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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대중화' 실험 한창인 일본을 가다] 백화점부터 골목 음식점까지 "암호화폐 OK"

중앙일보 2018.02.15 00:02
비트코인 결제 가능한 점포만 26만곳...실험 성패 여부엔 기대와 우려 공존
 
일본 도쿄 타마치(田町)의 골목길에서 마주친 한 음식점 앞 안내판. 영어·일어·중국어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가게임을 알리고 있다. / 사진:도쿄=이창균 기자

일본 도쿄 타마치(田町)의 골목길에서 마주친 한 음식점 앞 안내판. 영어·일어·중국어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가게임을 알리고 있다. / 사진:도쿄=이창균 기자

‘비트코인을 지불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Bitcoin can be used for payment).’ 지난 1월 25일(이하 현지 시간) 저녁 일본 도쿄 남부의 타마치(田町) 지역. 전철역에서도 도보로 15분가량 떨어진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마주친 한 음식점 앞 안내판엔 영어·일어·중국어로 이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들어가서 “정말 비트코인으로 결제해도 되느냐”고 묻자 점원인 스미야(38)가 “당연하다”며 스마트폰 전자지갑을 보여 달라는 손짓을 했다. 500엔(약 4900원) 정도의 소액만 비트코인으로 갖고 있다는 말에도 “문제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모자란 금액만 현금으로 보태주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일본은 지금 ‘암호화폐 대중화’ 실험이 한창이다. 관광지로 이름난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이처럼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관광지는 더 적극적이다. 같은 날 도쿄 유라쿠초(有楽町)의 가전양판점 ‘빅카메라(Bic Camera)’ 매장에 들어서자 천장·벽면 곳곳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함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이 업체는 지난해 7월에 일본 내 59개 오프라인 점포에서 비트코인 결제 방식을 도입했다. 1회 결제에 최대 30만엔(약 294만원)어치의 비트코인을 쓸 수 있다. 비트플라이어라는 일본 암호화폐 거래소에 가입해 계좌를 개설한 모든 소비자가 대상이다. 일본 국적자가 아니더라도 일본 내 거주지 주소, 일본 내 은행 계좌와 휴대전화 번호 등의 정보를 제출하면 가입할 수 있다.
 
 
세계 비트코인 거래서 일본 비중 50% 넘어
일본 도쿄의 유명 관광지 시부야(?谷)의 번화가에 등장한 암호화페 비트코인 관련 대형 옥외광고. 암호화폐 사업에 적극적인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DMM이 만들었다.

일본 도쿄의 유명 관광지 시부야(?谷)의 번화가에 등장한 암호화페 비트코인 관련 대형 옥외광고. 암호화폐 사업에 적극적인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DMM이 만들었다.

이뿐 아니다. 도쿄 하라주쿠(原宿) 곳곳의 상점들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아넥스’ 같은 대형 백화점도 비트플라이어와 협업해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일본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에 따르면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일본 내 점포는 2014년 63개에서 2015년 918개, 2016년 4500개로 계속 증가했다. 이 숫자는 지난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6만여 점포가 비트코인 결제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올 연말까지는 이보다도 늘어날 전망이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힐스에 따르면 세계 비트코인 거래에서 일본 엔화가 차지한 비중은 1월 30일 기준 51.12%로, 미국 달러화(27.77%)를 여유 있게 제쳤다.
 
최근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은 상황이 좋지 못하다. 정부 차원에서 규제에 나선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어떤 시장이든 규제보다 자율에 맡기는 방식을 취해온 미국조차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올 1월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 조사에 나서는 등 단속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도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암호화폐를 규제할 수 있다”고 밝히며 경고음을 냈다. 각종 암호화폐의 거래 가격은 그런 사이 급락세를 보였다. 중국은 아예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유독 암호화폐 대중화 실험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우선 일본 기업들의 ‘도전 정신’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6년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DMM의 케이시 카메야마 회장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비트코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지 안 올지는 나도 모른다”면서도 “그날이 안 온다고도 할 수 없는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벤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시장 상황이 나빠진 올 초에 암호화폐 거래소까지 새로 열었다.
 
실제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산업계는 금융권과 함께 암호화폐 시장 활성화에 적극적인 모양새다. 일본 통신 업체 ‘인터넷이니셔티브’는 지난해 10월 미쓰비시도쿄 HFJ은행 등 19개 업체와 공동 투자 회사를 설립하고 새 암호화폐 서비스 체계를 개발하는 데 나서고 있다. 은행들로선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빠른 송금이 가능한 독자적인 디지털 통화 개발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단지 산업계와 금융권만의 노력 때문일까. 일본 정부도 기업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해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시행해 암호화폐를 합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했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상용화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타진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등록제를 통해 개인정보·투자자 보호에 나서는 전략을 취했다. 미도리 카네미쓰 비트플라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일본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제하는 제대로 된 법체계를 가진 유일한 국가”라고 말했다. 내수 경기 활성화에 사활을 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암호화폐를 유리한 수단의 하나로 봐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국책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일본은 암호화폐 시장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암호화폐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580억엔 해킹 사태로 안전성 도마에 올라
다만, 이 같은 실험의 성패 여부에 대해선 일본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며 전망이 엇갈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월 26일 코인체크에선 해킹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580억엔(약 5674억원) 상당의 손실이 발생하는 사고가 났다. 꾸준히 거론되던 암호화폐의 안전성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암호화폐 규제에 소극적이던 일본 정부마저 코인체크에 개선 명령을 내릴 만큼 이번 해킹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이를 계기로 최근 3년 사이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시장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더해 일본에선 시세가 비상식적인 폭으로 등락하고 있는 암호화폐가 과연 기성 화폐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 결제 체계를 도입한 일본 전자상거래 업체 라쿠텐의 김승조 개발자는 “암호화폐는 일본에서도 여전히 위험 부담이 큰 화폐이며, 결제 체계 도입 또한 불확실성에 대한 투자로 인식되고 있다”면서도 “일본 정부는 거래소 등록제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나서고 있고,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의 한 매개체로 암호화폐가 등장해 사라질 수 없어진 상황에서 각종 부작용을 해소하려면 암호화폐 거래의 근간인 거래소 안정화부터 꾀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빠른 시일 내에 관련 규정을 확립해, 바람직한 암호화폐 거래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쿄=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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