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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대화 기대 못해” → “문 대통령 리더십 경의” 달라진 아베

중앙일보 2018.03.14 01:08 종합 8면 지면보기
서훈 국정원장과 아베 총리(오른쪽)가 1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방북·방미 성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면담에서 사용된 두 의자의 모양과 높이가 같다. [로이터=연합뉴스]

서훈 국정원장과 아베 총리(오른쪽)가 1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방북·방미 성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면담에서 사용된 두 의자의 모양과 높이가 같다. [로이터=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 남북 정상회담과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도록 모든 협력과 협조를 함께하겠다.”
 
13일 오전 일본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난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전한 아베 총리의 발언이다.
 
아베 총리는 앞서 공개 모두 발언에서도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일본도 (높이) 평가한다”면서 “비핵화를 향해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함으로써 말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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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면 서 원장에게 한 아베 총리의 발언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지난달 7일 일본을 찾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의 미소외교에 눈을 빼앗겨선 안 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진정한 의지와 구체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의미 있는 대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이 함께 확인한 방침을 문 대통령과 확인하겠다”고 했다. 대화론에 치우친 문 대통령과 담판을 짓기 위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다는 취지였다.
 
그동안 ‘닥치고 압박’ 노선이라 칭할 정도로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한 압력에 필사적이었다. 평창을 방문했던 펜스 부통령이 귀국길에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내비치자 마음이 급해진 아베 총리는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곧바로 통화를 했다. 그는 “완전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 북한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 열리자 아베 정부 안팎에선 일본이 국제적인 논의의 틀에서 밀려난다는 ‘일본 패싱’의 두려움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트럼프-아베의 견고한 스킨십만 믿고 “100% 미국과 일본은 함께한다”며 질주해 온 일본 정부가 뒤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였다.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특사단 면담 직후부터 아베 총리의 말이 달라졌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변화를 평가한다”며 “북한의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과 나 자신이 긴밀히 연계해 최대한의 압력을 가한 성과”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대화 노선을 줄기차게 견제해 온 그가 북한의 변화를 자신의 성과로 부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날 서 원장에게 “문 대통령 리더십에 경의” “모든 협력과 협조”라는 발언까지 하게 된 것이다.
 
서 원장을 만난 아베 총리의 말은 과거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에게서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큰 담판을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북한이 이 기회를 단순히 시간 벌기용으로 이용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시간 끌기용’이라던 자신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서 원장도 분위기를 맞췄다. 아베 총리에게 “한반도 평화의 물결이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한·일 간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뜻”이라며 “두 정상 간 의지의 결합과 긴밀한 협력이 중요한 때”라고 했다. 이어 “이런 흐름이 시작된 건 아베 총리와 펜스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좋은 분위기에서였다”고 덕담을 했다.
 
한국 정부로선 트럼프 대통령과 탄탄한 ‘핫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를 ‘큰 틀’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당초 15분 정도, 길어야 30분 정도로 예상했던 아베 총리와 서 원장의 면담은 결국 한 시간 가까이(10시54분~11시50분)로 불어났다.
 
문희상 의원이 지난해 아베 총리를 예방했을 때는 의자 모양과 높이가 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문희상 의원이 지난해 아베 총리를 예방했을 때는 의자 모양과 높이가 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아베 총리를 예방했을 때는 의자 모양과 높이가 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아베 총리를 예방했을 때는 의자 모양과 높이가 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아베 총리를 예방했을 때는 의자 모양과 높이가 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해 아베 총리를 예방했을 때는 의자 모양과 높이가 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 아베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재확인=아베 총리는 서 원장에게 “핵 문제, 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 해결은 일본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미국이나 한국을 움직여 납치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는 과거 ‘정치인 아베’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던 테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방북 때 아베 총리는 관방 부장관 자격으로 수행단에 포함됐다. 당시 아베 부장관은 평양에서 “납치 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사죄가 없다면 북·일 공동성명 서명 없이 무조건 귀국합시다”라고 고이즈미 총리를 몰아붙였다. 결국 두 사람의 대화를 도청한 김정일로부터 납치 문제 사과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애송이 정치인이던 아베의 주가가 급격하게 올라가 2006년 총리직에 올랐다.
 
북한이 공식 인정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는 모두 17명이다. 일본 정부는 귀환한 5명을 뺀 12명의 송환을 요구해 왔다.
 
현재 아베 총리는 모리토모(森友) 사학재단 특혜 의혹과 관련된 재무성의 문서 조작 파문으로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다. 납치자 문제의 화끈한 진전은 그에게 또 다른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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