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비트코인 얼리 어답터는 게이머…그래서 한국이 암호화폐 거래의 메카”

“비트코인 얼리 어답터는 게이머…그래서 한국이 암호화폐 거래의 메카”

중앙일보 2018.07.02 02:17
“초기 비트코인을 이해한 이들(얼리 어답터, early adopter)은 게이머(gamer)다. 이게 왜 한국이, 특히 서울이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거래의 메카가 됐는지에 대한 이유다.”
 
브록 피어스(38ㆍ사진) 비트코인재단 이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연말과 올 연초,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뜨거웠다. 국내 1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경우 하루 거래 대금이 10조원을 찍은 날도 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 11월 말 암호화폐 투자 열풍에 대해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 현상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우려했다. 
출처: zimbio.com

출처: zimbio.com

 
투기 광풍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은 국내 시장에서 미국 등 다른 시장보다 비싸게 거래됐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다. 지난해 말 CNN 방송은 기자가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들고 “한국에서 비트코인을 사려면 국제시세보다 15~25%를 더 줘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지난 2월 미국 상원에서 열린 암호화폐 청문회에서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는 한국의 암호화폐 열풍의 이유를 게임 시장의 발달로 꼽았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Mt. Gox)는 원래 ‘매직: 더 개더링’이라는 판타지 게임에서 사용하는 카드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시작됐다. 게임 머니는 게임 세계 안이라면 현실의 자아가 어디에 있건 국경의 장벽 없이 그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암호화폐와 닮았다. 
 
피어스는 이더리움ㆍ이오스 등 주요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고문 등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 초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암호화폐 부자’ 리스트 9위에 올랐다. 현재는 DNA라는 펀드를 조성,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역삼 GS타워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블록체인 오픈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앞서 <“비트코인은 10년짜리 실험…잃으면 안 될 돈 투자해선 안 돼” 브록 피어스 비트코인재단 이사(상)> 참조. ※는 편집자 주.)

 
게임 시장 발달과 암호화폐 거래 활성화가 어떤 관계가 있나.
“과거 브로드밴드가 깔린 나라가 얼마나 됐겠나(※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는 브로드밴드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초기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가 한국에서 생겨난 것은 브로드밴드 위에서 게임이 돌아갔기 때문이다(※일반 회선의 경우엔 속도가 떨어져 게임을 즐길 수가 없다).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세계 수준의 거래소가 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2004~2006년 매년 내가 한국에 왔던 이유도 게임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한국에 왔었다고?
“내가 아이템매니아와 아이템베이를 합병했다. 두 개의 주요한 게임 아이템 거래소다. 쉽게 말해 11년 전쯤엔 내가 모든 한국의 게임 아이템 거래업의 회장이었다는 얘기다.”

(※피어스는 아역 배우 출신 사업가다. 17세였던 1999년 유튜브와 비슷한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Digital Entertainment NetworkㆍDEN)’를 공동 창업했다. 닷컴 버블로 사업을 접은 뒤엔 게임 쪽으로 눈을 돌렸다. 2001년 스페인에서 디지털 통화 거래 회사인 ‘인터넷 게이밍 엔터테인먼트(Internet Gaming EntertainmentㆍIGE)’를 설립했다. IGE는 2006년 골드만삭스로부터 6000만 달러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해 상반기 당시 국내 2위 업체인 아이템매니아를 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1위 사업자인 아이템베이까지 사들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인수는 불발에 그쳤다. 이후 2012년 아이템베이가 골드만삭스에 매각되면서 두 회사가 합병 수순을 밟았다. 골드만삭스가 대주주인 어피니티미디어(IGE 사이트 운영)가 아이템매니아 지분을 100% 보유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국내 메이저 거래소인 빗썸의 최대주주(76%)가 엑스씨피인데, 엑스씨피의 감사인 이정훈씨가 아이템매니아의 전 대표다.)

