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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인터넷 해외 통화하는 쿠바인 “사랑해? 그럼 돈 좀 보내줘”

인터넷 해외 통화하는 쿠바인 “사랑해? 그럼 돈 좀 보내줘”

중앙일보 2018.03.14 00:45 종합 18면 지면보기
“엄마, 사랑해. 잘 지내지? 그런데 식당 차리게 돈 좀 보내줄 수 있어?”
 
“자기, 너무너무 보고 싶어, 여전히 나 사랑하지? 그렇다고. 그럼 언제 미국에 데려갈 거야? 우선 송금이나 좀 해줘.”
 
쿠바 산타클라라의 광장에서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인터넷에 접속 중이다. 오른쪽은 공산당 선전 간판.

쿠바 산타클라라의 광장에서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인터넷에 접속 중이다. 오른쪽은 공산당 선전 간판.

지난 2월 초 쿠바를 방문했을 때 인터넷에 연결이 가능한 아바나의 핫스팟 공원(Hot spot park)에서 이뤄지고 있던 국제 통화 내용의 일부다. 이런 내용을 통역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모바일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에 사는 가족이나 연인과 통화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도 이런 사적인 통화 내용을 공원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쿠바의 인터넷 시스템 때문이다.
 
지난 2월 초 찾았던 쿠바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의 하나가 인터넷 연결이었다. 쿠바는 인터넷 접근 제한 국가로 분류된다. 모든 인터넷은 유료다. 연결 방식도 독특했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와이파이나 유선 케이블망으로 연결되는 사람은 국민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 인터넷 연결은 국영 통신사인 에텍사(Etecsa)의 무선 서비스인 나우타(Nauta)가 독점한다. 2015년 시작된 이 서비스는 호텔 로비나 공원, 광장 같은 공공장소의 핫스팟 공원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1시간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나우타 와이파이 카드를 사야 한다.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켜면 에텍사의나우타 시스템이 떴다. 이어서 나우타 와이파이 카드에 적힌 접속번호 12자리와 은박을 긁어내면 보이는 비밀번호 12자리를 각각 입력하니 접속할 수 있었다. 속도는 최고 192Mbps 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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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국민은 핫스팟 공원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해외 친지와 국제통화는 물론 영상통화까지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나 태블릿, 노트북을 든 사람들이 몰려있으면 그곳은 영락없이 핫스팟 공원이었다. 핫스팟 공원에선 e-메일 송수신, 인터넷 검색은 물론 중국에선 접속이 불가능한 구글 서비스도 가능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구글이 2016년 자사 콘텐트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아바나 당국과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물론 메신저와 무료 인터넷 전화 어플리케이션인 왓츠앱도 가능했다. 다만 쿠바 반체제 활동과 관련한 내용은 검색되지 않았다.
 
쿠바 산타클라라의 국영 통신 사무실 앞에서 주민들이 와이파이 카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

쿠바 산타클라라의 국영 통신 사무실 앞에서 주민들이 와이파이 카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

문제는 나우타 인터넷 카드 구입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은 국영호텔이나 리조트의 카운터에서 구입할 수 있었지만 물건이 떨어진 경우도 왕왕 있었다. 쿠바 국민은 에텍사 서비스센터에서 긴 줄을 서서 사야 한다. 아바나의 핫스팟 공원에선 웃돈을 붙여 카드를 파는 상인들도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2015년 무려 15쿡(CUC·쿠바의 ‘외화와 바꾼 돈’ 단위, 미화 1달러=0.86쿡)으로 시작했다. 국가가 지급하는 월급이 15~30달러 수준인 쿠바 형편을 생각하면 이용자 부담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결국 사용자들의 항의로 가격을 2015년 7월부터 여러 차례 값을 내려 지금은 지역별로 1시간 이용 카드를 1~3쿡에 살 수 있었다. 통역인 펠리페 이슬라(62)는 “외국인에겐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대다수 쿠바 국민에겐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격으로 인터넷을 통제한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로이터 통신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4년 외교관계 회복에 합의하자마자 통신 지지와 서비스를 경제 제재 대상에서 즉시 제외했다고 보도했다. 쿠바 국민의 인터넷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지난 1월 “2017년 말 기준으로 쿠바인의 40%가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으며 이는 2010년보다 37%가 늘어난 수치”라고 보도했다.
 
인터넷은 국민에게 세계 사정을 직접 전달할 수 있지만 현재 쿠바 매체는 변화하는 세상을 활발하게 전하지는 못한다. 쿠바에서 가장 큰 신문은 쿠바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다. 쿠바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1956년 게릴라전을 하러 멕시코에서 쿠바로 잠입할 당시 타고 왔던 요트 이름에서 따왔다. 2016년 11월 25일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가 얼마나 쿠바를 사랑했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를 추모하는 기사가 지금도 매일 같이 신문 지면을 채운다.
 
사회주의 형제국 쿠바와 북한 비교

사회주의 형제국 쿠바와 북한 비교

하지만 호텔 객실에 들어가니 별세상이었다. LG텔레비전으로 외국방송 채널을 수십 개나 볼 수 있었다. 미국의 CNN은 물론 스포츠 채널인 ESPN의 스페인어 방송도 나왔다. 영국의 BBC 월드, 프랑스 해외위성채널인 TV5와 프랑스24, 독일 위성방송인 도이체벨레(DW), 스페인의 tve, 이탈리아의 라이 이탈리아도 시청이 가능했다.
 
현지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위성안테나를 설치해 외국 방송을 시청하는 쿠바 국민이 나날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는 불법으로 당국이 수시로 단속한다. 이에 따라 위성안테나를 설치하고 주변을 벽돌로 쌓아 굴뚝처럼 보이게 하는 등 다양한 위장 기법이 발달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 소식통은 쿠바 국민 사이에서 “정부에 단속이 있으면 국민은 대책이 있다”라는 가시 돋친 농담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의 확산은 쿠바 국민에게 하나의 불만 배출구 구실을 하는 분위기였다. 무역진흥공사(코트라) 아바나 무역관의 정덕래 관장은 “쿠바 국민에게 인기가 높은 한국 등의 연속극을 녹화해 DVD에 담아 팔기도 한다”고 전했다.
 
쿠바 인구는 1100만인데 망명이나 해외 취업 등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쿠바인은 2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일간지 마이애미 헤럴드에 따르면 미국에만 180만 명의 쿠바계 주민이 거주한다. 인터넷은 이들 사이의 창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쿠바에서 2008년 이후 소규모 자영업이 허용되면서 창업 붐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창업 자금은 해외 거주 쿠바인 가족이나 친척들이 댔다고 한다. 사업 설명은 대부분 인터넷 전화와 e-메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망명 쿠바인이 번 돈이 쿠바에 사는 친척에게 송금돼 민영 식당이나 택시 영업을 할 자금으로 변하고 있었다. 쿠바 정부도 이들에게 고국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배신자가 아니고 쿠바 경제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해외 자금원이 된 셈이다.
 
인터넷이 하루가 다르게 확산하면서 쿠바는 매일 눈과 귀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1세기 정보통신 시대에 쿠바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속도다. 변화의 끝은 어디일까. 북한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글·사진=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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