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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김일성 가면과 프레임

중앙일보 2018.02.15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여야 한다고 믿는다면 손을 들어 달라.”
 
2007년 7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에서 사회자가 던진 질문이다. 우리의 통념과 달리 미 연방 차원에선 영어가 공식 언어가 아니다. 이민자 차별 등 논란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는 가부(可否)의 의견을 밝히는 대신 이처럼 답했다.
 
“만일 이 나라에서 산다면 모든 사람이 영어를 배우려 할 것이다. 쟁점은 미래의 이민자 세대가 영어를 배우려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합법적이고 양식 있는 이민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가다.”
 
프레임(사고의 틀) 이론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이 답변에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고 했다. “상대편의 프레임을 품위 있게 바꿨기 때문”(『폴리티컬 마인드』)이란 것이다. 레이코프는 평소 상대편의 관점에 의해 프레임이 구성된 질문엔 답하지 말라고 조언해 왔다.
 
현실에선 그러나 그리하기 녹록지 않다. ‘김일성 가면’ 논란을 보며 든 생각이다.
 
1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들고 나왔다는 남성 가면이다. 한 매체가 “김일성 가면을 썼다”고 보도하고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김일성의 소싯적 사진을 공개하면서 논란은 불이 붙은 듯 커졌다.
 
통일부는 “북한에선 아니라고 한다. 북한에선 (김일성을) 그런 식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해당 매체도 ‘오보’라며 기사를 삭제했다. 문재인 정권과 지지자들은 이로써 ‘일베’와 보수 언론, 보수 정치인들이 ‘허튼짓’한 걸 입증했다고 믿을 거다. 이 반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개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통일부가 간과하는 게 있다. 여전히 ‘김일성 가면’이란 프레임 속에서 해명했다는 사실이다. 이 안에선 김일성과 닮은꼴이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분개할 이가 적지 않을 터다.
 
여기에 더해 더 큰 프레임도 있다고 본다. 북한이 과연 한 민족인 한민족인가를 두고서다. 한국리서치 정한울 박사는 “1990년대 ‘한민족의 구성원이 아니다’란 답변이 10% 미만이었으나 지난해엔 30%대였다. 특히 30대 이하에선 37%였다”고 전했다. 막연히 싫은 게 아니라 한 민족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의미다. 그러니 통일할 이유도 없는 게다. 게다가 불량 국가다. 우리 선수를 희생하고 세금을 들여야 할 까닭이 없다고 보는 게 젊은 세대에서 강하다. 북한에 대해 각별하지만 젊은 세대의 북한관엔 둔감한 현 정권으로선 참으로 난감한 프레임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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