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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눠야만 엄마인가, 이 시대 가족을 돌아봤다

중앙일보 2018.04.17 01:22 종합 21면 지면보기
영화엔 효진(임수정 분) 외에 여러 사연의 엄마가 나온다. 임수정은 ’‘엄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엔 효진(임수정 분) 외에 여러 사연의 엄마가 나온다. 임수정은 ’‘엄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 명필름·CGV아트하우스]

배우 임수정(39)이 난생처음 엄마 역할에 나섰다. 19일 개봉하는 신예 이동은 감독의 저예산 영화 ‘당신의 부탁’에서다. 그가 연기한 효진은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고 동네 공부방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서른두 살 여성. 죽은 남편의 열여섯 살 난 아들 종욱(윤찬영 분)이 갑자기 기댈 곳 없는 처지가 됐단 소식에 효진은 종욱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개봉을 앞두고 11일 서울 명동에서 임수정을 만났다. 2001년 드라마 ‘학교4’로 데뷔 후 18년차에 찾아온 엄마 역 제의가 그는 “대수롭지 않았다”고 했다.
 
첫 엄마 역할 소감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동생, 친구들 다 가정 있고 아이가 생기다 보니 엄마 역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힘을 확 빼고 연기했는데, 그 안에서 나오는 유연함이 있더라. 그전엔 감정이 이만큼 차올라도 표현이 안 따라줄 때가 있었는데, 이번엔 제가 한 단계 달라진 것 같다. 앞으로 만나는 작품은 좀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감독님이 쓴 원작 그래픽노블을 먼저 보고 시나리오를 읽었다. 인물 사이에 오가는 일상적 대사에 차근차근 스며들며 공감했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감독님이라면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다. 제작사 명필름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일상적이면서도 섬세하다. 공포영화 ‘장화, 홍련’(2003)같은 예민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같은 엉뚱발랄함, ‘내 아내의 모든 것’(2012)같은 당돌함이 조금씩은 묻어있는 듯 싶지만 결과는 그 어느 것과도 전혀 다르다.
 
영화엔 효진(임수정 분) 외에 여러 사연의 엄마가 나온다. 임수정은 ’‘엄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 명필름·CGV아트하우스]

영화엔 효진(임수정 분) 외에 여러 사연의 엄마가 나온다. 임수정은 ’‘엄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 명필름·CGV아트하우스]

효진 캐릭터에 어떻게 다가갔나.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효진이 종욱을 맡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관객이 납득하려면 그 이전 상태가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2년 동안 얼마나 공허하고, 외롭고,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었는지. 감독님은 효진이 대책 없이 (엄마가 되기로) 큰 결심을 하는 것도 우울 증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더라.”
 
극 초반엔 정말로 지쳐 보인다.
“작년 7, 8월 부산에서 촬영했는데 현장 에어컨까지 고장 나서 진짜 더웠다. 또 행운(?)이었던 것이 바로 직전에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마친 터라 온갖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웃음). 메이크업도 많이 안 하고, 얼굴이 부으면 부은 대로, 뾰루지며 다크써클이 있으면 있는 대로 리얼하게 담았다. 오히려 효진은 아들이 생긴 뒤 생기를 얻고 예뻐진다. 누군가 돌봐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게 무력감을 벗어나게 해주지 않았을까.” 
 
‘엄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엄마란 존재가 혈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단 걸 가슴으로 더 느끼게 됐다. 실제로 편부모·다문화·재혼가족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잖나. 인식의 변화가 발 맞춰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역 윤찬영과 호흡은.
“찬영 군이 제가 데뷔한 해 태어났다. 제가 어려울 수 있을 텐데도, 서로 문자하고 안부 물으면서 천천히 친해졌다.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데다 말도 별로 없고 실제 종욱이랑 비슷하다. 저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닌데 가만히 있어도 서로 어색하지 않아서 좋았다.”
 
배우 오미연과 티격 대는 모녀 연기도 실감 나더라.
“선생님이 엄마처럼 편안하게 받아주셨다. 제가 저희 엄마한테도 짜증내고 화낼 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가슴에 박히는 얘기를 하게 된다고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게 엄마랑 딸이지 뭐’ 하시면서 ‘우리 딸한텐 내가 애교 부려’ 그러시더라(웃음).”
 
실제 효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현실적인 문제라서 더 진지해진다. 제 나이에 몇십 년 어린 연하를 만날 게 아니면, 정말로 결혼하고 싶은 동반자가 나타났는데 ‘돌싱’일 수도,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효진처럼 덜컥 맡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신중하게 고민해볼 것 같다.”
 
임수정은 막힘없이 솔직했다.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스스럼없이 속 얘기를 털어놨다.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것도 우연히 그가 출연하는 팟캐스트(‘김혜리의 필름클럽’)를 듣고 “(기존 이미지와 달리) 털털한 모습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임수정은 “마음 맞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자리는 다르지만, 여전히 제가 배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긴 하다”고 했다. “남들 앞에 서야 하는 자리에선 긴장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쿵 떨릴 만큼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모두가 나를 지켜보는 촬영장은 어떨 땐 여전히 힘들어요. 그렇지만 또 배역을 맡았을 때 행복하고 인간적으로 제가 성숙하는 걸 느껴요. 그럴 때면 배우하길 잘 했다, 싶죠.”
 
이번 영화를 통해 그는 “여성으로서 직면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해봤다”고 덧붙였다. 여성으로, 또 여성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는 최근 그의 뇌리를 맴돌아온 화두다.
 
나이 먹으며 배역 범위가 달라짐을 느끼나.
“여성 배우가 맡을 캐릭터가 없긴 없다. 있어도 제한적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아직은 남성 중심의 사회고, 대중도 남성 중심 영화를 더 즐기다보니 여성과 남성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여성 배우 4인의 저예산 옴니버스 영화 ‘더 테이블’(감독 김종관)에 출연한 데 이어 이번엔 신인감독의 여성 원톱 영화를 택했는데.
“사실 효진 같은 캐릭터는 상업영화에선 만들어질 기회가 적다. 작품도 마음에 들었지만, 또 다른 계기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독립·저예산·단편영화를 접하게 됐다. 이런 다양성이 바로 한국영화의 힘인데, 싶더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인재들의 작품, 작지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나도 힘을 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 역시 만나기 힘든 캐릭터를 연기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니 서로 좋은 일이다. 문소리 선배님이 연출·기획·주연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도 같은 여배우 입장에서 얼마나 유쾌발랄했는지 모른다.”
 
영화를 직접 만들어볼 욕심도 있나.
“연출은 힘들 것 같다. 다만 아직 계획은 없지만, 프로듀싱에는 얼마든지 관심이 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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