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열려라 공부] 모든 과목 토론·연구·발표로 평가…융합창의인재 육성 밑거름

중앙일보 2018.04.18 00:02
4차 산업혁명 시대…확 달라진 시험
 
‘미래에는 융합창의인재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거짓이다. 융합창의인재가 필요한 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정해진 일을 어김없이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오래 전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융합창의인재를 찾고 있다. 구글이 입사 시험에서 ‘스쿨버스 안에 골프공이 몇 개나 들어갈까’ ‘맨홀 뚜껑은 왜 둥글까’라는 문제를 낸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평가와 선발 기준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올해부터 현장에 적용되는 개정 교육과정은 창의융합인재 육성을 위한 문·이과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시험 성적만으로는 우등생이 될 수 없다. 토론과 발표로 점수를 매기는 수행평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시험 성적만으로는 우등생이 될 수 없다. 토론과 발표로 점수를 매기는 수행평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교과서만 달달 외우면 모범생으로 평가 받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토론, 연구 발표 같은 수행평가를 내신 성적에 반영한다. 음악·미술 같은 예체능 과목에서 했던 실기평가를 모든 과목에서 실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어 수행평가에서는 주제를 정해 영작을 한다. 선생님과 스크립트를 1차 검토하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까지 한다. 이를 종합 평가해 내신에 반영한다. 국사에서는 역사적 사건을 토론한 뒤 평가한다.
 
중학교 3학년인 최윤서(15) 양은 “국어는 소설을 읽은 뒤 학생들이 직접 쓴 각본으로 UCC 영상을 만들었고, 사회는 문화권을 5개로 나눠 마치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처럼 ‘소고기 안먹는 우리 비정상인가요’라는 식으로 토론했고, 도덕은 행복을 주제로 캠페인을 한 뒤 영상을 만드는 수행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지필고사에서도 논술과 서술형 문제의 비중이 높아진다. 최진호 소명여고 교사는 “‘시의 운율에는 내재율과 외형률이 있다’는 식의 단답형 문제가 아니라 ‘소설의 전개 방식에 대해 논하라’처럼 전체적인 이해를 묻는 문제가 나간다”며 “수행평가와 논술·서술형 시험의 비중이 30~35%에 이른다”고 말했다.
 
대입 전형 중 내신 성적을 중점적으로 보는 게 ‘학생부 교과전형’이다. 암기력이 내신 성적의 중요 변수지만 다각도로 사고하고 발표하고 협업하고 소통하는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점점 더 늘려가는 추세다.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은 정시와 학생부 교과전형보다 더 다양한 선발기준을 적용한다. 친구를 모아 동아리를 만들고, 학교 축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다녔다면 20~30년 전에는 대입에 실패하기 딱 좋았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의 맥을 잇는 학종에서는 내신성적뿐 아니라 이 같은 항목도 평가에 포함된다. 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봉사활동, 독서활동, 탐구-연구활동 등을 두루 평가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해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다.
 
서울 서초고를 졸업하고 올해 서울대 심리학과에 입학한 이지담(19)씨는 고교 입학 후 2년 동안 지역 보육원과 사회복지관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처음엔 의무감으로 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그 시간이 즐거워졌고 내가 가르치는 것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다”며 “학종을 준비하다 보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찬찬히 돌아볼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심리학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 성적만 놓고 보면 합격하기 힘들었지만 여러 항목을 평가 받아 합격할 수 있었다. 고1 때는 독서 활동으로 그림으로 읽는 심리학처럼 쉬운 책부터 시작했다. 2학년 때는 심리학이 아니라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엘시스테마(음악을 통해 가난한 청소년을 구제하는 베네수엘라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책도 보고 심리 상담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읽었다. 야간자율학습과 청소년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대안을 담은 소논문을 쓰기도 했다. 힘든 점도 많지만 수능만 준비한 친구들과 비교해 훨씬 더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재미있게 고교 시절을 보냈다.”라고 덧붙였다.
 
청담어학원의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의 토의와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청담어학원의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의 토의와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이원준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은 “학종은 교실 붕괴 현상에서 기인했다. 수능 성적으로만 학생을 뽑던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에는 ‘우리 애가 밤 늦게 학원에 가야 하니 학교에서는 편하게 잠자게 해달라’는 학부모 민원까지 있었다”며 “학종에도 문제점은 있지만 고교 교육은 정상화되고 대학은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톨릭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학생의 인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시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고 학교에 대한 만족도와 자긍심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2018년도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수시 모집 비율은 73.7%로 수능을 중심으로 학생을 뽑는 정시 모집 비율 26.3%를 크게 앞질렀다. 수시 모집 중에서도 학종 전형의 비중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이 이 같은 흐름을 주도했다. 2018학년도 기준으로 서울대는 전체 모집 인원의 74.4%를 학종으로 뽑았다. 10년 가까이 일관되게 수시 모집의 확대를 꾀했던 교육부는 최근 수도권 주요 대학에 “정시의 비중을 높여 달라”고 기존 정책과 정반대 주문을 해 파문이 일었다. 이는 최근 대학입시에서 학종 등 수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교육부는 오는 8월 2022년부터 적용되는 대입 개편안을 발표한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은 문·이과 통합 교육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새로운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토론 수업,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 능력이 더 강조된다. 이르면 2025학년부터는 대입에 논술형 문제가 나올 수도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정시 선발에는 모순되는 면이 많아 8월 발표하는 대입 개편안이 어떻게 확정될지 주목된다.
 
 
한·중·일 글로벌 인재 양성 경쟁
일본과 중국에서도 교육 개혁이 화두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뚫고 나갈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 중이다. 올해가 때마침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라 ‘교육 유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사고력·표현력·소통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하고 평가한다는 게 골자다.

 
일본에서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입시를 치르는 2020년에 국어와 수학에 논술 문제가 도입된다. 영어 시험에는 말하기와 글쓰기까지 평가 대상이다. 실질적인 영어 역량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아직까지는 독해와 듣기 평가만 실시한다. 2023년 입시에서는 전 과목에 논술 시험을 도입할 수도 있다. 단답형 지식을 암기하는 것으로는 명문대학 입학을 기대하기가 힘들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가오카오(高考)는 응시자가 무려 900만 명이 넘는다. 시험 기간 동안 중국 전역이 들썩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공정한 선발 제도라고 평가 받지만 단편적인 평가 방식을 개혁하기 위해 힘쓴다. 중국은 가오카오에 논술형 작문 시험을 도입했다. 지난해 충칭과 랴오닝성에서는 두보의 시와 루쉰의 소설 등 6개의 문학 작품 중 3개를 골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글을 쓰는 문제가 출제됐다.
 
중국의 대입 가오카오도 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 혁신을 거듭한다.

중국의 대입 가오카오도 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 혁신을 거듭한다.

 
중국은 오로지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낙후 지역 학생에게 특별 전형의 기회를 늘리고 있다. 지역 간 대학 진학의 편차를 줄이려는 취지다. 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문·이과를 통합하고 고교 때부터 일부 과목은 대학처럼 자신에게 맞는 수업을 골라 듣는 방식도 채택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기자 정보
이해준 이해준 기자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s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