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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묻다, 요즘 젊은이는 왜 분노하나

중앙일보 2018.05.17 06:00 종합 22면 지면보기
‘버닝’의 주인공 종수(유아인 분)는 문예창작과를 나와 글을 쓰려는 청년. 아르바이트를 하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해미(전종수 분)를 우연히 만나며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사진 파인하우스필름·CGV아트하우스]

‘버닝’의 주인공 종수(유아인 분)는 문예창작과를 나와 글을 쓰려는 청년. 아르바이트를 하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해미(전종수 분)를 우연히 만나며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사진 파인하우스필름·CGV아트하우스]

이것은 우화일까, 현실일까. 17일 개봉하는 영화 ‘버닝’(이창동 감독)은 수수께끼 같은 세 청년에 대한 얘기다. 보는 시각에 따라 지독히 양극화된 지금 시대의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도, 혹은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상징과 문학적 은유가 곳곳에 박혀있는 우화로도 읽을 수 있는 영화다.
 
이야기는 어느 동네 마트에 배달을 갔던 청년 종수(유아인 분)가 판촉행사 도우미로 춤을 추고 있던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며 시작된다. 어린 시절 한 동네 친구라며 살갑게 다가온 해미는 자취방에 기르는 고양이 밥주는 일을 종수에게 부탁하고 아프리카 케냐로 여행을 떠난다. 돌아온 해미는 현지에서 만난 사이라며 ‘벤 오빠’(스티븐 연)를 스스럼없이 종수에게 소개한다. 직전에 해미와 퍽 가까워졌다고 여겼던 종수는 불편하고 불안한 기분에도 두 사람과 종종 어울린다. 헌데 벤이 취미라도 되는 듯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말하면서, 또 해미가 종적없이 사라져 연락이 안 되면서 종수의 불안과 영화의 긴장은 커진다.
 
세 사람 중 벤은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인물. 고급 빌라에 살며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그를 종수는 ‘위대한 개츠비’라고 표현한다.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 없는데 돈이 많은 수수께끼 청년이란 점에서다. 반면 해미나 종수는 돈벌이가 불안정한 것은 물론 가족에게 기대기도 힘든 처지란 게 갈수록 또렷해진다.
 
영화는 해미가 사는 서울 후암동의 볕 안 드는 자취방, 종수가 당분간 지내게 된 경기도 파주 농촌마을의 허름한 옛집, 벤이 사는 서울 반포의 빌라촌과 카페 등 뚜렷한 지명과 공간의 분위기로 이것이 동시대 한국땅에 사는 전혀 다른 처지의 청년들 얘기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는 리얼리즘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벤이 왜 해미를 가까이 하는지를 비롯해 스물스물 떠오르는 미스터리가 장르영화 같은 긴장과 뒤섞인다. 해미는 정말 고양이를 길렀는 지, 어린 시절 해미가 동네 우물에서 겪은 일이 실제였는지 등등. 달리 말해 해미 또한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종수와 처음 만난 날, 팬터마임을 배우고 있다며 귤이 없이도 귤을 까먹는 동작을 선보이는 모습부터도 예사롭지는 않다.
 
이창동 감독

이창동 감독

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 수상한 방화 취미를 지닌 남자, 그와 사귀다 빈털털이 신세로 팬터마임 모임에도 연락없이 사라진 여자 등 원작의 설정은 벤과 해미의 캐릭터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드러난다. 반면 종수는 두 사람의 얘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나’였던 원작과 달리 영화의 중심 축이자 또 하나의 미스터리다. 벤을 경원시하면서도 때론 부러움을 느끼고, 해미를 사랑한다면서도 몹쓸 말을 하는 감정 역시 복합적이다. 이창동 감독의 이전 영화 주인공들과도 다르다. ‘밀양’의 신애(전도연 분)나 ‘시’의 미자(윤정희 분)가 관객이 부인하기 힘든 윤리적 입장을 강렬하게 제시했다면, ‘버닝’의 종수는 결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는 인물이다.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는 하루키에 앞서 윌리엄 포크너가 1930년대 발표한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포크너의 단편은 마치 서부개척 시대 같은 느낌의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아들의 이야기. ‘버닝’의 종수 아버지가 폭력을 휘둘러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설정과 맥이 닿는다. ‘버닝’은 두 소설의 자취만 아니라 대사와 장면 곳곳에 새로운 비유와 상징이 때로는 공공연히 때로는 은밀하게 번득인다. 영상의 정서적 여운도 두드러진다. 세 청년이 파주 종수네 집 마당에서 와인을 마시다 바라보게 되는 저녁 노을과 땅거미가 덮여오는 하늘, 그 속에 춤을 추는 해미의 모습, 벤의 고백 이후 종수가 불안 속에 집 근처 비닐하우스 주변을 달리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시’ 이후 8년만의 신작인 이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창동 감독은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고민, 특히 젊은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금의 청년세대는 부모세대보다 못 살고 힘들어지는 최초의 세대일 지 모른다. 지금까지 세상은 발전해왔지만 더 이상 좋아질 거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지금 세대에게 무력감이나 분노 같은 게 있을 것이고 그런 젊은이들이 바라볼 때 세상이 수수께끼 같지 않을까. 왜, 무엇 때문에 자기가 어려운 건지 알기 힘든 분노 같은 게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직접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그런 젊은이의 상태를 이 세상 속의 미스터리에서 마주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는 촬영·연출·연기를 고루 호평하며 “이창동 감독이 젊은 세대가 지닌 트라우마를 애써 위로하지 않고 ‘절망적 공감’을 하는 태도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지점에서 다른 시각도 있다. 김혜선 영화저널리스트는 “젊은 세대의 시선에서 본 젊은 세대의 이야기라기 보다 결국 감독 세대에서 본 젊은 세대 이야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결말은 영화에 대한 전반적 평가와 맞물려 반응이 갈린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극단적인 동시에 전형적”이라고 비판했다. ‘버닝’은 칸영화제에서 16일(현지시간) 공식 상영을 통해 공개된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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