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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 죽지 않으려 싸웠던 '투견(鬪犬)', 극적 구출 1년 후….

중앙일보 2018.01.14 12:22
1년전 경기도 안양 투견장서 구출된 투견 베토벤의 현재 모습. 인천의 한 위탁보호소에 생활하고 있다. [사진 케어]

1년전 경기도 안양 투견장서 구출된 투견 베토벤의 현재 모습. 인천의 한 위탁보호소에 생활하고 있다. [사진 케어]

지난 11일 오후 동물권단체 케어(Care)의 인천 위탁보호소. 1년 전 경기도 안양시 내 불법 투견장서 극적으로 구출된 ‘베토벤’이 생활하는 곳이다. 도사견 혼종인 이 개의 몸무게는 43㎏.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대형견이다. 큰 덩치에 검은 얼굴까지 영락없는 맹견의 모습이다. 2010년생(추정)이다. 
 
당시 투견장서 함께 구조된 젊은 개는 몸값이 300만원에 달해 견주와 소유권 다툼이 일었지만, 늙은 베토벤은 견주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투견으로 더는 이용가치가 없자 철저히 버려진 것이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니 이름도 모른다. 케어는 생김새가 1992년 개봉한 브라이언 레반트 감독의 가족영화 『베토벤』역의 세인트버나드 종과 비슷해 베토벤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영화 베토벤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베토벤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이날 케어 동물구호팀과 함께 베토벤을 찾아서인지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도 짖지 않았다. 우리에서 풀어놔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호기심에 기자의 신발·겉옷 등을 이리저리 냄새 맡고 핥더니, 갑자기 큰 몸을 일으켜 앞발로 상체를 가볍게 툭 쳤다. 위탁보호소 연태성 대표는 “친근감의 표시다”라며 “이곳에 있으려면 물티슈는 필수”라고 말했다.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베토벤. [사진 케어]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베토벤. [사진 케어]

 
베토벤 우리 맞은편 견사에는 몸집이 훨씬 작은 개들도 있는데, 다가가 코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정도 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입소 초기 때는 견사 철장을 몸으로 들이받았던 투견 그대로였다. 더욱이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개를 보면, 본능적으로 목덜미를 물어 제압하려는 공격성까지 보였다고 한다. 사회화 훈련을 거친 베토벤은 이제 장난기 많은, 덩치 큰 평범한 반려견이 됐다. 
  
베토벤은 지난해 1월 15일 투견장 구출 후 수의병원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았다. 구출 당시 배와 등, 왼쪽 뒷다리 쪽 찢어진 상처가 심했다. 트라우마에 몸을 계속 떨었다. 정밀검사 결과, 신장이 망가져 투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빨은 대부분 마모됐다. 이에 케어 측은 베토벤이 ‘승률 조작용’으로 링 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1년 전 투견장에서 구출된 뒤 수의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베토벤 모습. [사진 케어]

1년 전 투견장에서 구출된 뒤 수의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베토벤 모습. [사진 케어]

 
케어에 따르면 투견으로 길러지는 과정은 학대의 연속이다. 특히 ‘프로펠러’가 고약하다. 8m가량의 막대 양 끝에 각각 개와 고양이를 묶어놓고 충동적으로 계속 뛰게 한다. 빙빙 돈다 해 프로펠러로 이름 붙여졌다. 베토벤이 프로펠러를 당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훈련법은 널리 쓰인다고 한다. 러닝머신을 계속 뛰게 하는 훈련법은 일반적이다. 훈련 과정서 비정상적으로 공격성을 기르고 근육량을 늘리려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이 접종되기도 한다.
 
투견에 내몰린 개는 특히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각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투견 주인들은 “원래 싸우려 태어난 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후각이 발달한 개는 피 냄새가 짙게 밴 링을 기억한다.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상대 개의 목덜미를 물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으로 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에 직면한다. 링 위에 오른 투견 중 공포심에 떨어 이빨이 ‘딱딱’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일반적인 개들의 공격과정은 상대방 탐색하기→짖기→달려들기 순이다. 하지만 투견장서 구출된 투견은 탐색, 짖기 과정이 없다. 곧바로 달려들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베토벤과 함께 구출된 투견(화랑이) 역시 현재 이런 트라우마를 치유한 상태다.   
[자료 케어]

[자료 케어]

 
투견 외에 상해, 유기 등도 여전히 끊임 없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 위탁보호소에는 현재 50여 마리의 개가 생활 중이다. 상당수 학대피해를 경험한 개들이다. 2016년 케어로 접수된 학대 신고 건수는 2114건에 달한다. 모 재활용센터에서 매일 폭력을 당해 걷지 못하게 된 개, 이빨이 부러져 나간 개 등 피해사례는 다양하다. 전체 신고 건수 중 상해가 613건으로 가장 많다. 끔찍한 살해도 93건이나 된다.  
 
올 3월부터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수위가 배로 강화된다. 동물 학대로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종전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학대는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일 부산에서 꼬리가 훼손되고 척추 손상을 입은 길고양이가 발견됐다. 동물보호단체는 사람에게 공격받은 것으로 보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미희 케어 동물구호팀 간사는 “동물 학대는 자신이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린 동물을 상대로 분노를 표출해 문제가 심각하다”며 “잔인한 학대행위에 비해 여전히 처벌수위가 낮다.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역시 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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