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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시 한수] 작은 물방울

중앙일보 2018.02.15 01:04
윤경재의 나도 시인(2)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 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편집자> 
 
 
작은 물방울 [중앙 포토]

작은 물방울 [중앙 포토]

 
작은 물방울
 
거미줄이 낳고  
새벽이슬이 씨 뿌린  
물의 영혼  
폭풍우에도 맑고 고르다
 
거미와 놀고 싶어도 마음뿐  
빠른 몸을 두고 갈 수 없어  
답답해하던 빛을 감싸 안았다가  
솔잎과 꽃들을 비추었다가
사랑의 화음으로 해방해준다  
 
태양도 잠 깨어  
간밤에 보았던 땅 아래 기쁜 사연을  
새 무지개로 화답한다
 
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어 하늘에 걸어두고
 
보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보이지 않는 밝은 비밀이 더 많다고  
먹구름에 속지 말라고 귀띔을 한다
 
 
작은 물방울 [중앙 포토]

작은 물방울 [중앙 포토]

[해설] 음양론으로 바라본 무지개
나는 휴일이거나 시간이 나면 자주 남한산성에 오른다. 집에서 산 입구까지 자동차로 15분 거리라 참 임의롭다. 남한산성 안에는 거친 성곽길과 더불어 역사적 이야기가 담긴 행궁터, 사찰, 향교 심지어 천주교 순례성지까지 있다. 사람이 많은 등산로뿐만 아니라 여러 갈래 둘레길, 호젓한 솔밭길, 오솔길도 날 반긴다. 맛있는 음식과 다과를 파는 전문 식당과 카페마저 즐비하다. 때때로 풍물과 난장까지 서니 볼 것과 즐길 것이 많다. 산성 안에 자리잡은 이 모든 사물과 대화하며 걷는 시간이 즐겁다.
 
초여름 어느 날 오전에 적잖은 비가 내리고 그치자 얼른 채비를 서둘러 산에 올랐다. 인적이 드문 숲속을 찬찬히 걷는데 마침 거미줄에 영롱하게 매달린 물방울들과 마주쳤다. 오전에 나보다 먼저 찾아준 빗물과 이슬의 흔적이다. 주인인 거미는 어디론가 자리를 비웠고 손님인 작은 물방울들이 매달려 주변의 풍광을 담아 비추고 있었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경이롭고 황홀한 광경에 아주 오랫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의 모습 [중앙 포토]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의 모습 [중앙 포토]

 
물방울은 작지만 세상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영롱하고 아름답게 비추었다. 실바람에 흔들리며 실로폰 소리 내는 풍경처럼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다.
 
잠시 스탕달 신드롬에라도 걸린 듯한 나는 모든 인상을 가슴에 담고 길을 되돌렸다. 마침 근처에 있는 한옥 성당에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았다. 고요한 성당 분위기에 맞추어 차분히 시심을 써 내려 갔다.  
 
작은 물방울들이 빛을 감싸 안았다가 되쏠 때 프리즘이 되어 주위에 무지개가 핀다. 구약성경에서 무지개는 죄를 많이 지은 인류를 벌하려고 홍수를 내렸다가 죄 없는 노아와 그 가족을 방주에 실어 구하는 이야기에서 나온다. 홍수가 끝난 뒤 하느님께서 노아와 계약을 맺으며 다시는 홍수를 내려 뭇 생명을 멸하는 일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의 징표였다. 인류 구원 약속의 징표였다.  
 
나는 한의사이기에 모든 사물과 사정을 음양론으로 해석하는 버릇이 있다. 무지개마저도 내 눈에는 일곱 가지 빛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과 그 나머지 감추어진 부분의 ‘대대(待對)’라고 연상된다. 실제 음양론은 일반인들이 떠올리듯 대결과 대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비와 상생을 함께 어우르는 이론이다. 음양론은 두 대립 상대의 하모니(화음)라고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대립과 조화, 그런 걸 대대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대대를 강조하는 음양론에 따르면 사물과 사정은 좋고 나쁨의 가치란 게 본래 없는 것이다. 한 번 흥했다가 다시 쇠하는 흐름의 과정일 뿐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빛과 어둠도 음양론으로 보면 선악의 개념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선악이 없다는 건 괴변이다. 오해 마시라.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도 약간 차이가 난다. 드러나는 증상과 감추어진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단계에서 ‘변화의 흐름에 순응하려는 기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게 그것인 거 같으나 미세하게 다르다. 병이 드는 걸 모두 싫어하지만, 어쩌면 더 큰 병을 예방할 조건이 된다는 사고쯤으로 이해하면 쉽겠다.
 
그렇다면 태양이 땅 아래로 들어가 어둠이 찾아오는 것도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기쁜 사연일 수 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어도 태양이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듯. 오늘 내가 본 무지개는 새 무지개였다.
 
작은 물방울 [중앙 포토]

작은 물방울 [중앙 포토]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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