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런던 한복판엔 왜 노르웨이 성탄 트리가 70년째 서있을까
채인택 기자 사진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hae.intaek@joongang.co.kr

런던 한복판엔 왜 노르웨이 성탄 트리가 70년째 서있을까

중앙일보 2017.12.24 18:12
성탄 이야기 <하> 휘게의 나라 노르웨이가 왜 매년 영국에 성탄 트리를 선물할까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성탄 이야기 <하> 휘게의 나라 노르웨이가 왜 매년 영국에 성탄 트리를 선물할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성탄 트리. [flickr Chris Fay]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성탄 트리. [flickr Chris Fay]

 

도시에서 시각적으로 성탄절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대상이 성탄 트리가 아닐까요? 요즘은 대개 도시의 한가운데에 큰 규모로 성탄 트리를 설치하죠.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 도시의 시민에게, 또는 그 나라의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을 때 성탄 트리를 선물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성탄 트리를 감사의 선물로 다른 나라의 수도에 보내는 나라가 있습니다. 제1, 2차 대전이 끝난 뒤 참전으로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을 준 국가의 수도나 관련된 도시에 성탄 트리를 선물하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오늘날 ‘휘게의 나라’로 유명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는 1940년 4월 9일 독일의 공격을 받고 6월 10일 점령당했습니다. 독일군은 ‘베저위붕’, 즉 ‘베저강 훈련’이라는 암호명의 작전을 통해 속전속결로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하고는 “양국의 중립을 지켜주려고 왔다”라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노르웨이 정부의 도움 요청을 받은 영국이 원정군을 파견해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호콘 7세 국왕과 올라프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과 정부는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습니다. 4000여 명의 노르웨이 육군 장병이 탈출해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망명부대를 세우고 재정비를 했습니다. ‘노르웨이 전역’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영국은 6602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영국은 노르웨이의 사상자 1700명과 민간인 사망자 400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어려울 때 도움이 손길을 펼치는 친구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 것이죠. 노르웨이인들은 레지스탕스를 조직해 나치에 저항했습니다. 영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성탄 트리 아래에 이 트리의 유래가 적혀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시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웨이를 침공한 나치에 맞서 함께 싸웠고 점령기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1947년부터 성탄 트리용 전나무를 매년 기증하고 있다. [flickr Razlan]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성탄 트리 아래에 이 트리의 유래가 적혀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시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웨이를 침공한 나치에 맞서 함께 싸웠고 점령기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1947년부터 성탄 트리용 전나무를 매년 기증하고 있다. [flickr Razlan]

 
그 뒤 2차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끝나고 노르웨이는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손에 해방이 됐습니다. 5년 동안 나치에 점령당해 혹독한 시절을 보냈던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주민들은 전쟁 당시 영국의 참전과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에 대한 지원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성탄 트리에 쓸 노르웨이 전나무를 하나씩 잘라 영국의 수도 런던의 시민들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1947년에 시작된 이 전통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년 노르웨이에서 선물용 전나무를 골라 벌목하는 현장에는 영국 런던의 대표가 참석합니다. 런던은 매년 12월 1일 성대한 기념식과 함께 런던 한복판의 트라팔가르 광장에 이 전나무를 세우는 행사를 엽니다. 이 자리에는 오슬로 시장이 참석합니다. 전나무는 멋지게 장식돼 성탄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희생과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한 겨울 내내 런던 시민에게 전달되는 셈입니다. 노르웨이는 매년 미국 워싱턴DC에도 같은 의미로 감사의 성탄 트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참전으로 2차대전에서 나치를 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영국 런던 중심지 트라팔가르 광장의 성탄 트리. 1947년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시가 기증한 전나무를 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노르웨이에서 나치에 맞서 싸웠고 점령기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70년째 하고 있다. [flickr dhcomet]

영국 런던 중심지 트라팔가르 광장의 성탄 트리. 1947년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시가 기증한 전나무를 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노르웨이에서 나치에 맞서 싸웠고 점령기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70년째 하고 있다. [flickr dhcomet]

