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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북핵 폐기 절차·일정 촘촘히…94년 제네바 합의, 두루뭉수리 싱가포르 성명과 달랐다

북핵 폐기 절차·일정 촘촘히…94년 제네바 합의, 두루뭉수리 싱가포르 성명과 달랐다

중앙일보 2018.06.13 19:40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연소 실험을 현지 지도하는 장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회담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한 군데를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사일은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데 이 시험장은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등을 장착한 엔진을 지상 구조물에 걸어놓은 뒤 실제로 연료를 연소시켜 추진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설이다. 2만 초 정도 지상 연소시험을 해야 로켓 엔진 하나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금이 많이 드는 시설이다. [노동신문]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연소 실험을 현지 지도하는 장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회담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한 군데를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사일은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데 이 시험장은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 등을 장착한 엔진을 지상 구조물에 걸어놓은 뒤 실제로 연료를 연소시켜 추진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설이다. 2만 초 정도 지상 연소시험을 해야 로켓 엔진 하나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금이 많이 드는 시설이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 뒤 발표한 6·12 공동성명이 비핵화 문제에서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개 항으로 이뤄진 공동성명은 평화·번영의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한국전 미군 포로·실종자 유해 발굴 등의 내용을 선언적이고 포괄적으로 담았다.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략군사령부 지휘소와 지하 벙커를 방문해 현지 지도하는 모습. 전략군이 한국 전역을 4등분해 미사일 타격권을 설정해놓은 사실이 당시 공개된 사진으로 처음 포착됐다.북한 핵과 미사일은 미국의 안보 위협일뿐 아니라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핵심 안보 사안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략군사령부 지휘소와 지하 벙커를 방문해 현지 지도하는 모습. 전략군이 한국 전역을 4등분해 미사일 타격권을 설정해놓은 사실이 당시 공개된 사진으로 처음 포착됐다.북한 핵과 미사일은 미국의 안보 위협일뿐 아니라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핵심 안보 사안이다. [연합뉴스]

 
정작 양국 최대 현안이자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사안인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목표·절차·검증방법 등은 후속 대화로 미뤘다. 이 때문에 한국·중국 정부 등의 긍정 평가에도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 상당수 미국 미디어와 미국의 전문가들은 디테일(세부사항)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전날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미사일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전날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미사일의 모습. [연합뉴스]

특히 그간 북·미 간에 합의해 발표했던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공동 코뮈니케,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를 피하기가 어렵다. 과거 합의를 살펴보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1994년 10월 21일 미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의 김정일 정권(김일성 주석은 7월 사망)이 끌어낸 제네바 합의는 서로 할 일을 상세하게 규정했다. 
 
1994년 10월 21일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대사(왼쪽)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의 기본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제네바합의는 북핵 폐기를 위한 과정과 일정, 그리고 보상이 상세하게 규정됐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중앙포토]

1994년 10월 21일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국 핵대사(왼쪽)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의 기본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제네바합의는 북핵 폐기를 위한 과정과 일정, 그리고 보상이 상세하게 규정됐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중앙포토]

당시 북한은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흑연감속형 원자로와 관련 설비를 폐기하고 일절 추가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북한에 (핵물질 추출이 어려운) 2기의 중수로 원자로를 건설해주기고 중유를 공급하기로 했다. 북·미 간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과 평화협정 체결 등 관계 정상화 목표도 상세히 담았다. 
무엇보다 북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해체할지와 관련한 방식과 일정을 소상하게 합의했다. 경수로 건설 진척 상황에 국제기구의 사찰과 검증, 흑연감속로와 관련 핵 설비 폐기, 핵연료의 국외 반출 시기를 연동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도 확립했다. 하지만 공화당 주도의 미 의회에서 경수로 건설 예산의 승인을 거부하고, 99년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면서 합의는 2003년 파기 운명을 맞았다. 
2000년 10월 김정일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총정지국장(차수)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북미는 당시 적대관계 청산을 담은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중앙포토]

2000년 10월 김정일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총정지국장(차수)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북미는 당시 적대관계 청산을 담은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중앙포토]

 
2000년 10월 12일 클린턴 행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한 조명록 차수와 함께 발표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도 당시 기대를 모았다. 양측은 94년 제네바 합의를 바탕으로 상호 적대 의사가 없음을 선언하고 정전체제를 평화보장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기로 했다. 외교관계 정상화, 경제협력·교류발전 추진도 포함했다. 당시 미국이 의심하던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 접근에도 합의했다. 이후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협의를 위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하지만, 2001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코뮈니케는 휴짓조각이 됐다. 
조명록 북한 총정치국장의 방미에 이어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북한은 빌 클린턴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방북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양AP=연합뉴스]

조명록 북한 총정치국장의 방미에 이어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북한은 빌 클린턴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방북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양AP=연합뉴스]

당시 코뮈니케에선 북·미가 미사일 관련 협상을 하는 동안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는 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임을 시사해 대조를 이룬다. 트럼프가 6·12 공동성명 제4항에 새삼스럽게 삽입한 미군 유해 발굴 문제도 이미 18년 전 북·미 코뮤니케에 담긴 내용의 복제판이다.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싱가포르 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합의문을 13일 보도했다. 4항의 미군 유해발굴과 관련한 내용이다. [뉴스 1]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싱가포르 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합의문을 13일 보도했다. 4항의 미군 유해발굴과 관련한 내용이다. [뉴스 1]

 
이미 2000년 코뮈니케에서 미국은 북한의 실종 미군 유해 발굴 협조에, 북한은 미국의 식량·의약품 지원에 각각 감사의 뜻을 표했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북한의 함경남도 장진호 지역과 평안북도 운산 등에는 수습하지 못한 미군과 국군 등 유엔군 유해가 5000구 이상 묻힌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과 북한은 1996~2005년 33차례에 걸쳐 공동 또는 단독 발굴작업을 폈지만, 유해 229를 수습해 미국으로 보냈을 뿐이다.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결과적으로 합의는 깨졌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미국), 사사에 겐이치로(일본), 우다웨이(중국), 송민순(한국), 김계관(북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러시아) 수석대표. [중앙포토]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결과적으로 합의는 깨졌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미국), 사사에 겐이치로(일본), 우다웨이(중국), 송민순(한국), 김계관(북한),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러시아) 수석대표. [중앙포토]

2005년 9월 19일엔 당시 남북한과 미·중·일·러가 제4차 6자회담 중에 9·19 공동성명을 내놨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현존하는 모든 핵 계획을 포기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조속히 복귀해 안전 조치와 검증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 대가로 미국 등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대북 에너지 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개시 등을 약속했다.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고 북·미 간 신뢰구축을 추구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다. 이 성명도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고 2009년 “6자회담 영원히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면서 사문화됐다.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수뇌가 처음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수뇌가 처음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9·19 공동성명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북·미가 함께 이룬 외교협상의 결과다. 북·미 간 첫 정상회담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비중이 대단하다. 지난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따른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북핵 폐기의 원칙·목표·일정·절차·검증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포괄적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에 그쳤다는 점은 지적할 수밖에 없다.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악수하는 모습을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악수하는 모습을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아무리 상세하고 구체적인 합의라도 신뢰와 행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는 제네바 합의, 북·미 공동 코뮈니케, 9·19 공동성명의 운명이 잘 말해준다. 앞으로 북·미간 고위급·실무급 협상과 워싱턴이나 평양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추가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논의가 진전되도록 외교력을 집중할 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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