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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사석 작전 … 핵무기 대마 버리고 체제 보장 얻을까

중앙일보 2018.04.17 02:00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마중물이자 징검다리다. 동시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한반도 문제의 릴레이 정상회담은 지난해까지 전운이 짙게 드리웠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북한은 왜 핵 무력 완성 선언과 더불어 비핵화 대화 노선을 선택했을까. 내부 경제 상황은 어떠하고, 권력 엘리트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오늘’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백두산을 바라보며 내린 대용단이 2018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가 김정은(34)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언급을 피하던 지난달 26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현재의 대화 국면이 김 위원장의 지난해 12월 초 백두산 등정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이라 일컫는다. 김 위원장은 중대 결심을 앞두고 백두산에 오르곤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을 앞두고도 백두산 일대를 찾았다. 조선신보 보도는 김정은이 이번에도 백두산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조건에 대한 결단을 내렸다는 얘기다.
 
국면 전환의 출발점은 그 열흘 전쯤인 11월 29일이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하고 ‘핵 무력 완성’을 공식 선언했다. 이것이 핵 억제력을 외교 카드로 쓰기 시작한 전기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방식은 선남후미(先南後美)였다. 신년사와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을 통해 워싱턴으로 가는 길을 모색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되자 전통적 후견국인 중국을 찾았다. 이달 초엔 이용호 외무상을 러시아로 보냈다. 통남(通南)과 연중연로(聯中聯露)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담판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북한 움직임은 세밀하게 짜여진 한편의 시나리오를 연상시킨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김 위원장의 북한이 외교 노선 전환 외에 생존 전략을 수정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갖고 있다”며 “외교력을 발휘해 생존 조건을 정비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라고 말했다(언론 기고문).
 
최대 관심사는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이다. 핵무기는 김일성 주석 이래 3대(代)에 걸친 마라톤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영향을 받았다. 마오는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한 뒤 “어차피 써먹지 못할 물건이다. 미국이나 소련이 우리가 핵 보유국이라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75년 방중한 김일성한테는 직접 “석유와 원자탄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 두 개만 있으면 어디 가도 큰소리칠 수 있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잘난 척해도 국제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이 추구한 핵·미사일 개발 모델은 중국의 양탄일성(兩彈一星)이다. 중국은 원자탄·수소탄(양탄)과 미사일(일성)을 함께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60년대 말 완성했다. 그러곤 72년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개혁·개방의 토대도 쌓았다.
 
60년대 말 이래 반세기만에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지금 핵 문제의 총결산을 꾀하고 있다. 핵 보유가 물리적으로 입증된 시점에서 비핵화 카드를 들고나왔다. 김정은이 직접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조건으론 대북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보장을 들었다. 바둑으로 치면을 핵무기라는 대마(大馬)를 버리고, 안보와 체제보장+α의 더 큰 대마를 취하려는 대담한 사석(捨石) 작전(내 돌 일부를 버리고 그 이상의 실리와 세력을 얻는 방법)이다.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래 ‘비핵화=유훈’을 공식 언급한 것은 2013년 이래 네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선대의 비핵화 유훈을 2013년부터 언급한 것은 국면 전환을 장기간 준비해 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남한 특사단에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한 점도 흥미롭다. 미국을 향한 간절한 속내를 드러냈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의 우려·관심사항 해결을 전제로 한 비핵화를 통해 정상 국가의 길을 모색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현재 국면은 두 가지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나는 전쟁의 공포다. 냉전 붕괴 이래 대북 군사 옵션을 배제하지 않은 트럼프의 불확실성 만큼 북한에 위협이 됐던 적은 없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아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2개 전쟁과 전후 처리로 북한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다른 하나는 시시각각 조여온 국제사회의 제재 포위망이다. 북한이 만리마 속도창조를 비롯한 대대적 노력 동원 캠페인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새 파이가 커진 무역과 시장의 축소는 경제에 큰 주름살을 몰고 왔다. 북한 대외무역의 90% 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의 제재 동참은 고통 자체였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지금 북한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북한은 스스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고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도 경제 교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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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금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수락 후 관영매체는 대미 비난을 자제하고, ‘핵 무력’이란 단어를 피하고 있다.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도 마찬가지다. 2013년 나온 병진 노선은 김정은 시대의 당면 전략이다. 트럼프의 ‘최대한의 대북 압박’은 결국 이 노선과의 싸움이다. 북한이 핵의 사석 작전에 나섰다면 경제는 또 다른 목표물이다.  
 
김정은은 지금 비핵화라는 새로운 노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일단 그 공약을 한 상태다. 북한이 핵에 의존하지 않고, 미완(未完)의 평화를 불가역적인 평화 체제로 만들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북한이 비핵화를 통해 개혁·개방의 정상 국가(normal state) 기반을 닦고 국제 사회 일원으로 편입되는 선순환 구도로의 견인이 관계국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정용수 기자 ko.soosuk@joongang.co.kr
 
 

 
<글 싣는 순서>
① 김정은의 선택, 왜 바깥으로 나왔나
② 삼시세끼 해결 목표 대북제재가 발목잡다
③ 아버지 사람들이 없다
④ 결국은 남북관계 통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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