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휴대폰 500만명, 시장 500개 만들었지만 제재에 막힌 김정은

중앙일보 2018.04.18 01:25 종합 8면 지면보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이설주(뒷줄 왼쪽 다섯째·여섯째)가 지난 16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붉은 여성중대’ 공연을 관람한 뒤 무용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이설주(뒷줄 왼쪽 다섯째·여섯째)가 지난 16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붉은 여성중대’ 공연을 관람한 뒤 무용단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AP=연합뉴스]

북한 노래 ‘단숨에’는 김정은 시대를 상징한다. 2012년 창단된 모란봉악단의 대표곡이다. 경쾌한 전자악기의 리듬에 “단숨에”라는 가사를 되풀이한다.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이후 축하 공연에서 이 악단이 빼놓지 않고 연주하는 곡이다. 노래가 나올 때면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단숨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이후 추구하는 ‘단번 도약’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한다. 단번 도약은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 과학기술을 통해 빠른 속도로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얘기다. 한 해 수십만 명이 굶어 죽기도 했던 과거를 끝내고 희망의 미래를 제시하는 뜻이 담겼다는 평가다.  
 
김정은이 집권 후 첫 공개연설(2012년 4월 15일)에서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지난달 말 방중 당시 중국판 실리콘밸리인 중관춘(中關村)과 중국과학원을 찾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집권 이래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를 내걸고 컴퓨터 수치제어(CNC) 분야에 힘을 쏟아왔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은 잘 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선대(先代)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집권한 지난 6년 북한은 외형상 변화를 보이고 있다. ‘혁명의 수도’ 평양은 두드러진다. 곳곳에 서양식 레스토랑과 수족관, 물놀이장(워터파크)이 들어섰다. 북한판 신도시인 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도 조성했다. 잿빛 도시가 형광색으로 바뀌었고, 암흑천지였던 밤거리에도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설치됐다. 휴대전화 사용자도 2016년 말 기준 360만6000여 명(통계청)으로, 현재는 500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관계자는 “전력 사정이나 차량 숫자, 먹거리, 거리 변화 등 외형적으로 평양은 김정일 시대보다 좋아졌다”고 전했다. 북한이 커피믹스를 생산하고 담배나 소주 등 기호품의 질과 포장이 향상된 것도 당장 먹거리를 걱정하며 굶어 죽는 시대에서 벗어났다는 방증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추산한 북한 주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1년 김정은 집권 이전엔 1000달러를 밑돌았다. 그러나 2011년부터 1200달러(2016년 한국은 3만 달러)를 넘겼다. 시장 확대는 김정은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이다. 김정일 시대 시장은 장마당 등 형태로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적으로 500개가 넘는 상설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노동당 과장급의 월급이 4000원인데 네 식구가 살아가기에 빠듯하다”며 “시장에서 ‘달리기’(유통 마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해소하고 있고 당국에서도 시장에서 거래 활동을 막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제 북한 가구 수입의 70~90%가 시장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금기시된 시장이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김정은 시대에는 90년대 후반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없었다. 나름대로 자구책도 찾았다.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확대하고 차별임금제, 지배인 책임경영제를 도입했다. 자율과 분권이 생산성 향상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삼시 세끼 걱정은 덜었지만 경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벽에 부딪혔다. 2016년 1월 이래 세 차례의 핵실험과 연이은 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른 네 차례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일반 경제를 겨냥했다. 과거 여섯 차례의 대량살상무기(WMD) 이전 통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주요 외화 수입원이던 무연탄 등 광물 수출이 막혔고, 해외 노동자 파견이나 해외 식당 운영도 중단됐다. 제재는 집권층의 돈지갑을 비웠고 주민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북한 관계자들이 “경제제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실제 한국무역협회(KITA)가 중국 해관(세관) 통계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중 무역액은 김정은 집권 이후 최저치(49억7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58억2600만 달러)보다 14.5% 줄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연탄은 북한의 대중 수출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외화 수입 품목”이라며 “유엔 안보리 결의(2321호)에 따라 지난해 3월부터 수출이 급격히 줄어 전년과 비교하면 66%(4억 달러)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제재의 여파는 컸다. 안보리가 광물자원은 물론 섬유·수산물까지 금지하면서 10~12월 대중 수출은 2016년에 비해 61~83%까지 줄었다. 북한은 교역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현 추세대로라면 교역량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단번 도약은 고사하고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서서히 대북제재의 효과가 북한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며 “북한에 시장이 활성화되고 자본주의 요소가 확산한 상황에서 경제가 후퇴한다면 김정은의 리더십에도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파이가 커진 시장의 역습마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최근 2년 새 대규모 노력 동원의 ‘속도전’을 전개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6년 ‘70일전투’와 ‘200일전투’를 폈다. 사실상 1년 내내 노동력과 자본을 쥐어짰다. 지난해엔 ‘만리마운동’을 전면에 내세웠다. 6·25전쟁 직후 복구 사업을 위해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했던 ‘천리마운동’에 버금가는 캠페인이다. 속도전은 일시적으로 생산을 늘릴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래저래 북한 경제가 올해 분수령을 맞게 돼 있는 셈이다. 김정은이 ‘만능의 보검’으로 자리매김한 핵무력을 담보로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은 결국 경제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은의 전략 노선인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정용수 기자 ko.soosuk@joongang.co.kr
 

 
<글 싣는 순서>
① 김정은의 선택, 왜 바깥으로 나왔나    
② 삼시세끼 해결 목표 대북제재가 발목잡다
③ 아버지 사람들이 없다
④ 결국은 남북관계 통해야 산다
그 곳, 판문점
클릭하면 디지털 특별기획 ‘3D로 보는 판문점의 어제와 오늘’을 보실 수 있습니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s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