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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20%만 진짜 직업 ‘80% 가짜 직업’ 시대 온다

20%만 진짜 직업 ‘80% 가짜 직업’ 시대 온다

중앙일보 2018.03.29 00:46 종합 22면 지면보기
윤석만의 인간혁명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 시대의 모습을 그린 ‘엑스 마키나’. AI는 모든 능력에서 인간보다 뛰어나고 사람의 감정도 흉내낼 수 있다. [사진 영화 캡쳐]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 시대의 모습을 그린 ‘엑스 마키나’. AI는 모든 능력에서 인간보다 뛰어나고 사람의 감정도 흉내낼 수 있다. [사진 영화 캡쳐]

“새로운 20대 80의 사회가 온다.”
 
지난달 세계 최대의 민간 우주로켓(길이 70m, 폭 12.2m) ‘팰콘 헤비(Falcon Heavy)’를 쏘아 올린 스페이스엑스·테슬라모터스의 CEO 일론 머스크가 한 말입니다.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그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을 구상할 때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죠. 미래사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머스크는 지난해 2월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기구 수랑 회의(World Government Summit)’에서 “미래는 인공지능(AI)의 상용화로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AI로 인해 현존하는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없어질 거란 이야기죠.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보스포럼은 2020년까지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스즈키 타카히로는 자신의 책 『직업소멸』에서 “30년 후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일자리를 잃고 소일거리나 하며 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 결과(2017년)도 현재 사람이 수행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이 쓸모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2030년 국내 398개 직업이 요구하는 역량 중 84.7%는 AI가 인간보다 낫거나 같을 것이라는 거죠. 전문영역으로 꼽혔던 의사(70%), 교수(59.3%), 변호사(48.1%) 등의 역량도 대부분 AI로 대체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이처럼 많은 일자리가 미래엔 사라집니다. 더 큰 문제는 직업의 감소가 서서히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 버린다는 거죠. 미국에선 1880년대 처음 등장한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1950년대 12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6만 명으로 반 토막 난 뒤 얼마 후 사라졌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조만간 운수산업에서도 일어날 전망입니다.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로 운전기사란 직업이 ‘증발’해버릴 것이라는 예측이죠.
 
AI 의사·변호사 인간 능력 뛰어넘어
 
미국 내 승강기 운전원 고용현황

미국 내 승강기 운전원 고용현황

직업의 위기는 단순 기능직뿐 아니라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에도 마찬가집니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숫자가 줄고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겁니다. 이미 의료계에선 AI 의사 왓슨의 도입으로 사람 의사의 역할이 크게 변하고 있죠.
 
2016년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처음 도입한 왓슨은 수십만 명의 환자 데이터와 1500만 쪽에 달하는 의학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 의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식의 양이죠.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왓슨은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단 8초 만에 내립니다. 2년 동안 왓슨과 함께 일해 온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뇌과학연구소 교수는 “AI 도입 후 의사의 역할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는 “과거엔 의사 개인의 임상 경험과 의학 지식만으로 처방과 진단을 내렸지만, 이제는 왓슨을 활용해 환자와 소통하고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합니다.
 
법조인도 마찬가지죠. 30년 동안 법관을 지낸 강민구 부장판사(전 법원도서관장)는 변호사의 업무를 예로 듭니다. “유능한 변호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법조문과 해당 판례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였어요. 하지만 법률지식에 있어 인간 변호사는 앞으로 AI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2016년 미국 뉴욕의 유명 로펌 ‘베이커드앤드호스테들러’에 처음 도입된 AI 변호사 로스는 초당 1억장의 법률 문서를 검토해 개별 사건에 가장 적절한 판례를 찾아내 추천합니다. 강 판사는 “소통과 공감 능력 등 기존과는 다른 역량이 유능한 변호사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노동의 종말’ 시대, 기본소득 생기나
 
미래에 제일 가까이 가있는 인물로 평가되는 일론 머스크 CEO. [중앙포토]

미래에 제일 가까이 가있는 인물로 평가되는 일론 머스크 CEO. [중앙포토]

이처럼 현존하는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직업 또한 역할이 크게 달라진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머스크의 말대로 직업을 갖지 못한 80%의 사람은 무엇을 하며 살게 될까요.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국가가 주는 ‘기본소득’입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죠.
 
