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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 비 온 뒤, 처진 달팽이
권혁재 기자 사진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비 온 뒤, 처진 달팽이

중앙일보 2018.07.05 07:00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비 그치고 나니 햇볕이 작열합니다.
햇볕이 하도 뜨거워 땅만 보고 걷습니다.
온통 붉은 바닥에 홀로 떨어진 초록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서 뭔가가 꼬물거리고 있습니다.
달팽이입니다.
비 올 때 길을 나섰다가 돌아가지 못했나 봅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달팽이는 바닥이 뜨거운지 쉽사리 나뭇잎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느릿느릿 잎 위에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한참을 서성이더니 마지못해 잎을 벗어납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그런데 하필이면 방향이 숲과 반대입니다.
기껏 기어간 곳이 벽입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더듬이를 뻗어 이리저리 살피더니 발길을 되돌립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숲까지 거리는 족히 30m입니다.  
달팽이에겐 까마득한 거리입니다.
게다가 방향을 찾지도 못합니다.
폭염에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나뭇잎에 올려 숲속에 놓아주었습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오래지 않아 다른 달팽이를 봤습니다.
벽에 붙은 채였습니다.
껍데기가 마를 대로 말랐습니다.
건드려 보아도 미동도 없습니다.
떼서 살펴보려는데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억지로 뗀 자리에 액체가 말라 굳은 흔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말라 죽은 것 같았습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혹시나 하여 식수대 근처 물이 흥건한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미동도 안 합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더듬이가 빠져나왔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아서 온몸으로 물을 헤치고 다닙니다.
한참 그렇게 노닐다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다음날 또 다른 달팽이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도 벽에 붙은 채였습니다.
비 그친 지 이틀째이니 아무래도 죽은 듯 보였습니다.
어제의 기억도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뗐습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그리고는 물이 있는 곳에 올려 두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껍데기 속에서 더듬이가 빠져나왔습니다.
 
달팽이/ 20180703

달팽이/ 20180703

살아있었습니다.
기특했습니다.
비 그친 뒤 숲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처진 달팽이들,
마르고 거칠어지고 생채기 난  껍데기 안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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