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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복지 포퓰리즘에 기름 끼얹는 정부

중앙일보 2018.01.15 02:02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VIP(대통령)가 바뀌고, 사장님(장관)이 바뀌어도 ‘늘공(늘상 공무원)’은 남죠.”
 
공무원들은 스스로 ‘늘공’이라 부르곤 한다. 자조적인 표현이지만, 늘공에겐 존재의 이유가 있다. 정책 전문가로서 소신을 가지고 일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국가공무원법으로 신분을 보장한다. 하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신뢰가 흔들린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일 “아동수당을 모든 0~5세 아동이 받을 수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올해 예산안 심의를 하면서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상위 10%를 제외하기로 합의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0~5세 모든 계층 아동에 무상보육과 아동수당을 제공하는 유일한 나라가 된다. 복지 선진국 스웨덴·프랑스 같은 나라도 아동수당은 모든 계층에 지급하지만, 보육은 부모 소득, 맞벌이 여부, 자녀 수에 따라 다르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맞벌이가 아니면 어린이집에 갈 수 없고, 맞벌이도 보육료를 차등 지원한다.
 
박 장관은 “국민 여론이 모든 계층 지원 쪽이다. 상위 10% 제외 기준을 만드는 행정비용이 크다”고 이유를 댔다. 복지부 관료들도 여기에 코드를 맞추고 있다. 여론을 좇고 행정비용을 생각할 것 같으면 기초연금도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게 맞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모든 계층에 아동수당을 줄 수도 있다. 그러려면 보육지원 제도와 상관관계를 따져야 한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0~5세 아동에게 지급하는 10만~20만원의 가정양육수당과 중복된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알면서도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그동안 선거마다 선심 쓰듯 보육료·가정양육수당이 확대돼 왔다. 하지만 보육서비스가 절실한 맞벌이 가정은 오히려 아이를 믿고 맡기기 어려워졌고, 어린이집은 6년째 보육료가 동결되면서 운영난을 겪는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눈칫밥을 먹게 된다. 저출산 예산의 80%를 보육에 써왔는데도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복지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가정양육수당과 아동수당이 중복된다고 아동수당 도입을 반대했다. 출산장려 효과도 미미하다고 했다. 지금은 중복되지 않고 아동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은 득표를 위해 포퓰리즘 아동정책을 쏟아왔다. 정치가 이 모양이면 관료라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게 늘공의 존재 이유다.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늘공을 보고 싶다.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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