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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천국과 지옥,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는

천국과 지옥,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는

중앙일보 2018.02.24 01:00
단테의 신곡 1편인 '지옥(인페르노)'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인페르노'.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 박사(톰 행크스)가 신곡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영화 인페르노]

단테의 신곡 1편인 '지옥(인페르노)'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인페르노'.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 박사(톰 행크스)가 신곡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영화 인페르노]

‘신곡(神曲·Divina commedia)’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인 단테(1265~1321)입니다. 중세 유럽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꼽히는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 등 세 편으로 구성돼 있죠. 시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했던 단테는 정파 싸움에 휘말려 반역죄인으로 찍혔고 잡히면 화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는 고향 피렌체를 떠나 21년간 유랑생활을 하며 신곡을 썼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가 만난 세 마리의 야수는 각각 폭력(사자), 정욕(표범), 탐욕(늑대)을 상징합니다. 현실 세계의 인간이 가장 빠져들기 쉬운 유혹들이죠. 인생(70세)의 반환점을 돈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지옥과 연옥, 천국을 지나며 실재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만납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현인들부터 역사를 주름잡았던 숱한 제왕과 예술가 등을 마주하죠.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건 야수의 유혹에 사로잡혀 삶을 탕진했던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마주했던 때입니다. 바로 지옥에서죠.
단테의 신곡 1편인 '지옥(인페르노)'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인페르노'.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 박사(톰 행크스)가 신곡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영화 인페르노]

단테의 신곡 1편인 '지옥(인페르노)'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인페르노'.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 박사(톰 행크스)가 신곡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영화 인페르노]

 지옥에서 단테는 제일 먼저 한 노인이 불붙은 발을 동동 거리며 벽에 난 구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확인한 단테는 깜짝 놀랍니다. 그 노인은 얼마 전 타계한 교황 니콜라우스 3세였기 때문이죠. 노인은 자신이 고성죄(뇌물을 받고 성직 등을 팔아먹는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이어 다른 교황들도 같은 죄로 지옥에 올 거라고 확신하죠.  
연극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된 지옥의 모습. [국립극장]

연극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된 지옥의 모습. [국립극장]

 지옥의 중심에 다다르자 악마 루시퍼가 얼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루시퍼는 세 사람의 머리를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세 명은 각각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 카이사르를 배반한 브루트스와 카시우스였습니다. 단테는 이 장면을 가장 끔찍하고도 인상 깊게 묘사합니다.  
 
 신곡은 세 편으로 이뤄졌지만 백미는 앞서 살펴본 지옥 편입니다. 단테가 지옥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은 천국보다 지옥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즉, 교회를 통해 구원받고자 했던 건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는 이야깁니다.  
연극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의 모습. [국립극장]

연극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의 모습. [국립극장]

 사람들의 마음속엔 천국의 기쁨보다 지옥의 형벌이 더욱 가까웠습니다. 즉, 어떻게 하면 천국으로 갈까 고민하는 게 아니고, 지옥을 가지 않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가에 관심이 많았죠.  
 
 중세인들은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종교적 의무를 실천했습니다. 또 돈으로 면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부자들은 면죄부를 샀고, 교회는 죄를 사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렸죠. 단테가 직전의 교황이었던 니콜라우스 3세를 지옥에서 만난 것처럼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의 '단테, 신곡, 그리고 피렌체 시'. [사월의책]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의 '단테, 신곡, 그리고 피렌체 시'. [사월의책]

