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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반미 코드’ 속에 숨겨진 북한의 워싱턴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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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반미 코드’ 속에 숨겨진 북한의 워싱턴 짝사랑

중앙일보 2018.03.14 00:17 종합 24면 지면보기
워싱턴을 향한 북한 김정은의 질주가 시작됐다. ‘비핵화(denuclearization)’ 깃발을 흔들며 미소 짓는 그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에 만나자”며 의기투합했다. 내달 판문점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상봉 루트를 거쳐 가는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 여정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미 본토 핵 불바다’를 겁박하던 북한 최고 지도자의 변신이다. 무엇이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대미 노선에 급변침을 가했을까. 70년 조선노동당 통치의 이데올로기 주축을 이룬 북한의 반미(反美) 코드를 해부해 본다.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캐릭터의 무대 등장에 이어 배경 화면엔 만화영화 백설공주와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영화 ‘록키’의 주제가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도 울려 퍼졌다. ‘이렇게 좋은 세상, 우리에겐 부러움 없다’며 지상낙원을 외치던 구절은 ‘이렇게 좁은 세상’으로 바뀌어 불렸다. 서방 국가의 콘서트 무대를 방불케 하는 전자음악과 현란한 레이저 조명에 청중은 놀라워했다.
 
지난 2012년 7월 6일 평양의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장.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당시 직책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2시간 가까운 공연을 지켜본 뒤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 총출동한 무대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라이선스를 맺지 않은 해적 공연이긴 했지만 폐쇄적 독재 체제에다 반미 기치를 내걸어 온 북한으로선 파격이었다.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은 대담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집권 6개월을 갓 넘긴 청년 지도자(당시 28세)가 개혁·개방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에는 훈풍이 불어 닥쳤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다 “남조선 등뼈를 부러트리라”는 호전적 언사까지 퍼부으며 전쟁위기를 부채질하던 김정은이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올리브 가지를 던진 때문이다. 대북특사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으로 가져간 메시지는 매력적이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김정은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정 실장의 전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김정은이 북한을 ‘가난한 나라(poor country)’로 칭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적들이 100년을 제재한다고 해도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던 호기는 온데간데 없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집권 7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당 위원장은 반미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워왔다. 지난 한 해는 최악이었다.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마감단계를 언급한 김정은은 미국령 괌 타격 위협에 이어 본토를 타격할 ‘화성-15형’을 쏘아 올렸다. 9월엔 6차 핵 실험까지 감행했고, 결국 11월 말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올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과는 거리를 뒀다. 자신의 평양 집무실 책상 위에 ‘핵 단추’가 놓여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했다. 김정은의 전향적 대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관영 매체들이 함구하고, 재일 조총련 기관지까지 ‘조·미 정상회담은 미 전쟁소동에 종지부 찍는 담판’이란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것도 이런 관성 때문이다.
 
사실 반미는 북한 체제의 생존 이데올로기 그 자체였다. 일본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김일성 무장투쟁 성과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한 북한은 6·25 남침 전쟁에도 손을 댔다. ‘민족해방 전쟁’으로 묘사해 승전을 주장한 뒤 “한 세기에 두 제국주의(미·일)를 타승(打勝)한 위인”으로 우상화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장난감 총으로 미국 대통령과 성조기를 쏘는 유희를 강요받고, 미국을 승냥이로 묘사한 TV 만화영화에 익숙해진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 2400만 북한 주민들은 연일 반미 군중대회에 동원돼 언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북한군의 전차와 방사포 등에 각인된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수인 미제국주의를 소멸하자’는 구호는 그 결정판이다.
 
반미 이데올로기는 3대세습의 취약점을 감추고, 폭압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도 유용했다. 미제의 침략에 맞서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수령 독재와 유일 영도’가 작동했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집착은 미국에 대한 과장된 ‘피포위 의식 (siege mentality)’의 발현이다. 모든 것에 군(軍)을 앞세우는 이른바 선군정치도 마찬가지다. 궁핍한 삶은 미국의 대북제재와 봉쇄정책 때문인 것처럼 학습됐다. 이런 반미 캠페인을 통치에 써먹은 건 김정은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을 찾은 김정은은 ‘미제 살인귀’라 운운하며 “적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이라고 말했다. 신천 참극은 6.25 전쟁 중 좌우대립이 원인이 됐다는 걸 우리 진보 학자·매체도 검증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미제에 의한 3만5000여 주민 학살 현장’으로 날조·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반미 코스프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의 집무실엔 애플 컴퓨터가 놓여있고, 즐겨 타는 차량 목록엔 미국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포함됐다. 김정은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로 묘사한 유일한 외국인은 전미프로농구협회(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다. 그토록 반미를 외치던 김일성과 김정일이 장례식 운구차로 왜 미국 포드사의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을 사용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집권 후 탈북자 단속에 심혈을 기울여온 김정은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은 이모 고용숙(2004년 사망한 생모 고용희의 동생)이다. 어린 시절 김정은을 직접 챙겨주기도 했던 고용숙이 남편과 함께 망명한 안식처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북한 제2자연과학원 소속 기자로 활동하다 탈북한 김길선 씨는 “북한 핵심 고위층 사이에서는 최후의 순간 미국으로 망명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있다”며 “이는 김정은과 그 일가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불구대천으로 증오하면서도 워싱턴을 갈망한다는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청년 시절 해외유학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최고다. 수령님의 존함이 새겨진 김일성종합대에 다니겠다”고 거절했다는 게 북한 전언이다. 그런 김정일도 김정은을 포함한 3남1녀를 스위스에서 조기유학 시켰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라는 취지였을 게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을 유학지로 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권력 승계자로 삼은 막내 아들에게 귀띔해 준 후계수업 최고의 비책은 ‘미국과 친구하기’였을지 모른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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