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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꿈 꿨던 엄마를 위해” 6남매의 화려한 외출

중앙일보 2018.01.19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난 17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 모인 6남매. 각자의 작품을 들고 수줍게 웃었다. 왼쪽부터 이병민·병임·병희·병탁·병주·병욱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17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 모인 6남매. 각자의 작품을 들고 수줍게 웃었다. 왼쪽부터 이병민·병임·병희·병탁·병주·병욱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리가 모두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은 몰랐죠. 지금 이렇게 전시장에 모인 게 재미있네요.”
 
17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의 작은 전시장. 이곳에서 만난 여섯 명의 ‘작가’는 처음으로 함께 연 전시가 스스로 생각해도 마냥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들이 참여한 전시는 ‘6남매전’(23일까지). 말 그대로 3남 3녀인 이들이 자신들의 그림과 사진을 담아 캘린더를 내고, 그 작품 12점을 내건 자리다. 다른 아마추어 작가들의 전시장과 다닥다닥 붙은 공간에서 열리는 ‘미니’ 전시이지만, 그 의미만큼은 절대 작지 않아 보였다. 한 부모 아래 나고 자란 형제자매가 뒤늦게 찾은 꿈을 함께 풀어놓은 자리라는 점에서다. 여기에 미술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6남매 중 맏이인 이병욱씨가 72세, 여섯째인 이병민씨가 60세인 이들 6남매의 평균 나이는 65.5세. 이들 중 넷째까지는 모두 수십 년 간 몸담아온 일을 ‘놓은’ 상태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사느라 바쁘던 이들이 전시를 함께 열게 된 것은 그 덕분이기도 했다. ‘은퇴’가 준 뜻밖의 선물이다.
 
가장 먼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넷째 이병희(64)씨다. “은퇴를 2년 정도 앞두고 ‘퇴직한 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죠. 미리 준비를 해두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로 그림을 배우러 다녔어요.” 병희씨의 설명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던 병주(69)씨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 교사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그게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둘이 약속한 것도 아닌데 두 자매는 똑같이 한국화를 그린다. 이번 전시에 병주씨는 ‘청포도’와 ‘연꽃’을, 병희씨는 ‘석란도’와 ‘소나무’를 선보였다.
 
두 여동생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왕성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맏이인 병욱(72)씨다. 이번 전시에 수채화 1점과 아크릴화 3점을 내놓았다. 지난해 개인전을 연 그에게 여동생들이 “오빠 그림이 제일 좋으니 더 많이 내놓으라”고 졸랐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수채화를 그렸던 병욱씨는 미국 뉴욕에 사는 동생 병임씨가 아크릴 물감을 보내줘 자연스럽게 아크릴화로 옮겨갔다. “동생이 물감을 사주며 ‘오빠가 오래 살려면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한다’고 하더라. 손을 쓰는 일이 뇌 순환에 좋다고. 이 모든 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나머지 다섯 남매를 가장 놀라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셋째 병탁(66)씨다. “병탁이가 퇴직한 지 1년이 지나 만났을 때 ‘어떻게 지내니?’하고 물었더니 ‘그림을 그린다’는 거에요. 믿기지 않아서 모두 ‘네가 그림을?’ 하고 되물었을 정도였죠.” 병주씨의 얘기다. 병탁씨는 6남매 중 유일하게 유화를 그린다. 행정직 공무원 출신으로 구청에서 일하고, 마지막으로 이태원동에서 동장으로 일하다가 2년 전 퇴직한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릴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며 쑥스러워했다.
 
미국 뉴욕에서 살며 평소 손바느질로 한복 치마 만들고 수 놓으며 향수를 달래온 다섯째 병임(62)씨는 한복 자투리 천으로 만든 꼴라주 소품을 냈다. 강릉에서 자영업을 하는 막내 병민씨는 세 누나의 표현을 빌리면 “아직 일하느라 바빠 준비가 덜 된 동생”이지만, “그래도 막내가 전시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며 부추겨 사진 작품 하나를 내놓았다.
 
이들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유화·아크릴화·한국화 등 장르는 모두 다르지만, 화폭엔 한결같이 ‘자연’을 담았다는 점이다. 소나무·자작나무·청포도·구절초·연꽃·튤립 등을 담박하게 포착한 점이 엿보인다. 병임씨는 “우리는 6남매 가족이 모두 모여도 조용한 편”이라며 “그런 성격이 그림에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평생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어머니(고 이낙이씨·1920~1985)의 감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앙보육전문학교를 나와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신 어머니는 미술로 도쿄 유학을 생각했다가 교사였던 아버지(고 이형식씨·1916~1991)를 만나면서 꿈을 접으셨다고 해요. 그림 동화책이 귀하던 어린 시절, 유치원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논 매는 사람들과 스케이트장 풍경을 직접 그리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박봉으로 살림이 빠듯했다. 당시엔 그림 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이들은 “지금이나마 그림과 함께 하는 생활이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연히도 ‘6남매전’을 시작한 1월 17일은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머니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그림에 대한 사랑도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어머니를 기억하며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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