 신곡에 묘사된 것처럼 중세는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리하는 교황은 세속의 권력까지 쥐고 현실 정치를 뒤흔들었습니다. 교리와 성서는 사람들의 일신을 구속하고 인간성의 발현을 막았죠. 서민들은 죄를 짓지 않고도 죄인인 듯 살아야 했지만, 귀족과 성직자들은 죄인이면서도 선인인 듯 행세했습니다. ‘성전’이란 미명 아래 무수한 이교도들이 피를 봐야 했고, 백성들은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는 십자군을 위해 살과 뼈를 바쳤죠. 사회 곳곳이 모순 투성이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잘못됐다는 말조차 하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이런 온갖 부조리와 잘못된 현실을 꼬집은 작품이 바로 신곡입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20여 년 동안 이탈리아 곳곳을 유랑하며 마주하게 된 현실을 날카로운 눈으로 읽어냅니다. 그 안에 중세의 모든 학문을 녹여내고 그리스와 로마의 서사적 전통을 살려 시대의 명작을 창조해내죠. 역사 속 위인 뿐 아니라 신화 속 인물들, 예를 들면 제우스와 오디세우스 등을 등장시켜 인간 삶의 천태만상을 보여줍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표현하며 인간의 본질과 시공간을 초월한 진리를 찾고자 했죠.  
'신곡'을 쓴 단테. [중앙포토]

'신곡'을 쓴 단테. [중앙포토]

 무엇보다 신곡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단테가 최후의 중세인이면서 최초의 근대인이었다는 거죠. 그 이유는 첫째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곡이 중세의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신곡을 접한 많은 지식인들은 교회와 성직자, 귀족들의 비리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이런 문화는 급속도로 퍼져나갔고요.
 
 두 번째는 단테가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작품을 쓴 근대 문학의 시초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시도는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르네상스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청년 단테가 살았던 13세기 후반 지배계층의 언어는 라틴어가 주였습니다. 중세의 귀족과 지식인 계층은 어려서부터 라틴어를 필수로 배웠죠. 성경과 교리, 또 출판되는 책들의 다수가 라틴어로 쓰여 있었고요. 교황청이 있는 로마가 세상의 중심이었듯, 인간 언어의 본질은 라틴어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 [문학수첩]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 [문학수첩]

 하지만 단테는 모국어인 피렌체어로 글을 썼습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신곡은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라틴어가 차지하던 절대적 위상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죠. 이는 마치 세종의 한글 창제 직후 선비들이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쓰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르네상스의 선구자였던 보카치오나 페트라르카도 없었을 겁니다. 이후 문학은 귀족 등 지배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모든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쉽게 쓰여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중세의 끝은 소수의 지배계층에서 다수의 대중으로, 또 신에서 인간으로 권력과 가치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걸 의미했습니다. “혈통이 노빌레(nobile·귀족)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고귀한 정신과 인품이 노빌레를 결정한다”는 단테의 말은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소유한 영지의 넓이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노력, 열정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거죠. 르네상스는 어두웠던 중세의 막을 내리는 ‘인간혁명’이었던 셈입니다.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 당한 단테를 그린 브론치노(AgnoloBronzino)의 1530년 작품. [중앙포토]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 당한 단테를 그린 브론치노(AgnoloBronzino)의 1530년 작품. [중앙포토]

 그렇다면 르네상스는 왜 하필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을까요?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많은 나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의 발원지가 하필이면 중세 시대의 심장부였던 로마와 그 주변 지역들이었을까요. 당시 로마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중세적 질서의 핵심이었고 1000년 넘게 유럽의 사상과 이념, 정치를 지배한 고도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중세를 무너뜨리는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게 아이러니할 따름입니다.
 
 로마 연구의 권위자인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위와 같은 물음에 대해 “중세의 본거지인 로마 교황청이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멀리 있으면 결점도 가려지지만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보려하지 않아도 단점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 만큼 세속적 가치에 물든 교회의 타락과 지배층의 부패가 심했단 이야깁니다. 이제 막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들은 중세적 이데올로기에 큰 반감을 갖게 됐고, 구체제는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시오노 나나미. [중앙포토]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시오노 나나미. [중앙포토]

 하지만 이것으로 중세의 몰락은 설명할 순 있어도 르네상스의 시작을 이야기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생겨난 걸까요.
 
