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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토크쇼] ② "'사랑이 뭐길래' 덕에 국회의원? 천만에!"

중앙일보 2009.09.17 11:05

월간중앙 달랑 포스터 하나로 선거 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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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형 연애 이야기엔 러브스토리가 없어.

이순재 맞아, 재미없었어.

조영남 형은 살면서 스캔들 하나 없고, 배우생활 하면서도 소문 하나 없었어. 그러니까 형 인생에 제일 큰 스캔들은 국회의원 출마한 건가?

이순재 이것도 변명 같지만 내가 하고자 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 당시 탤런트협회장이던 이낙훈에게 5공정권으로부터 비례대표 제의가 왔어. 획기적인 일이었지. 국회에 배우를 대표하는 인물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이 말이야. 그때는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정치·사회적 인식이 형편없던 시절이어서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지.

이낙훈이가 가까운 사이인 나한테 도와달라며 같이 당으로 들어가자고 하더라고. 필요하다니 도와줘야지. 굳이 내가 국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당에서 열심히 일하면 정치적으로 예술인들을 도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사람들이 연예인 출신이라고 낮춰 볼까봐 당에서 더 열심히 일한 것도 있었지.

그런데 13대 국회에 가서 소선거구제가 실시되면서 선거구가 많아지니까 사람이 많이 필요해졌어. 당시 사무총장이던 심명보 씨가 넌지시 송파 쪽 선거구에 나가라는 거야. 나는 이북 사람이어서 서울에는 연고도 없고, 선거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재산이라고는 아파트 한 채밖에 없었어.

고민하다 제주도에 촬영 때문에 내려가 9시 뉴스를 보는데 후보자 명단이 지나가. 송파에 내 이름이 없기에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가나다라마바사 지나가고 지읒, 중랑갑에 내 이름이 딱 나오는 거야.

조영남 그냥 꽂아 넣은 거 아냐?

이순재 그렇지. 당에서는 “대통령이 도장 찍은 거니까 하자” 이거야. “나는 돈이 없다” 했더니 “얼마면 되느냐”고 그래. 체면이 있으니 “얼마 줄 거유?” 그럴 수는 없잖아?(웃음) 선거구인 면목동에 갔더니 그때는 완전 변두리 시골이야. 내가 선거에 열의를 안 보이니 남들이 지원 안 하는 지역에 갖다 박은 거야.

선거운동 시작하고 보니 이 지역은 우리 세력이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데다 당시 상대 후보인 이상수 씨 쪽은 아주 거칠게 밀고 들어오고…. 그래도 열심히 했어. 처음에는 ‘딴따라’로 보던 사람들도 유세 두세 번 하니까 인식이 달라지더라고. 선거 직전에는 백중세로 넘어갔지. 그런데 결국 740표 차이로 지더라고.

조영남 그래도 잘했네.

이순재 내 이미지로는 쉽지 않은 지역이었지. 당에서도 “안될 줄 알았는데 할 수 있을 것 같다. 4년 뒤에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더라고. 그 뒤 4년 동안 지역을 꾸준히 관리했어. 1년에 두 번씩 전 가정을 다 돌고, 시장은 1년에 네 번씩 돌았을 정도야. 나중에는 손만 잡으면 이 사람이 내 편인지 아닌지 딱 나와.

선거할 때 돈이 없어 포스터도 못 붙이고 있는데 어느 날 밤 지역의 동 책임자 하나가 술을 마시고 주정하더라고. “이런 염병할, 무슨 휘발유가 있어야 뛸 것 아냐” 하고 말이야. 다음날 지역구 당원들을 불러놓고 “뭐가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봤지. “도대체 얼마를 가지고 선거를 치르실 생각입니까” 하고 되물어와.

아파트 한 채 가진 거는 도저히 못 팔겠고. 그래서 그냥 “미안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그래도 해봅시다. 정 돈이 없으면 백지에 ‘탤런트 출신 이순재’ 하고 쓰면 다 압니다” 그랬어. 사진 없으면 어때. 얼굴 다 아는데. 그래서 정말 포스터 한 장 가지고 선거를 했어.

결국 3,800표 차이로, 압도적으로 이겼지. 최고시청률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에 출연한 것이 14대 선거 직전이야. 상대방은 그것 때문에 졌다고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야. 지역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대중적 인기만으로는 절대 표 못 얻어.

조영남 그때 해보니 느낌이 어때요? 정치 재미있습디까?

이순재 정치는 인간사회에서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잖아? 정치가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실질적인 주체야. 정치가 복리와 후생을 통해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면 이게 최고의 예술 아냐? 그런데 한국에서 정치를 하려면 본인과 가족의 행복은 포기해야 해.

대권 운운하는 사람은 사돈의 팔촌의 행복까지 포기한다는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거지. 빌붙어서 뭐 하나 해먹으려고 하면 정치가 제대로 안 돼. 오늘날 한국정치가 자리를 못 잡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나는 8년 동안 지역구에서 뛰었지만 한 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어.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어. 그래서 그만뒀어. 하늘이 파래도 파란 것을 느끼지 못하고, 꽃이 아름다워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동네 어디에 불만 나도 내 책임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지.

조영남 요즘 국회의원들이 점프하고 때려부수고 하는 거 보면 느낌이 어때?

이순재 우리 때도 그런 것이 있기는 했지. 그때는 우리 정치에 큰 보스들이 있었어. 현역 보스가 앞에 있으니 충성심을 보여야 하잖아? 다음 공천 받아야 하니까. 나도 그때 야당에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 한판 크게 하고 나서도 나중에 만나 이야기하면 “어쩌다 한번 하지, 두 번은 창피해서 못해” 이런다고.