노르웨이의 베르겐은 매년 영국의 뉴캐슬어폰타인에 시청 앞을 밝힐 공공 성탄 트리를 선물 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 출신으로 구성된 영국군 부대가 나치로부터 베르겐을 해방한 인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국에는 육군 부대에 도시나 주 이름을 붙이고 주로 그 지역에서 징집한 병력으로 부대원을 구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국은 전시에만 징집하기 때문에 도시나 지역 이름이 상징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6·25전쟁 당시인 1951년 4월 22~25일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에서 벌어진 ‘설마리 전투(영국에서는 임진강 전투(Battle of Imjin River)라고 합니다)’에서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원들은 소수의 벨기에군과 필리핀군과 함께 몰려드는 중공군에 맞섰습니다. 중공군의 서울 재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 141명, 벨기에군 12명, 필리핀군 5명이 전사했습니다. 영국군은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522명의 글로스터 대대원 전원이 포로가 됐습니다. 이들은 마지막 한발의 총알까지 남김없이 다 쏘고 심지어 기상나팔조차 적이 불지 못하도록 부숴버렸습니다. 이런 영국군을 본 중공군은 전의를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 뒤 중공군은 다시는 서울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글로스터 대대는 지금은 해체됐지만, 그 기반이 된 글로스터셔는 영국의 행정구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도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 성탄 트리의 야경. [flickr Raphael Chekroun]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 성탄 트리의 야경. [flickr Raphael Chekroun]

 
미국 보스턴은 매년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주로부터 성탄 트리를 선물 받고 있는데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 주의 핼리팩스라는 항구에서 탄약을 싣고 있던 선박이 폭발하면서 도시가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항구 도시 보스턴이 나서서 신속하게 구조와 지원을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합니다.  
 
심하게 전화에 시달린 도시에 위로의 뜻으로 성탄 트리를 보낸 경우도 있습니다. 1918년 1차대전이 끝난 뒤 영국 맨체스터가 전쟁 당시 심각한 포격을 받은 릴에 성탄 트리와 어린이를 위해 초콜릿과 케이크를 살 돈 500파운드를 보냈습니다. 성탄 트리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희망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했겠지요.  
 
 
미국은 1923년부터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국가 성탄 트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불행이 있을 때는 성탄 트리는 세우되, 불을 끈 적이 있었습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집권기인 1979년 당시 이란대사관에 잡혀 있던 미국인 인질들을 생각하며 트리 맨 위의 별 하나만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심정을 나타낸 셈입니다.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이 시작되던 당시 이란인들이 미국 대사관의 담을 넘어 들어가고 있다.[중앙포토]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이 시작되던 당시 이란인들이 미국 대사관의 담을 넘어 들어가고 있다.[중앙포토]

이란에선 1979년 1월 이슬람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전국이 시위에 휩싸이자 전제정치를 펴던 군주 팔라비(서구에서는 팔레비라고 함) 샤가 해외로 망명했습니다. 2월에는 종교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망명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해 과도 정부를 무너뜨리고 6월 신정체제의 이슬람 공화국을 출범했습니다. 대학생을 비롯한 이란 청년들은 1979년 11월 수도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인질은 모두 66명이 이르렀습니다. 미국이 팔라비 정권을 지지했다며 벌인 사건입니다. 새로 출범한 이슬람 정권은 외세 배격을 내세웠는데요. 미국은 모든 외세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번째로 맞았던 1980년의 성탄절에는 그때까지 417일간 잡혀있던 인질들을 생각하며 417초 동안만 트리 전체에 불을 밝히고는 다시 그 전해처럼 전등 하나에만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미국 백악관의 1983년 성탄 트리. [중앙포토]

미국 백악관의 1983년 성탄 트리. [중앙포토]

 
남은 인질들은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일에 모두 풀려났습니다. 그해 12월 백악관의 성탄 트리는 비로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 백악관의 성탄 트리는 국민의 마음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탄 트리를 메시지를 전하는 미디어로 활용하는 경우들입니다. 
 
 
 
배너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구독하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