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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文 대통령, 국회 아무리 인기 없어도 협치해야 개혁 성공"

문희상 "文 대통령, 국회 아무리 인기 없어도 협치해야 개혁 성공"

중앙일보 2018.01.13 00:01 종합 15면 지면보기
[김진국이 만난 사람]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묵향(墨香)이 그득했다. 책상은 검은 천이 깔려 서판이 됐다. 그 위에 붓과 벼루와 문진이 놓였다. 벽에는 걸어놓은 글씨가 주렁주렁하다. 지난 9일 아침 찾아간 문희상(73)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방은 서실(書室) 같았다. 그는 올해 자신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역지사지(易之思之)’로 정했다고 했다.

“바꿔서 생각하자. 여야 정치권의 리더십은 크고 멀리 보는 눈을 가지고 이 국면을 풀어야 한다. 이 국면을 제대로만 가면, 명예혁명을 정말 멋지게 마무리 지을 좋은 기회다. 이런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는 1992년 14대 총선부터 15대를 제외하고 의정부에서 6선 한 국회의원이다. 2012년과 2014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고, 18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재야인사 김대중(DJ)의 지시로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의 전국 조직을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과 안기부 기조실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이었고, 김대중 후보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해 영국으로 나갔을 때 이기택 대표의 비서실장도 맡았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자신의 특활비를 500만원씩 나눠주자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무슨 돈이냐"고 묻는 바람에 특활비 사용 원칙을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자신의 특활비를 500만원씩 나눠주자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무슨 돈이냐"고 묻는 바람에 특활비 사용 원칙을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DJ옆에 있을 때는 DJ맨, 이기택 총재 옆에 있을 때는 이기택 맨, 노무현 대통령 때는 친노로 보인다.
“왜 그러냐. 우선 나는 ‘수처작주’(隨處作主ㆍ가는 곳마다 주인처럼 최선을 다한다)라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나는 누구의 비서실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는 정치인을 혐오해. 자기 주체는 없고, 그냥 따라가는 것만 있는 사람이지. 내가 굳이 계보를 따지면 김대중밖에 없어요. 왜? 사숙했기 때문입니다. 원칙은 딱 세 가지, 무신불립(無信不立), 화이부동(和而不同), 선공후사(先公後私)예요.”
그런데 어떻게 모두 요직에 기용했죠.
“내가 ‘신뢰’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믿음이 가느냐 안 가느냐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썼다. 그 때문에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어떻게든 포토라인에 세우라’고 압력을 넣어 처남 취업 청탁 혐의가 조사를 받는 바람에 20대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당했다 겨우 전략공천되는 곡절을 겪었다.
문희상 당시 열린우리당의장이 2005년 신임 중앙상임위원과 함께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문 의원은 지금도 김대중 철학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문희상 당시 열린우리당의장이 2005년 신임 중앙상임위원과 함께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문 의원은 지금도 김대중 철학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나는 1차 김대중, 2차 노무현, 3차 문재인으로 개혁이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앞 두 정부에서 개혁과 혁신이 좌절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많은 아쉬움, 완성하지 못한 한이 있어 문재인 정부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7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전광석화처럼 그것을 잇는 작업을 했어요.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 ‘국회의 계절’입니다. 이제부터는 개혁 입법으로 갑니다. 우선 개헌이 먼저고, 그다음에 개혁입법입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당선된 지 100일 안에 76개 개혁 법안을 여야 협치(協治)로 만들었어요. 그걸로 뉴딜을 하고,  미국을 다시 세웠습니다.”
너무 밀어붙인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인수위도 없이 출범해서 겨우 7개월 된 겁니다. 벌써 피로감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것은 야당 프레임입니다. 적폐청산이 되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게 기본입니다. 촛불 민심은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 한번 만들어 봐라. 지금까지 묵은 때 전부 벗겨라’ 하는 거죠. 적폐청산을 역사적 소임으로 하고 탄생한 정부입니다. 지금 야당은 6~7개월 전 여당이었어요. 자기네들이 똥 싸 놓고 이 정부가 그것 치우기도 바쁘고, 복원하기도 어려운 것을 전광석화처럼 해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미국ㆍ중국ㆍ일본과 외교 자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다 복원되었어, 이 짧은 시간 안에.”
문희상 의원은 지난 5월 대통령 특사로 일본을 방문,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나 위안부 문제 합의 재조정 문제를 협의했다. [연합뉴스]