그렇게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 자체에는 문제가 조금 있지만 말이야. 심지어 4년 내내 보스 친위대만 하다 끝나는 의원도 있었어. 우리가 흔히 국회의원을 개인적·독립적 헌법기관이라고 해. 옳은 말이야. 법 발의하고, 의결도 하니까. 과거에는 그렇게 만드는 정책과 법안이 공익이 아닌 당리당략적 이익에 좌우됐어.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요즘 정치는 조정의 개념이 없어져 버렸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많이 회복되셨다니 다행인데, 그분과 같은 정치적 원로들이 과거에 누적된 한국정치의 잘못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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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지에서 대입 준비

조영남 그럼 정치는 왜 ‘스톱’한 거예요?

이순재 정치는 내 직업이 아니거든. 국회의원은 자의든 타의든 국가가 불러서 봉사하는 직종이야. 그때 내가 60대였는데, 내 동창 중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마당에 내가 한번 더 하면 뭐 할 거유? 정한용 같은 후배들이 들어오니 우리 직업군을 대표할 인물은 생긴 셈이었지. 그러고 나는 본업이 연기잖아? 60대면 중요한 전기이니 내 기력이 쇠하기 전에 돌아와 연기자로서 내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드라마로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정치 못지않게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실 정치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 못하겠더라고.

조영남 돈이 없으면 후원회를 해야지.

이순재 나는 4년 동안 후원회라는 것을 안 했어. 후원회 할 데가 없더라고. 어디다 대고 돈을 빌려? 그것도 신인 정치인이면 얼굴도 잘 모르니 명함이라도 돌리지만, 나는 다 알잖아? 세상이 다 아는데 이제 새삼스럽게 정치한다고 알지도 못하는 동창들, 기업인들에게 편지 보내고….

조영남 참, 그런데 왜 하필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갔어요? 무슨 동기였어요?

이순재 철학과가 쉬울 것 같아서 내가 대학 입시에 한 번 떨어졌거든. 피란가서 공부하려니 참고서도 달랑 하나 있는 상황이니…. 원래는 정치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정말 갔으면 나도 정치 일선에서 왔다갔다 했겠지. 나름 독학했지만 자신이 없어 낮춰서 철학과에 간 거지. 원래는 전과하려고 했는데, 우리 과 교수님들을 보니 대한민국 최고야. 고건 씨의 아버지인 고형곤 교수님, 최재희 교수님 등. 그분들 냄새만 맡아도 대학생활 보람이 있겠더라고. 내가 대학시절 연극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고형곤 교수님이 계셔서 가능했어. 보름짜리 연극부 합숙훈련에 들어가는데 내가 메인 캐스팅을 맡았으니 같이 가야지. 고 교수님 찾아가 “저 대리출석 좀 하면 안 될까요?” 이랬어.(웃음) 안 될 일이지. 그런데 고 교수님이 쓱 웃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잘해” 그러더라고. 그래서 합숙을 갔지. 가끔은 ‘내가 대학을 졸업했던가 안 했던가’ 가물가물해.

조영남 고등학교(서울고) 때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이순재 우리 동기들이 제일 비참한 고등학생이었어. 1학년 때 6·25가 났으니까.

조영남 형, 나는 고등학교 때 4·19가 났어.

이순재 4·19는 괜찮지. 요즘 보면 어떤 사람들이 6·25를 한국이 일으켰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그날 내 동생하고 수영복 팬티 사려고 동아백화점에 갔다가 직접 봤어. 그때 우리 집이 비누공장을 해서 돈을 좀 벌 때였거든. 여름에 개천에나 가려고 수영복을 구경하는데 지프차가 나와서 “외출·휴가 나온 장병들은 즉시 귀대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거야. 어느 나라가 군인들 외출·휴가 보내고 전쟁을 일으키나?

조영남 나는 4·19 때 선배들이 각목 들고 교실에 들어와서 무조건 나가서 뛰라는 거야. 왜 뛰는지도 모르고 시청 앞으로 뛰어가는데 너무 재미있었어. 고등학교 때 6·25가 났으면 완전 ‘조선 말엽’ 사람이네.(웃음) 이제 저도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중에 생존해 계신 분이 얼마 없어요. 형 말고 불암이 형 있고…. 요즘에는 뭐 촬영하고 있어요?
이순재 영화 하나 찍었어. <굿모닝 프레지던트>라고 대통령을 다룬 영화야. 3명의 대통령이 나오는데 나랑 장동건·고두심이야.

조영남 코믹 드라마겠네?

이순재 그렇지. 그런데 묘하게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더라고. 내가 맡은 역할이 집권하자마자 국민 대통합을 위해 대사면을 하거든.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도 대사면 했잖아? 이 캐릭터가 매우 청렴한 대통령인데, 복권 발행 기념으로 번호 하나를 써냈다가 이게 1등이 되면서 엄청 고민하는 내용이지.

조영남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거 하면 대충 감이 잡혀요? 흥행이 되겠다, 안 되겠다 하는 거요.

이순재 드라마는 대본을 딱 봤을 때 내가 표현할 여지가 있구나, 내가 역할로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대목이 있구나 싶으면 잘돼. 배우가 새롭게 창조할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 드라마는 리얼리티와 사실성이 있어야 해. 문장 자체가 감칠맛 있고 문체가 깔끔하게 빠져야 하고. 아, 참! 오늘 신문 보니 한운사 선생께서 돌아가셨대. 나하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야. 196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가 시작할 때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였지.

조영남 한운사 선생님 작품 중에서 형이 출연한 것으로는 뭐가 제일 유명해요?

이순재 좋은 작품 많이 했어. <서울이여, 안녕> 같은 거. 이미자 씨가 주제곡 불렀고, 김창숙이 데뷔한 작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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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정리 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 사진 최재영 월간중앙 사진부장 [pressc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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