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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자판 누르던 호킹, 가장 숨죽인 3분…정재승 추도사

중앙일보 2018.03.15 09:32
1999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븐 호킹 박사. [중앙포토]

1999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븐 호킹 박사. [중앙포토]

“내가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삶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었던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났다. 갈릴레이가 사망한 지 정확히 300년이 되던 1942년 1월 8일에 태어난 그가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날인 3월 14일에 향년 76세의 일기로.  
 
많은 물리학도가 그의 책과 논문을 읽으며 물리학자로서의 길을 꿈꾸었고,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절친이 선물해준 『시간의 역사』를 우연히 집어 들었다가, 기숙사에서 밤새 읽어내려갔던 그 날의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책 속에 담긴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는 그의 이론은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감동적이었다. 마치 우주에 대한 진리 한 귀퉁이를 엿본 것 같은 그 날의 흥분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2학년 그의 책을 읽은 후로 나는 천체물리학자가 되길 꿈꾸었었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가 정상상태로 일정하지 않고 빅뱅 이후 끊임없이 팽창해 왔다는 빅뱅우주론을 지지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주 초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반상대론과 양자역학, 중력이론이 한데 얽혀 기술되어야 하는데, 빅뱅 초기에 시공간 곡률이 무한대가 되는 특이점이 등장한다. 그는 이런 특이점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일반상대론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빅뱅우주론의 손을 들어주었다.  
 
더 나아가 블랙홀 내부에서 벌어지는 특이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호킹 복사’라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블랙홀 내부에서는 양자역학적인 현상에 의해 양의 질량을 가진 입자와 음의 질량을 가진 입자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블랙홀은 원래 강한 중력장으로 인해 무엇이든 빨아들이고 심지어 빛마저도 빨아들여 블랙홀이라 불리는 천체이지만, 순간적으로 발생한 음의 질량 입자는 오히려 밖으로 밀려 나가니 ‘블랙홀이 그다지 검지 않다’는 것이다.  
 
1974년 네이처에 발표한 이 논문은 당시 학자들에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논문’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진 않아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울프상, 기초과학상 등을 포함해 걸출한 물리학상으로 다수 수상했다.  
 
나 역시 그에게 매료되어, 그가 1990년 한국에 와서 대중강연을 했을 때 강연 후 찾아가 당돌한 질문을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신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다시 수축해 파멸에 이르게 될 확률은 없는 것인가?”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 어린 질문을 했었다. 그가 내게 답을 해주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눌렀던 3분간의 침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숨 졸인 3분이었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나를 위해 온전히 그의 3분을 할애해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스티븐 호킹이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존경받는 이유는 육체적 한계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우주의 본질을 향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루게릭병이라는 질병이 결코 사유의 구속이 될 수 없으며, 한 인간의 뇌가 전 우주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그의 몸은 비록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의 뇌는 빅뱅에서부터 저 먼 블랙홀에 이르기까지 전우주적 스케일에서 우리에게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인공지능이 무기로 돌변하면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하기도 했고, 지구온난화를 그 누구보다 걱정해서 우리 시대 리더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던 그는 지구의 미래를 누구보다 걱정했던 세계시민이었다. 앞으로 그보다 뛰어난 물리학자는 다시 나오겠지만, 삶을 통해 온 인류에게 통찰을 주었던 위대한 지성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스타트렉의 물리학』(로렌스크라우스 저) 서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묶어두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묶어두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육체는 불편했으나 정신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그는 이 말을 스스로 실천했다.  
 
그와 한 시대를 살면서 함께 숨을 나누어 쉬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다. 이제 우주 속 원자들로 돌아가 어딘가 있을 블랙홀 안에서 편히 안식하시길 바란다. 아주 오랫동안 우주의 일부이자 동시에 우리 인류의 일부로서 존재하면서, 부디 편히 영면하시길.  
정재승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미래전략대학원장, 물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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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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