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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혀와 이빨 사이, 싸워도 평화 찾을 것

중앙일보 2018.05.17 00:32 종합 23면 지면보기
소말리아 작가 누르딘 파라. ’한국처럼 소말리아도 분단의 아픔을 겪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말리아 작가 누르딘 파라. ’한국처럼 소말리아도 분단의 아픔을 겪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반도 비핵화의 앞날이 예측불허다. 소말리아 소설가 누르딘 파라(73)는 “남북한이 주도해 정상회담을 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트럼프와 미국이 대화를 굴러가게 하는 엔진인 것처럼 주장하는 건 못마땅하다”고 했다. 미국, 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인 마당에 번지수 잘못 찾은 거 아닌가 싶지만 결국 비핵화의 최대 당사자인 남북 간의 대화가 근본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인 듯했다. 작가의 직관이 바탕에 깔린 시각이다.
 
파라는 이웃 에티오피아와 영토 분쟁 지역인 오가덴에서 성장했다. 10대 후반 미국 위스콘신 의대에서 장학금 제안을 받았지만 인도 펀자브대로 진학해 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유년 시절 폭력 체험을 배경으로 한 1986년 장편 『지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단골 거론된다.
 
그는 “한국과 소말리아는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많다”고 했다. 소말리아도 한국처럼 분단국가라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지난 12일 충북 옥천에서 열린 정지용문학제 참석차 한국을 찾은 파라를 11일 만났다. 이석호 아프리카문화연구소장이 인터뷰에 동행했다.
 
소말리아는 한국에는 해적 국가로 더 알려져 있다. 분단국가인가.
“1991년에 남북으로 나뉘었다. 과거 소말리아는 북쪽은 영국, 남쪽은 이탈리아 식민지였다. 60년 독립했으나 내전이 발발하면서 북쪽 소말리아가 분리독립했다(소말리랜드를 뜻하는 듯). 남·북 소말리아는 1200㎞ 떨어진 곳도 있다. 하지만 발음·억양이 다를 뿐 같은 말을 쓴다. 같은 사람들이고 같은 문화고 같은 신을 섬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 아닌가. 분리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국기가 다른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언어와 문화의 독창성이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이 곧 열린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제3자가 남북이 만나는 테이블에 앉아 말참견할 필요가 없다. 남북 정상 단둘이 만나 악수하고 냉면 먹고 대화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제3자를 신경 쓰지 않을 때 대화가 더 오래갈 수 있다.”
 
미국·중국 없이 비핵화는 가능하지 않다.
“그들을 초대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의 OK 없이 남북은 대화할 수 없다. 그게 지금 벌어지는 일의 비극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훨씬 많이 죽는다. 반대로 평화가 이뤄진다면 한국인이 훨씬 많은 이득을 얻는다.”
 
북한은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나.
“협상 테이블에 나오는 김정은이 당장 핵무기 관련 시설을 모두 폐기한다면 어떻게 협상을 계속할 수 있겠나. 궁금증은 미국이 최근 이란 핵 협의에서 탈퇴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의문은, 이스라엘은 핵무기가 없나. 그 얘기는 왜 안 하느냐는 점이다.”
 
남북 관계는 결국 어떻게 될까.
“지난 60년간의 불신 때문에 남북이 쉽게 결합하기는 어려울 거다. 통일된다 하더라도 독일이 겪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거다. 하지만 잘되지 않을까. 혀와 이빨은 가장 가까운 관계지만 서로 싸운다. 싸울 때 이빨이 혀를 물고, 혀는 이빨을 비난한다.”
 
낙관주의의 근거를 묻자 파라는 “나는 아침에 가장 낙관적이다. 밤에 잠자리 들기 전에는 비관적이다. 지금은 (오후이니까) 낙관적”이라고 답했다. 곧 정색하고는 “결국 당사자들이 평화를 위해 무얼 지불하겠느냐가 문제다. 북한이 작은 걸 지불하면 평화는 이뤄지지 않을 거다. 북한이 비핵화를 결단하고 남한도 비슷한 정도의 값비싼 걸 지불하면 평화는 작동할 것”이라고 했다.
 
소말리아는 지구 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다. 30년 넘게 내전 중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무대가 소말리아 내전이다. 서구 열강에 비우호적인 제3 세계 작가답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협력을 강조했다. 1955년 인도네시아에서 아프리카·아시아 협력을 선언한 반둥회의를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포스트 반둥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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