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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메이지 문화행사도 아베의 ‘과거사 무시’ 선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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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메이지 문화행사도 아베의 ‘과거사 무시’ 선전장으로

중앙일보 2018.07.04 00:29 종합 21면 지면보기
메이지 유신 150주년 현장을 가다 
메이지 유신 150주년인 올해 NHK 대하드라마 ‘세고돈’의 포스터. 메이지 유신 주역 중 조선 침략을 극력 주장했던 ‘일본 극우의 아이콘’ 사이고 다카모리를 용기와 실행력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지도자로 묘사한다.[사진=NHK 포스터 촬영]

메이지 유신 150주년인 올해 NHK 대하드라마 ‘세고돈’의 포스터. 메이지 유신 주역 중 조선 침략을 극력 주장했던 ‘일본 극우의 아이콘’ 사이고 다카모리를 용기와 실행력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지도자로 묘사한다.[사진=NHK 포스터 촬영]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맞은 일본에선 전시회, 드라마 방영, 미술전 개최 등 관련 문화행사가 한창이었다. 문제는 문화행사가 문화가 아닌 정치행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다. 교토의 메이지유신 기념관인 료젠(霊山)역사관에선 ‘메이지 유신 3걸’의 한 명으로 통하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1828~1877)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다카모리는 유신 주역의 한 사람으로 조선을 침략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해 일제 아시아 침략의 바탕이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와 대외 침략의 아이콘이다. 전시관에선 그런 인물을 애국자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를 영웅으로 묘사한 그림과 석고상도 보였다. 반란을 일으켰다 패배해 할복할 때 썼다는 녹슨 칼까지 전시됐다.
 
사쓰마의 다카모리는 료마의 주선으로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1833~1877)를 만나 사초동맹을 이뤘다. 하지만 이 둘은 조선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다카모리는 조선을 침략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을 앞세웠다. 조선에 사신으로 보내주면 국왕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벌여 처형을 당할 테니 이를 핑계로 조선을 침략하라고 부추길 정도였다. 다카요시는 정한론을 주장했던 일본 극우사상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년)의 제자였지만 이에 반대했다. 또 하나의 유신삼걸의 한 명으로 사초동맹 체결 현장에 있었던 사쓰마 출신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1830~1878년)는 성급한 대외 팽창보다 부국강병을 우선시했다.  
 
메이지 유신 전시회에 등장한 다카모리 석고상. 그를 영웅으로 미화한 작품의 하나다.

메이지 유신 전시회에 등장한 다카모리 석고상. 그를 영웅으로 미화한 작품의 하나다.

더욱 문제는 올해의 NHK 대하드라마인 ‘세고돈(西郷どん)’의 주인공이 바로 다카모리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다카모리를 ‘용기와 실행력으로 시대를 열고, 사랑이 넘치는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세고돈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애칭이다. 공신력 있다는 NHK가 메이지 유신 3걸 중에서 하필이면 극우파의 심벌로 정한론을 주장했던 다카모리를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맞는 올해 대하드라마 주인공으로 고른 것은 이웃나라를 불쾌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힘을 얻은 일본이 사쓰마와 조슈 출신 군인들의 무단 통치를 거치면서 45년까지 아시아를 전란으로 몰아넣은 과거를 생각할 때 이는 전쟁 피해국 전체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사초동맹 회담장은 오늘날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이마데가와(今出川) 캠퍼스로 변해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도시샤는 막부파의 핵심으로 메이지 유신에 반대했던 아이즈(会津藩)한 출신인 니지마 야에(新島八重)의 남편 니지마 조(新島襄)가 세운 대학이다. 간호사가 된 야에는 자매학교인 도시샤 여자대학을 설립했다. 역적으로 몰린 아이즈 출신이 리버럴 교육으로 활로를 찾은 셈이다.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이 도시샤에 유학한 것도 이러한 리버럴 정신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정에선 나란히 설치된 두 시인의 시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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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는 오늘날 후쿠시마(福島) 서부에 해당한다. 2011년 대지진에 이어 대규모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 일본 NHK는 2013년 『야에의 벚꽃』이라는 대하드라마로 후쿠시마 주민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역적으로 치부됐던 아이즈 출신들과 역사적 화해를 시도했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올해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 보인다.
 
이런 상황은 지난 5월 찾았던 교토와 도쿄의 미술관도 다르지 않았다. 교토국립근대미술관은 ‘메이지 150년, 메이지의 일본화와 공예’ 특별전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메이지 유신의 해에 태어나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요코야마 다이칸(横山大観·1868~1958) 특별전을 각각 열고 있었다. 하나같이 일본의 뛰어난 문화·예술 작품이었다. 벚꽃과 후지산 등 일본을 상징하는 그림을 즐겨 그린 요코야마 다이칸은 현대 미술계에서 ‘일본화’ 장르의 수준을 한껏 높인 대가로 꼽힌다
 
문제는 이런 전시회가 일본 미술이나 예술을 보여주는 기획이 아니라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문화대국·문명대국·경제대국이 된 것만 온통 강조하기 위해 기획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저서를 내고 부끄러운 과거사를 무시하며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를 정책으로 추진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의도에 맞춘 것이라는 평가다. 아베가 이런 일련의 메이지 유신 관련 전시회를 통해 일본을 전범국가로 욕을 먹는 상태가 되기 전의 ‘아름다운’ 상태로 돌리려고 시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한 메이지 관련 전시는 아베의 일본이 자칫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도취적이며 편협한 민족주의로 가는 조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이웃나라와 함께 기념하려면 그 그늘에 대한 성찰, 주변국에 대한 적극적인 소통, 그리고 역사를 보는 겸허한 자세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
1894~95년 청일전쟁
일본, 대만·펑후제도 차지. 랴오둥반도는 삼국간섭으로 반납
 
1896년 을미사변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 경복궁 무단 침입해 명성황후 시해
 
1905년 러일전쟁 
일본, 조선 외교권 박탈하고 통감부 설치
 
1907년 일본의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일본, 고종 강제퇴위 시키고 내정권 박탈과 군대 해산
 
1910년 조선강점
일본, 조선 총독부 설치/초대 총독 조슈한 출신 데라우치
 
1923년 간토(関東) 대지진
무고한 조선 민간인 대학살(수천 명 살해 추정)
 
1931~32년 만주사변
일본, 중국 동북지방 점령해 괴뢰국가 만주국 수립
 
1937~45년 중일전쟁
일본, 중국 전역 침략
 
1937~38년 난징(南京) 대학살
중국측, 일본의 학살 피해자가 3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
 
1941~45년 태평양전쟁
일본, 진주만 공격해 미국·영국 등과 교전하다 항복
 
1946년 11월
일본, 전쟁포기·전력불보유·교전권부인 담은 일본국 헌법(평화헌법) 반포
 
1947년
일본국 헌법에 의한 일본국회 개원
 
현재
야마구치 출신 아베 총리의 정권, 평화헌법 폐지 개헌 추진중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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