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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나서 '참고 살지 마'…즐거운 명절에 이혼합니다

중앙일보 2018.02.15 00:02
5년 전 결혼한 직장인 여성 A(40)씨는 지난 추석 친정 엄마로부터 “어렵게 임신했으니 이번 추석엔 집에서 쉬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기차 타면 금방인데 얼굴만 비추라”며 A씨 부부를 부산 본가로 불렀다.
 
A씨는 차례를 지내는 동안 앉지도 못하고 부엌에 서서 일만 하는 형님 동서들을 목격했다. 또 며느리들이 설거지하는 동안 거실에서 과일을 먹는 시댁 식구들을 허탈한 표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A씨는 즉시 여동생에게 전화해 “이혼보다 파혼이 낫다”며 결혼 전 명절 기간에 시댁에 가볼 것을 조언했다. 또 남편에게는 가정문제상담소에서 정식 상담을 받자고 제안했다.
 
회사 선배와 2년 전 결혼한 대기업 대리 B(31·여)씨는 작년 추석 충격적인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번에는 전을 부치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시켰느냐”고 다그친 뒤 전화를 걸어 “요즘 군기가 빠진 것 같다”고 화를 낸 것이다. B씨는 “남편은 집안 분위기가 워낙 가부장적이니 ‘네가 좀 이해해달라’는 입장”인 반면 “오히려 친정 부모님이 ‘참고 살 필요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명문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취직한 딸이 시댁에만 가면 ‘부엌데기’가 되는 것에 B씨 본인보다 친정 부모가 더 울화통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명절 이후엔 어김없이 부부 관계 파탄이란 후유증이 몰려온다. 대법원 ‘월별 이혼 접수 건수’(2012년 1월~2017년 8월) 통계를 이용해 설·추석이 있는 달과 그 다음 달의 이혼 접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11차례 모두 이혼 신청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의 경우 설 연휴가 있었던 1월 총 1만1521건의 이혼신청이 접수됐지만 2월에는 1만3256건이 접수돼 15.05% 늘어났다. 많게는 34.56%(2015년 2~3월), 적게는 2.17%(2014년 9~10월) 늘었다. 평균 증가율은 15.56%로 집계됐다.
 
◆ 고부갈등형=가장 대표적인 명절 이혼 사유다. 전문가들은 고부갈등은 주로 효도와 체면을 중시하는 중년 남성이 어머니와 아내 간 중재에 실패하면서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박소현 가정법률상담소 구조2부장은 “중년 여성의 경우 시간이 지나며 친정과 이해 관계가 줄어드는 반면 중년 남성은 ‘원가족’의 의미를 중시한다”며 “이 때문에 아내에게 ‘대리 효도’를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고, 명절에는 시부모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고부갈등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며느리를 둔 시부모들은 상대적으로 핵가족화와 개인주의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유연해, ‘젊은 사람들에게 예전 방식의 효도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 가사 분담 갈등형=주로 시댁을 방문한 여성이 가사일을 도맡기 때문에 생긴다. 지난해 9월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 거주자 만 19세에서 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명절 인식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명절 차례를 지낼 때 남녀의 가사 분담 비중은 여성(77.9%)이 남성(22.1%)보다 월등히 높았다. 2011년(남성 22%, 여성 78%), 2013년(남성 22.7%, 여성 77.3%)에 실시한 같은 조사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 ‘명절이 여성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주는 날이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8.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 남성‘미투’형=남성이 먼저 가정상담소나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새로운 트렌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명절 이후 남성 상담 건수는 지난 10년간 증가세에 있으며, 지난해의 경우 설 연휴 직후 일평균 이혼 상담 요청자(22명) 중 26%가 남성(5.7명)이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이현곤 변호사는 “과거엔 기혼 여성이 시댁과 겪는 갈등이 두드러졌다면 최근엔 기혼 남성이 처가와 겪는 갈등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출가외인’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져 고생하는 딸을 보느니 적극적으로 이혼을 지지하겠다는 친정 부모들이 늘었고, 부부간 싸움이 사돈 간의 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혼 과정에서 친정 부모가 소송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명절을 슬기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부부’관계를 1순위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김요완 서울사이버대 가정상담학과 교수는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배우자인데, 이를 망각하게 되면 내 부모를 순위에 놓고 배우자에게 내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요하게 된다”며 “평소에 하지 못한 효도를 명절이라는 이유로 배우자에게 강요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배우자와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곤 변호사는 “장성한 자식의 이혼 재판에 대신 나오겠다고 나서는 부모가 있을 정도”라며 “젊은 부부들이 결혼 때 양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바람에 결혼 후에도 부모의 간섭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어떤 갈등이 벌어지든 당사자와 배우자가 먼저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지유·정용환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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