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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중재 끝 … 엘리엇, 한국 정부 상대 7500억원대 ISD소송 현실화

중앙일보 2018.07.13 00:56 종합 8면 지면보기
12일 0시를 기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언제든지 한국 정부를 상대로 6억7000만 달러(약 7500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간소송(ISD)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13일 엘리엇이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이후 한국 정부와 엘리엇 간 협상이 중재기간(90일) 동안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법무부 관계자는 “엘리엇의 소송제기는 현실화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엘리엇 측 관계자는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위반했을뿐더러 한국 검찰의 기소, 최근 법원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결정은 명백한 전근대적 정경유착 행위”라며 “엘리엇은 한국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입은 손해를 보상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특히 엘리엇은 2년 전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예전 정부 인사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사실을 ISD 소송장에 적시하기로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엘리엇의 ISD 소송 안건은 2015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당시 엘리엇 등 외국인 투자자가 차별대우를 받았는지다. 3년 전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같은 정부 인사들이 삼성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등 한·미 FTA 협정문에 포함된 ‘내국인 동일 대우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 엘리엇의 제소 이유다.
 
한국 정부와 엘리엇 측은 지난달 중순 화상 회의까지 한 차례 열었으나 양 측 간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면서 협상이 무위로 끝났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조치로 달러 가치가 1120원대까지 오르면서 엘리엇의 청구금액은 3개월 전 대비 300억원가량 증가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엘리엇이 요구한 피해보상 금액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천문학적 금액인 만큼 일단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ISD 국가 패소 당한 한국 정부

최근 ISD 국가 패소 당한 한국 정부

이번 사건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공식 제소될 경우 박 전 대통령 등을 기소했던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 인사 상당수가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ISD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야만 할 전망이다. 3년 전인 2015년 5월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ISD 첫 심리가 이뤄졌을 당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 등 한국 경제관료들은 뉴욕 세계은행 산하 ICSID 법정에서 증언해야만 했다. 앞서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절차를 지연시키고 부당하게 과세를 해 46억7900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ICSID에 중재를 신청했다.
 
국내 국제분쟁 업계 전문가인 김두식 세종 대표변호사는 “ISD 패소를 피하기 위해선 현재 쟁점으로 등장한 결정에 참여한 검사들, 국민연금 관계자 대부분이 법정 증인으로 출석해야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영수 특검팀에서 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특검에서 근무했던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ICSID 법정에서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ISD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제분쟁 업계에 따르면 더 능력 있는 중재인을 선정할수록 ISD 본안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승소율이 높은 중재인일수록 요구하는 페이(지불금액)는 더욱 높다고 한다. 한국 정부 역시 엘리엇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계 로펌 ‘프레시필즈 브룩하이머데링어’(프레시필즈)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이 알려진 국제 분쟁 로펌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정했다. 프레시필즈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맡는 국내 법률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광장’이 법무부 입찰에 따라 선정됐다.
 
전 세계 신규 ISD 제기 건수

전 세계 신규 ISD 제기 건수

국제분쟁 분야에서 십수년째 근무한 한 변호사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 통상 분쟁 시장에서 한국 정부가 다루기에는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들로만 라인업이 구성됐다”며 “한국 국적인 입장에선 향후 어떤 결론이 나올지 상당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법률대리인으로는 영국계 법무법인 ‘스리크라운’이 수석 변호인을 맡고 미국 연방검사를 지낸 마이클 김 대표가 이끄는 미국 로펌 ‘코브레앤킴’, 국제분쟁 전문 로펌 KL파트너스가 이름을 올렸다.
 
김범수 KL파트너스 변호사는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국제분쟁 등 통상 업무를 개척한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에 재직 중이던 2012년 한국 정부와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 간 ISD 소송 당시 론스타 측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소송 규모만 5조5000억원인 론스타의 ISD 소송은 2016년 6월 최종변론까지 끝났지만 2년째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다른 통상분야 전문 변호사는 “해외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한국 정부의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납부한 세금 가운데 상당수가 론스타에 내야 할 피해 보상 금액으로 지급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론스타 ISD에만 지금까지 4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한국 정부는 지난달 이란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730억원 규모 ISD 재판에서 패소한 상태다. 엘리엇뿐 아니라 미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 역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정부에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ISD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김정식 전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레이건식 무역 전쟁’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통상 문제에서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어떤 조치든 마다하지 않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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