 그건 바로 ‘상업혁명’때문입니다. 상업혁명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철기혁명으로 생산력을 높여 물질적 성장을 이룬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14세기 이탈리아는 교역이 활발하고 금융이 발달한 상업의 요충지였습니다. 이데올로기의 핵심 지역일 뿐 아니라 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했던 거죠. 특히 이탈리아는 봉건제가 중심인 다른 지역과 달리 ‘코무네(comune)'라는 자치공동체가 발달해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연합에서 발전한 코무네는 점차 힘을 키워가면서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같은 도시국가들로 성장합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여자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슬림을 무차별 살해해 악명을 떨친 리처드 1세. 사자왕으로도 불린다. [중앙포토]

십자군 전쟁에서 여자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슬림을 무차별 살해해 악명을 떨친 리처드 1세. 사자왕으로도 불린다. [중앙포토]

 
 특히 교황청 주변의 도시들은 전 유럽에서 모인 자금을 관리하며 금융업을 발달시켰죠.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도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며 사업을 키워 나갔습니다. 상업과 금융의 발전은 기술혁명 못지않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줬죠. 유럽의 모든 물자가 투입된 십자군 전쟁의 수혜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주로 얻었습니다. 사람이 모이고 돈과 물자가 집중되면서 상공업과 물류·유통이 발달한 건 당연한 이치였죠.
 
 그런데 코무네의 지배계층은 다른 지역의 봉건 영주들과 큰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처럼 ‘좋은 의미에서’ 돈이 사회를 지배했던 거죠. 봉건시대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귀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었지만, 코무네에선 누구든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면 상류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가문이 좋지 않아도 재능만 있다면 출세할 수 있던 시기였죠.  
세계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의 볼로냐대. 상인들의 자치 모임이 학문적으로 진화하면서 대학으로 발전했다. [중앙포토]

세계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의 볼로냐대. 상인들의 자치 모임이 학문적으로 진화하면서 대학으로 발전했다. [중앙포토]

 신흥 재벌이 된 상인들은 기존의 귀족(봉건영주)와는 다르게 고상한 취미를 필요로 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사회의 주류가 될 순 있었지만 귀족이 가졌던 고귀한 품격까지 저절로 얻게 되는 건 아니었죠. 이들은 최초의 종합대학인 볼로냐 대학처럼 학문과 연구의 공간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지식과 교양을 쌓았습니다. 또 오래된 미술품을 사 모으고,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문화적 소양을 높여갔죠.  
 
 학문과 예술에 쏠린 눈은 자연스레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1000년이라는 중세의 어두운 시간을 ‘타임슬립’ 해서 과거의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재생, 복원, 회귀라는 뜻을 갖고 있는 ‘르네상스’라는 말이 이 시대를 규정하는 용어로 쓰이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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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와 같은 흐름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이 지식과 학문, 예술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문화와 만나면서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된 거였죠. 데이터 전문가인 피터 리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나온 후 유럽 전역에 있던 성경책의 숫자가 3만여권에서 1200만권 이상으로 늘었다,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즉, 신의 음성을 사제가 아닌 성경을 통해 모두가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 거죠. 이는 문학, 역사, 철학 등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쇄술의 아버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중앙포토]

인쇄술의 아버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중앙포토]

 이처럼 인쇄술의 발달은 지식혁명을 견인했고 르네상스 운동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고대 그리스·로마 이후 가장 찬란한 인문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과거 아테네를 비롯한 도시국가엔 철기혁명과 문자의 보급이 있었다면, 르네상스 시대엔 상업혁명과 인쇄술의 발명이 있던 거였죠. 물질적 성장과 지적 혁명이 함께 맞물리면서 한 차원 높은 문명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르네상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간혁명을 이뤄냈고, 오늘날 르네상스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히 르네상스에 이어 대항행시대로 이어지는 인류의 탐사·모험 활동은 한 차원 높은 기술혁명을 앞둔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 걸까요.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주 ‘인간혁명’에서 함께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매주 토요일 아침 업데이트 됩니다.
#홈페이지(http://news.joins.com/issueseries/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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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는
윤 기자는 2010년부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특히 인성·시민 교육 및 미래와 관련한 보도에 집중했다. 앞으로는 성적과 스펙보다 협동과 배려, 공감 같은 인성역량이 핵심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주제로 ‘휴마트(humanity+smart) 씽킹’이란 책을 냈다. 유네스코가 15년마다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 심포지엄의 기조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중앙인성연구소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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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윤석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