문희상 의원은 지난 5월 대통령 특사로 일본을 방문,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나 위안부 문제 합의 재조정 문제를 협의했다. [연합뉴스]

중국에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철수될 것 같은 기대감만 높여놓은 것 아닌가요.
“중국은 알고 있어요.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구나.’ ‘사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이거 다 알아요, 다 알아. 그런데 왜 그러느냐? 국내용으로 써야 하니까…. 이제 복원해야 해. 7중전회 다 끝났어. 1인 체제 굳혔어. 시진핑도 한국과 잘 지내야 해. 거기에 핑계를 확인하는 과정에 3불(不)이 나온 겁니다.”
위안부 문제는 재협상으로 가지 않기로 했는데.
“국가 간에 약속했는데, 그게 아무리 잘못되었다 해도 그러면 아베 일본 총리랑 뭐가 다릅니까. 투 트랙, 과거와 미래입니다. 한ㆍ미ㆍ일 공조로 북핵에 대응하고, 경제교류, 문화 교류, 이렇게 미래지향적인 것은 앞으로 나가자, 이거야. 위안부 문제를 앞세워 미래 지향적인 일을 하지 말자는 게 박근혜 전략이었어요. 우리는 그게 아니야. 투 트랙으로 미래로 나가자. 과거는 직시하자. 과거에 연연해 미래로 못 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만, 미래로 간다는 핑계로 과거를 덮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래서 두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아베 총리 특사가 와서 할머니들에게 사과하면 해결이 될 텐데…”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협치를 강조했다.
“첫째, 대통령이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고 할수록 국민과 국회는 동의어라는 인식을 해야 해요. 이걸 인정해야 대의민주주의가 있는 겁니다. 국회가 아무리 인기가 없고, 하는 일마다 서로 발목만 잡아도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그래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안 하는 게 나아요. 통신기계가 발달해서 직접민주주의가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이건 보완적으로 써야 하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강경파는 야당을 협치 대상이라기보다 적폐대상으로 보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건 고쳐야지. 결국, 대통령의 책임이니까. ‘야당이 발목 잡아서 아무 일도 못 한다’고 핑계 댈 수 있는 기간은 1년입니다. 그다음부터는 ‘너는 뭐냐. 개혁하라고 세워줬더니 왜 국회 탓만 해? 너는 못하고.’ 이렇게 된단 말이야. 국회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역사적 소명이 있어요. 그런데 옛날하고 똑같이 해.”
김대중 정부 초기 정무수석과 안기부 기조실장, 노무현 정부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는데, 그때는 국정원 돈을 ‘통치자금’으로 가져다 쓰지 않았습니까.
“절대 없지. 있을 수가 없는 거야. 김영삼(YS)정부가 우선 없앴어. YS때 기조실장이 지방선거 때 한꺼번에 했는데, 판결은 대선자금 남은 것을 썼다고 했지만, 실제는 다른 예산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들어갔으니 1원 한장 청와대에 갖다 줄 수 있느냐고. 절대 불가능해. 노무현 정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절대 없어. 있을 수가 없어. 국정원장의 개인 특활비가 있어요. 거기서 한 200만 원 명절에 떡값 하라고 줬다가 그게 한 번 문제가 되었지만 그런 문제는 덮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1월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문희상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받고 있다. 문 의원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 수사를 만류했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1월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문희상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받고 있다. 문 의원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 수사를 만류했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 초기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그의 특활비가 월 1500만 원, 대통령은 1억 원이 청와대 예산으로 책정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내가 안 쓴다’고 했어요. 그걸 따로 모았다가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나중에 감옥에 갔죠. 정무수석ㆍ홍보수석은 500만 원씩, 나머지 수석은 300만 원, 비서관은 100만 원. 그런데 유인태 정무수석이 첫날 기자들과 술 마시면서 700만 원을 넘게 쓰고 온 거야. 그래서 내가 받은 돈 중에서 500만 원을 줬어요. 민정수석ㆍ홍보수석에게도 500만 원씩 나눠줬어요. 그랬더니 문재인 민정수석이 쪼르르 가서 노 대통령에게 이야기한 거야. ‘아니, 문 실장이 500만 원을 더 줍니다. 이게 뭡니까?’ 그래서 노 대통령이 불러모아 놓고 특활비 쓰는 원칙을 정했어요. 카드로 바꿨어요. 또 토를 달게 했어요. 밥을 먹어도 같이 먹은 사람 이름까지 쓰도록.”
김대중 정부 초기 왜 3개월도 안 돼 이강래 국정원 기조실장과 정무수석 자리를 맞바꾼 겁니까.
“두 가지 이유예요. 되자마자 바로 선거가 있었는데 졌어요. 정무수석이 책임을 져야지. 문제는 여소야대가 너무 심각해서 도대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상도동(YS)계와 개혁연대를 하자고 안을 냈죠. 내가 말할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신상우 국회 부의장, 서청원ㆍ홍사덕 의원과 거의 민주대연합 합의 각서까지 만들었어요. 그런데 김중권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TK(대구ㆍ경북)에 꽂혀 있었어요. 차기를 노리고. 그 양반이 (야당 의원) 낚시질을 시작하는 거야. 나는 대통령에게 ‘그건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뭐가 다르냐.’고 했어. 한 명씩 협박해 스물 몇 명을 데려왔어. 잘 넘어오더라고. 그러니까 나를 안기부(현 국정원)로 보낸 겁니다.”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가운데)이 2003년 5월 유인태 정무수석(왼쪽)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에는 이상수 전 의원. [중앙포토]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가운데)이 2003년 5월 유인태 정무수석(왼쪽)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에는 이상수 전 의원. [중앙포토]

