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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시진핑의 개헌, 문재인의 개헌

중앙일보 2018.03.15 01:50 종합 28면 지면보기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한국과 중국에서 공교롭게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헌이 뜨거운 화두다. 정치 체제가 전혀 다른 두 나라에서 헌법 수정 움직임이 동시에 생겨 흥미롭다. 중국은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1982년 헌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민주화 투쟁으로 탄생한 ‘1987년 헌법’이 30년을 넘기면서 역사적 수명을 거의 다한 상태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 개헌이 추진되는 방식과 경과를 보면 정치체제만큼이나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당 독재국가인 중국은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넘어 비민주적 일방통행이 두드러진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치권 때문에 개헌의 열매를 맺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중국의 개헌안은 99.8%의 압도적 찬성으로 지난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됐다. 지난해 9월 29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개헌 필요성을 처음 공식 제기한 지 겨우 5개월여 만이다. ‘중국 속도’가 정치에서도 확인됐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마오쩌둥 우상화를 주도해온 ‘4인방’(장칭·왕훙원·장춘차오·야오원위안)을 몰아낸 덩샤오핑 세력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4년 뒤 종신제 폐지와 주요 국가 지도자의 중임을 골자로 한 ‘82 헌법’을 만들었다. 시진핑은 자신을 위협해온 정적인 ‘신 4인방’(저우융캉·보시라이·링지화·쉬차이허우)을 제거하고 권력 독점을 굳히기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덩샤오핑과 시진핑의 개헌 패턴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덩샤오핑의 ‘82 헌법’은 정치 안정을 이뤘고 이 덕분에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가능했다. 그런데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만든 틀을 한방에 무너뜨렸다. 시진핑의 선택이 중화민족부흥과 중국몽(中國夢) 실현에 촉진제가 될지 독약이 될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선 ‘퇴행적 개헌’이란 비판이 많다.
 
한국의 개헌 추진 상황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조기 대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들이 개헌에 모두 합의했다. 대다수 국민도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런 국민의 개헌 열망을 정치권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책무이자 도리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동시에 하는 방안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서 국회에서 개헌 논의는 겉돌기만 했다. 국민의 개헌 열망보다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이런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집권 이후 한동안 개헌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된 국민개헌이 되도록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약속한 정도다. 그러다 지난 13일 “1년이 넘도록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며 지연 책임을 야당에 넘겼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야당 설득 노력도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오는 21일 자체 개헌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1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한국과 중국의 개헌 논의를 들여다보면 또하나의 유사점도 보인다. 시진핑은 장기집권을 위해 임기 제한을 없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현재 5년 단임)를 늘리는 4년 중임제(최장 8년) 개헌안을 낼 예정이다. 14일 소환된 이명박까지 5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갈 정도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심각한데도 오히려 임기를 늘리려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은 속전속결로 개헌에 성공했지만, 역사 발전에 역행하는 ‘기형적 헌법’을 낳았다. 한국은 지난 30년의 사회 변화를 반영할 ‘옥동자 헌법’을 낳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민주주의 열망을 거스르는 중국의 역주행 개헌이든, 개헌 민의를 묵살하는 한국 정치의 직무유기든 그 책임은 역사가 묻게 될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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