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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1세기 양극화가 무덤 속 마르크스를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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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1세기 양극화가 무덤 속 마르크스를 깨웠다

중앙일보 2018.05.03 00:49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해 찾았던 영국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무덤 앞은 쓸쓸하지 않았다. 누군가 놓아둔 꽃다발과 함께 ‘It's time to call Marx(이젠 마르크스를 부를 때다)’라고 적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는 5일로 탄생 200주년을 맞는 마르크스는 이처럼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회자하고 반추되는 사상가다.
 
사유재산 폐지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뼈대로 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운용에선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이 난 지 이미 오래다. 그의 이론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들어섰던 소련 등 고전적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미 1990년대에 마르크스주의를 용도 폐기했다. 현재 헌법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한 나라는 전 세계에 중국·베트남·라오스·쿠바 4개국뿐이다. 49년 공산당이 집권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내세우고 경제 발전에 나서면서 번영의 길에 접어들었다. 75년 통일과 공산화가 이룬 베트남도 86년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도입해 외자를 받아들이고 경제 개혁에 나섰다. 59년 혁명으로 일당독재 국가가 된 쿠바에선 2011년 공산당 스스로 경제사회개혁방안을 발표하고 민박·택시·식당·소형건설업 등 180여 분야를 민영화하면서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이런 시대에 마르크스를 다시 부르는 건 시대착오적일 것이다.
 
20세기 혁명·전쟁·냉전의 격동 관통 
 
카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

그런데도 마르크스주의의 생명력이 사라진 건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에 주목했던 그의 사상은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져도 노동자 소외는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빈부 격차와 박탈감은 21세기에도 도체에서 사회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소외 계급·계층이 탐욕스러운 기득권층에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때 내세우는 사회과학적인 틀로 지속해서 힘을 얻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경제나 사회가 삐걱거릴 때마다 다시 한번 펼쳐볼 수밖에 없는 참고서 노릇을 한다. 더구나 불평등·부익부 빈익빈·실업·공황·금융위기·갑질 등 자본주의의 각종 폐해가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이에 대한 경종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영감을 준다. 마르크스를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한 마르크스주의도 생명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실업 등 노동자 소외는 여전 
 
마르크스는 철학자·경제학자·정치이론가·역사학자·사회학자로서 19세기 당시 유럽을 배회하던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현실 세계에 끌어들인 학자로 평가받는다. 당시 서구는 영국에 이어 독일·프랑스·미국 등에서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국가들은 산업생산력을 앞세워 제국주의를 추구했으며 자본가들은 잉여가치를 축적하며 날로 재산을 불렸다. 그런데도 임금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소외는 깊어만 갔다. 당시 노동조건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치 열악했다. 영국에선 1833년에야 ‘공장입법’으로 9세 이하 어린이의 노동을 금지하고 14~18세 청소년은 하루 12시간 이하로만 일할 수 있게 됐다. 그 이전에는 어린이·청소년까지 광산이나 공장 등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런 비참한 상황에 지식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산업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사회적·경제적으로 구석으로 몰리기만 하는 노동자들의 ‘소외’에 주목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생산방식과 생산력 같은 하부구조가 법·제도·정치·철학·사고방식 같은 상부구조를 좌우한다는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제창했다. 그러면서 하부구조인 생산형태와 소유형태가 파괴되고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는 역사발전론을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류사회가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사회와 봉건주의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결국 계급혁명으로 붕괴하며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자본가와 지주 계급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평등사회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과 혁명론은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 성숙국가를 모델로 했다. 하지만 실제 공산주의 혁명은 자본주의 미성숙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1917년 처음 발생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끊임없는 개혁과 개량으로 오류를 수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계기로 20세기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됐다.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냉전으로 이어지면서 국제정치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본주의 문제 해결 위한 각성제로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서방 진영은 6·25전쟁·쿠바위기·베트남전쟁 등을 통해 사사건건 맞섰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을 받았다. 특히 한반도는 냉전의 주 무대가 됐다. 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무시한 사회주의 경제 실험은 인간의 자발적인 경제활동을 억압함으로써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경제난 속에서 소련은 91년 몰락했고 고전적 사회주의 실험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동유럽과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경제적 부흥을 꾀하고 있다. 베트남과 쿠바도 속도만 느리지만 사실상 같은 궤도에 접어들었다. 2018년 판문점 회담에 이은 북한의 내부 변화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나긴 여정에서 세계사적 종착역이 될 것인가. 세계의 눈이 한반도를 향하는 이유다.
 
마르크스를 만든 19세기, 마르크스가 만든 20세기
1776 미국 독립혁명  
1787 프랑스 혁명  
1799 나폴레옹 쿠데타로 집권, 1804 황제 즉위  
1811 영국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운동=노동자 생존운동)    
1818 카를 마르크스 탄생(5월 5일)  
1824 런던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단체 설립  
1825 영국에서 최초의 자본주의 공황/ 독일 산업혁명  
1833 영국 ‘공장입법’으로 9세 이하 노동금지,  
1836 미국 산업혁명  
1841 마르크스 예나대학 철학박사 학위  
1847  영국 ‘10시간 노동법’ 제정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주의자 동맹 결성  
1848년 마르크스‘공산당 선언’ 발표  
마르크스 뉴욕트리뷴 특파원 근무 시작(~1862)      
1850 마르크스 런던으로 이주  
1857년 최초의 세계공황  
1861 미국 남북전쟁/ 러시아 농노해방령/ 이탈리아 통일  
1863 미국 노예해방선언  
1864 마르크스『자본』제1권 완성/ 런던에서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 창립  
1866 국제노동자협회 1차대회(제네바)        
1867년 마르크스『자본』제1부 발간
1871 독일 통일 파리코뮨/ 러시아,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나로드니키(인민주의) 운동
1883 마르크스 별세,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안장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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