개헌이 되겠습니까.
“국회가 합의만 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손을 댑니까.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고, 분권으로 가야 한다는 데 70% 이상이 찬성합니다. 그러니까 개헌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에서 불리할까 봐 미루려고 하고, 대통령과 민주당은 분권형에서 4년 중임제로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분권형은 이원집정제만이 아니라 4년 중임 대통령제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에는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것도 있지만,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는 ‘지방분권형’으로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능한 것만 먼저 하면 됩니다. ‘자유’를 뺀다고 자유민주주의가 없어집니까. 그런 건 쟁점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보수들이 말이야. 우리가 목숨 걸고 자유를 지키려고 감옥 갈 때 그들은 뭐 했습니까. 자유를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자유’를 이야기해.”
결국, 대통령 발의로 가나요.
“그렇게 되면 엉망이 되지. 반대하는 야당이 100명만 넘으면 안 되니까. 대통령이 발의하려면 야당이 묵인해주는 정도밖에 못 하지. 감사원을 국회 밑으로 옮기고 미국식 철저한 대통령제로 갈 수도 있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까.”
문 대통령이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본인은 관계없어.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제시했던 개헌안이 4년 중임제였는데, 거기 꽂혀계신 것 같아.”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 지역주의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이 선거제도, 그 연장에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4년 중임제라면 왜 바꾸어야 하죠.
“모든 혁명적 상황은 개헌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죠. 촛불 혁명에 대처할 헌법이 따르지 않으면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 초기 대통령 비서실장 때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한 게 아직 양측 간에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왜 수사하게 됐죠.
“(손사래를 치며) 아유, 나는 그 이야기만 꺼내면 할 말을 잃어버려. 운명같이 그렇게 되더라고. 뭐 안 하려고 해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으로. 나는 잘 화합시키려고 애를 많이 썼어. 정부가 5억 달러 생돈을 만들어 북한에 준 건 아니잖아요. 순전히 정주영 현대 회장이 마지막 인생을 걸고 북한에서 사업을 하기로 하고, 이권에 대한 선금조로 보낸 겁니다. 당장 현대에 돈이 없어 외환은행에서 대출하는 것을 박지원 의원이 도와준 거란 말입니다. 민심이 그것을 다 뒤지라는 쪽으로 가니까…. 결과적으로 그걸 받아도, 안 받아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되었어요. 그것에 준하는 다른 것이 협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거든….”
나중에 두 분이 화해했나요.
“서로 신뢰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사려가 깊어서, 무엇이 중한지를 알아. 현직 대통령과의 불화가 대북 문제에 결정적으로 해가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DJ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이 뭐냐 하는 현실주의자예요.”
문희상 의원은 배우 이하늬 씨의 외삼촌이다. 일본에서 '아쿠자 같다'고 한 문 의원과 너무 안 닮았다는 지적에 이씨는 "살이 찌면 외삼촌"이라고 한 TV 오락프로에서 말했다. [사진 MBC 라디오스타 캡처]

