싼 처벌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한 쌍의 플레이어들 사이에 1230개의 반복 상호작용의 결과가 기록됐는데 처벌과 나쁜 결과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처벌은 협력의 진화를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며 보상이 처벌보다 낫다고 거듭 강조했다.



- 기후온난화, 환경오염 등 (당신이 책에서 말한)‘공유지의 비극’으로 대표되는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 사회의 성공과 생존은 오늘날 그 무엇보다도 인류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협력하는 것을 배우는 것에 달려 있다. 협력은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협력해야만 인류는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 일상에서 개개인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지침 같은 게 있을까.



 “학교에서부터 협력과 배신의 문제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내가 잘됐다는 게 꼭 내 능력 때문일까. 아침 밥상 하나에도 수 많은 사람들의 땀이 들어 있다. 관대하고 희망을 가지며 용서하는 게 곧 이기는 전략이다.”



 노왁은 마지막으로 “협력은 움직이는 물질을 더 높은 수준의 조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진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혹은 멸종의 길로 갈지 냉혹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