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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김상조 “은산분리 완화” 왜 옳은지 케이뱅크 가보면 안다

중앙일보 2018.07.12 00:13 종합 25면 지면보기
서경호의 이슈 현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6일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출신 김 위원장의 작심 발언이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은행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에 방화벽을 세운 은산분리 규제에 대한 반성이다. 그는 “은행법의 은산분리와 관련한 산업자본에 대한 판단 기준은 2002년에 도입된 것인데,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의 근본주의 성향을 비판한 김 위원장의 인터뷰는 은산분리 규제의 강력한 옹호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비판(10일자 한겨레 “성장 앞세운 규제 완화 조급증…정부 정책 과거 회귀 조짐”)으로 이어졌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걸까. 헷갈릴 땐 현장에 가면 답이 있다.
 
케이뱅크 15층의 직원 카페. [사진 케이뱅크]

케이뱅크 15층의 직원 카페. [사진 케이뱅크]

10일 광화문 더케이트윈타워 B동. 건물 상단에 케이뱅크 간판이 도드라졌다. 15~16층에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둥지를 틀고 있다. 15층 직원용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멋졌다. 경복궁과 그 너머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케이뱅크는 처음엔 현장 취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12일 예정된 1500억원 규모의 증자에 조직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서다. 회사 분위기라도 좀 보자고 거듭 요청해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사무실 곳곳엔 ‘호칭이 문화를 결정한다’ ‘낮아지는 것은 당신의 직위가 아닌 소통의 벽’ 등의 만화 포스터가 나붙어 있었다. 이 회사 정재윤 부장은 “임원과 보직 간부를 제외한 모든 직원의 호칭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님’으로 통일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은 서비스의 편리성과 금리 혜택을 무기로 초반 흥행 돌풍을 이어갔다. 지난해 4월 3일 서비스를 시작한 케이뱅크는 2017년 한 해 목표였던 대출 4000억원, 수신 5000억원을 출범 두 달 만에 달성했다. 올 6월 말 기준으로 카뱅과 케이뱅크의 대출잔액은 각각 6조8100억원과 1조1300억원, 수신잔액은 8조3000억원과 1조5700억원, 고객 수는 618만 명과 76만 명이다.
 
처음엔 기존 은행권을 긴장하게 하는 ‘메기효과’가 있었다. 인터넷은행의 강점인 비대면 거래가 은행권에 확산됐다. 신한·국민 등 주요 은행이 금융 앱을 통합하는 등 디지털 전략을 강화하면서 지난해 은행권의 비대면 채널 대출은 300% 증가했다. 금리와 수수료 경쟁도 본격화했다. 지난해 4월 케이뱅크 출범 당시 대출금리는 시중은행보다 1~2%포인트 낮았고 해외송금 수수료도 기존 은행의 10분의 1이었다. 기존 은행은 대출금리와 수수료를 내릴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소비자에게 이득이 돌아갔다. 은행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중신용자를 위한 중금리 대출 시장이 커진 것도 인터넷은행 덕분이다.
 
카페에선 경복궁과 청와대, 인왕산과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경호 기자]

카페에선 경복궁과 청와대, 인왕산과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경호 기자]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터넷은행의 여수신 규모와 고객 수의 폭발적 증가세는 갈수록 시들해졌다. 지난해 인터넷은행의 자산 비중은 전체 은행의 0.2%에 불과하다. ‘메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꾸라지’나 ‘피라미’에 불과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기존 은행이 앱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인터넷은행의 차별성이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권을 상대하기엔 몸집이 너무 가볍고, 그렇다고 벤처의 혁신성을 기대하기엔 너무 무겁다”며 “기존 은행이 하는 모든 사업 영역에서 혁신하는 건 불가능하고 한두 가지 서비스의 혁신만으로는 수익성을 맞추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경기도 분당의 카카오뱅크 사무실 풍경. [중앙포토]

지난해 8월 경기도 분당의 카카오뱅크 사무실 풍경. [중앙포토]

인터넷은행은 은산분리 규제 탓에 혁신의 기회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산업자본은 은행의 의결권 주식은 4%, 비의결권 주식은 10%까지만 가질 수 있다.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고 기업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돼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제라지만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두고 시장에 뛰어든 인터넷은행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와 다르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KT와 카카오의 주도권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카뱅은 58%의 지분을 가진 한국투자금융지주가 금융주력자로 나서 증자 문제를 풀어가고 있지만 케이뱅크는 20개 주주로 쪼개진 지분 구성 탓에 증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본금이 부족하면 대출을 계속 늘릴 수 없다. 최저 연 3.14%인 케이뱅크의 ‘직장인K 신용대출’이나 ‘직장인K마이너스 통장’ 같은 대출상품 판매가 수시로 중단되는 것도 이래서다. 옥성환 케이뱅크 경영기획본부장은 “수수료 0%대의 앱투앱(app to app) 간편 결제나 비대면으로 주말에도 아파트 담보대출이 가능한 상품처럼 혁신적인 서비스를 많이 준비해뒀지만 자본금을 늘리지 못해 손발이 묶여있는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꽉 막힌 명절 고속도로처럼 정상적인 상품 판매가 어려운 답답한 규제 아래서는 혁신의 쾌속 질주를 기대할 수 없다.
 
다행히 청와대와 여당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개최하기로 했다가 막판에 연기된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 점검회의에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와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핵심안건으로 올라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의제로 선택했다는 것만 해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했다. 그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기업은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하지 말고 죄가 있으면 엄단하는 보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며  “도그마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 일부 의원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여전히 반대한다. 참여연대는 지난 5일 금융위에 보낸 질의서에서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이며 ▶금융위의 기존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최종 의견과도 배치되고 ▶고용을 줄이려는 기존 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전환하거나 알리바바나 아마존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얻어 사실상 은행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옥성환 케이뱅크 본부장은 “인터넷은행은 구조적으로 개인 대출 중심이어서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한다는 우려는 지나치다”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느냐”고 했다. 그는 “현행 은산분리 규제로 인터넷은행이 메기 역할을 못 하면 금융소비자가 아닌 은행의 귀족노조와 고금리 신용대출 수익에 의존하는 카드사 등 기존 사업자만 이득을 본다”며 “은산분리 규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답답해했다.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는 어느새 규제 개혁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인터넷은행의 혁신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기 전에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로 재벌 개혁에 앞장섰던 전성인·김상조 두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노선을 달리하더니 은산분리 완화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했다. 나는 김상조가 옳다고 본다. 고사(枯死) 직전의 케이뱅크에는 새로운 금융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300인의 전사(戰士)가 있었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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