문희상 의원은 배우 이하늬 씨의 외삼촌이다. 일본에서 '아쿠자 같다'고 한 문 의원과 너무 안 닮았다는 지적에 이씨는 "살이 찌면 외삼촌"이라고 한 TV 오락프로에서 말했다. [사진 MBC 라디오스타 캡처]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을 뭐라고 생각합니까.
“간단해요. 가장 중요한 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죠. 최고 통치자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힘들어. 아무도 못 해요. 도리가 없어. 비서실장이 해야 해요. 대통령 임기 3년 차에 들어가면 모든 대통령이 ‘내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모든 정보를 독점하니까 ‘당신이 나보다 아는 게 없어. 그런데 왜 그래.’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대통령에게는 모두 굴절되어 올라와. 그러면 개들이 뛰게 ‘법치주의’가 나와. ‘공안통치’가 아니라 ‘법치주의’라고 그래. 조금 지나면 똑같아요. ‘역사와 대화하겠다’ 이런다고. 노무현 말기에도 그랬어요.”
반면교사로 아쉬운 점을 지적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은 후계자를 못 정했다는 것이죠. 김대중 정부가 체면이 서는 것은 노무현 정부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를 확실하게 이어줬기 때문이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단절이 된 겁니다. 그래서 역주행이 된 거야.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임기 말에 자기가 잘했어야 해. 그래야 저절로 이어지는데…. 전체를 적으로 돌렸으니까. 너무 외롭게 수동형 참모들로 둘러싸여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S BOX] 남영동 대공분실서 성수 없어 변기 물로 세례받아
‘겉은 장비, 속은 조조.’ 문희상 의원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평한다. 저돌적인 추진력과 지략을 모두 갖췄다는 말이다.
그는 서울 법대 2학년 때 6·3사태 주동자다. 아래 학년에 고(故) 조영래 변호사, 그 밑에 장기표 씨가 맥을 이었다. 이 때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도 임용이 안 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독대했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재야인사 김대중(DJ) 씨도 만났다. DJ는 예정된 15분을 넘겨 ‘지하 벙커’로 옮긴 뒤 45분간 3단계 통일론 등 철학 강론을 했다. 그는 거기서 “뻑 갔다”고 한다. 무릎을 꿇고 사부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그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생각은 DJ식으로 정리됐다. DJ는 뒷날 문 의원에게 “그날 보석 하나를 본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DJ는 ‘민주연합청년동지회’란 이름까지 지어주며 전국 청년 조직을 만들도록 그에게 지시했다. 30만 명을 모아 DJ의 핵심 조직이 됐다. 평민당의 깃발, 상징색이 모두 연청 것이다. 신군부가 정국을 장악한 뒤 그는 영화 ‘1987’에 나오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당했다. 박홍 신부도 신부복을 입고 들어와 쪼그려 뛰기 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문 의원은 여기서 서인석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수가 없어 변기 물로.

※이영현 사원이 녹취와 동영상 제작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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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