실제로 기본소득은 이미 몇몇 나라에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2016년 스위스는 정부가 매달 30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국민 다수(76.9%)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액수를 줄이는 등의 방향으로 재논의 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이미 지난해 2월 일부 지역에서 월 7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시범 실시하기 시작했고요.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국회 연구단체인 ‘어젠다 2050’은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재원 마련 방안 등을 논의했습니다. 이 단체 대표인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AI의 활성화로 직업을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선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많은 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요.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선 기술혁신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머스크의 표현대로면 20%의 사람만 일해도 나머지 80%를 먹여 살리는 데 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거죠.
처음 볼링이 나왔을 때 핀을 세우는 일은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미국 의회도서관]

처음 볼링이 나왔을 때 핀을 세우는 일은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미국 의회도서관]

세계적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자동화와 AI의 확산으로 소수의 관리 인력만 필요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노동자가 거의 없는 경제로 향하고 있다”고 예측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엔 A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100명의 사람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10명, 앞으로는 1명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로봇에 세금 매겨 재원 마련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들을 위해 ‘로봇세’를 걷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모든 노동자엔 세금이 부과된다, 이들처럼 로봇에게도 세금을 매겨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30년 AI 역량은 어디까지

2030년 AI 역량은 어디까지

실제 유럽의회에선 2016년 5월부터 ‘로봇세’ 도입을 논의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무산되긴 했지만 이듬해 2월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전자인간’이라며 법적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로봇에게 인격권을 주고 언젠가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둔 거죠. 과세하기 위해선 먼저 일반 사람과 같은 ‘시민격’, 기업과 같은 ‘법인격’ 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김세연 의원은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도입과 로봇세 신설 등에 대한 법적 논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으로 먹고살 수 있게 보장해준다 해도 중요한 문제 한 가지가 남습니다. 머스크의 표현대로면 여전히 80%의 사람들은 ‘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면 처음엔 좋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해지겠죠.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은 삶의 의미를 ‘일’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특정 직업을 대는 것처럼 인간에게 일은 삶의 중요한 목적이자 자아실현의 한 방편이죠. 삶의 목적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이 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윤석마의 인간혁명
 
이런 이유로 아마도 미래사회엔 정부가 ‘가짜 직업’(fake job)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큽니다. 주로 공공 부문에서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인간에게 맡기거나, 필요한 인원보다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죠. “정부재정으로 노인이나 영유아를 돌보는 등 교육과 의료·복지 등 비영리 분야의 종사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리프킨의 전망도 같은 맥락입니다.
 
풍요 속 사치·향락에 빠진 로마
 
앞으로 어떤 형태의 가짜 직업이 생겨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미래의 인간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생존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란 점이죠. 그때의 인간은 AI와는 차별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또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만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런 성찰의 시간이 충분치 않다면 미래 인간과 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겁니다.
 
고대 로마는 제국이 확장되면서 식민지로부터 풍성한 재화와 끝없는 노예 노동력이 유입됐습니다. 대부분의 로마 시민은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었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향락과 사치에 몰두하면서 로마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미래 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훗날 우리는 지금처럼 많은 일을 하지 않고도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고대 로마인들처럼 사치와 향락에 빠질 수 있고, 삶의 목표를 잃은 채 인생을 허비하며 의미 없이 연명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AI 시대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 창의적이며 감성적인 일 등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면 언제 없어질지도 모를 ‘직’(職·job)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업’(業·work)을 찾아야 하죠.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기계의 인간화’가 아니라 ‘인간의 기계화’‘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특이점(singularity)
특이점이 온다

특이점이 온다

물리학에서 부피는 0으로 수렴하고 질량은 무한대로 커져 블랙홀이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져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지칭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2016년 은퇴하기로 했던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특이점 실현’을 위해 경영 현장에 다시 남겠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2045년쯤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래학자들은 특이점 시대의 AI는 직관과 감정 등 인간 고유의 것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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