 
비트코인,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탄생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삶을 얼마나 바꿨는지 의문이다.  
“블록체인은 탄생한 지 10년‘밖에’ 안 됐다. 인터넷이 언제 나왔나(※인터넷은 미국에서 1960년대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이용됐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생활에서 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다. 30~40년이 걸렸다. 블록체인은 이제 겨우 10년 됐다. 첫 번째 10년은 실험 단계였다. 이제 막 프로토타입 단계를 벗어났다. 최근에 나온 이오스(EOS)는 3세대 블록체인이다. 확장성(Scalability) 문제를 해결해 초당 수백만 건의 거래를 처리한다. 수수료가 거의 무료다. 소비자 편익 지향적이다. 초기 블록체인(비트코인)은 금융 부문에 적합하게 설계됐다. 가치가 있는 걸 안전하게 전송하는데 사람들은 그 정도 수수료는 아까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아마존에 접속해 페이지를 바꿀 때마다 수수료를 낸다면? 게임을 하는데 어떤 액션을 할 때마다 수수료를 낸다면? 누가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고, 그런 게임을 하겠나. 블록체인이 인터넷과 같이 기능하려면 수수료가 없어야 한다. 1세대 블록체인인 비트코인이나 2세대 이더리움은 이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3세대 블록체인인 이오스는 BP(Block Producer, 일종의 채굴자) 개념을 도입해 BP들이 이오스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모든 수수료를 부담한다. 이오스 플랫폼 위에서 돌아가는 페이스북을 생각해 봐라. 모든 데이터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광고 수익을 회사(페이스북)가 아니라 사용자와 커뮤니티가 온전히 챙길 수 있다. 그간 네트워크 효과를 만드는 건 사용자들인데 마켓플레이스(플랫폼)를 제공한 회사들이 이익을 너무 많이 먹었다.”

 
지금까지 나온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Decentralized Application, 일명 DApp)들은 그들이 당초 약속한 것에 비해 보여준 게 없다.
“아직까지 (블록체인의) 확장성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수수료가 비싸서는 금융 분야를 제외하곤 유용하게 쓰기 어렵다. 하지만, 스팀(Steem)을 보자. 스팀은 탈중앙화된 레딧(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모든 블록체인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스팀에 들어가 보면 그냥 웹사이트처럼 보일 거다. 하지만 그건 웹사이트가 아니라 ‘블록 익스플로러’다. 수수료가 무료인, 온전히 탈중앙화된 분산 시스템이다. 미래에는 스팀과 같은 디앱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이오스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한 내내 이오스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이오스 뱃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이오스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를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인가?
“우리는 모두 사토시다(※사토시 정신은 탈중앙화고, 그것을 추구하면 모두 사토시라는 의미다). 사토시는 여러 사람이다. 특정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념이다. 제3자의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다. 중간에서 신뢰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중간자들은 제 몫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겨갔다. 사토시는 그런 중간자를 없애 더 많은 이익을 공유하자는 입장이다.”

 
출처: NYT

출처: NYT

연초 뉴욕타임스(NYT) 기사('Making a Crypto Utopia in Puerto Rico')를 보면 푸에르토리코에 일종의 유토피아, 일명 ‘푸에르토피아’를 만들겠다고 그 섬으로 이주한 당신과 같은 암호화폐 관련업 종사자들이 소개됐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인가.
“우리가 이 지구에 사는 시간은 짧다. LNT(Leave No Trace, 흔적 없는 삶) 개념은 지속가능성과 연결돼 있다. 그런데 세계는 지금 지속가능성보다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바로 재생(regeneration)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지금 두뇌 유출이 심각하다.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식 자본, 인간 자본, 그리고 금융 자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리더라는 사람들이 이곳을 떠난다. 푸에르토리코의 공과 대학의 인재들은 모두 나사ㆍ구글ㆍ페이스북 등이 데려간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드리머, 창업자를 의미)과 그런 회사(스타트업)는 푸에르토리코 어디에 있나. 푸에르토리코의 어린 세대가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걸 돕는 게 목표다.”

 
21세기 버전의 ‘식민지화’처럼 들린다.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대서양을 건너왔을 때 첫 번째 도착지는 바하마였고, 두 번째가 푸에르토리코였다. 그는 푸에르토리코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식민주의의 시작이 푸에르토리코다. 500년의 역사가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오픈 소스 운동가들이다. 분산과 탈중앙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산업의 개념조차 모르는 이들이 우리를 비난한다. 우리는 단지, 그들을 돕고 싶을 뿐이다. 지난 500년간 그랬으니 우리도 그럴 거라고 지레 생각하지는 말아달라.”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배너

고란의 어쩌다 투자

구독하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