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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그해 5월 택시운전사와 그의 아들

중앙일보 2017.12.23 01:00
고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가 2017년 9월 11일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기 전에 인사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가 2017년 9월 11일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기 전에 인사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김사복씨와 그의 아들 김승필씨다.
 
김사복씨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이다.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다.
 
그의 아들 김승필씨를 만난 건 지난 9월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3일간 동행 취재할 때였다.
 
일정 중에 영화 관람이 있었다.
 
그날 본 영화가 ‘택시운전사’였다.
 
영화 관람 전에 진행자가 내빈을 소개했다.
 
내빈 소개가 끝났을 때 슈뢰더 전 총리가 갑자기 손을 들더니 말했다.
 
“여기 꼭 소개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빠진 것 같습니다.
 
그는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씨입니다.”
 
총리의 소개에 김승필씨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총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이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어 두었던 그 사람이 김사복씨의 아들이었던 게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총리가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고 총리에게 부탁했다.
 
“김승필씨와 기념사진 한 장 찍으시죠.”
 
부탁을 듣자마자 총리가 수행원들을 헤치고 나왔다.
 
그렇게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김승필씨와 인연이 이어졌다.
 
다시 만난 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정신 차려 보니 입 닫고 산 세월이 부끄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를 묻고 살아온 스스로가 부끄러웠노라 고백부터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갑자기 제가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먹고사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간경화가 있어 술을 끊었는데 광주에 다녀온 후 술을 다시 입에 대셨습니다.
 
그러다 간암으로 진행되어 돌아가셨습니다. 광주에 다녀온 지 4년 만이었습니다.”
 
“아버님이 광주에 다녀온 걸 아드님은 알고 있었나요?”
 
“그럼요. 알고 있었습니다. 광주에 두 번 가셨습니다.
 
처음 다녀온 후, 하루 쉬고 다시 가셨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온 분이 그곳을 하루 만에 다시 간다는 건
 
절대 돈 때문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가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죠.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당시 일본 특파원이었으며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습니다. 당시 저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저를
 
힌츠페터에게 데려가 광주에서 찍어 온 영상을 보여 줬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입도 벙긋 못할 만큼 암울한 시절이라 입 닫고 살았습니다.”
 
“입 닫고 산 세월이 부끄럼이 되었다”는 고백의 의미가 와 닿았다.
 
보고도 못 본 듯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이
 
당신의 아버님이라고 처음 밝혔을 때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렵사리 찾아낸 사진 한 장으로 증명이 되었다.
 
1975년10월3일, 장준하 선생 실족한 포천 약사봉 답사현장 사진.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 기자가 나란히 앉아있고, 사진 왼쪽편에 흰옷에 흰머리의 함석헌 선생이 앉아있다. [김사복의 아들 김승필 제공]

1975년10월3일, 장준하 선생 실족한 포천 약사봉 답사현장 사진.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 기자가 나란히 앉아있고, 사진 왼쪽편에 흰옷에 흰머리의 함석헌 선생이 앉아있다. [김사복의 아들 김승필 제공]

사진은 장준하 선생이 실족한 포천의 약사봉 답사현장에서
 
1975년 10월 3일 찍은 것이었다.
 
힌츠페터 기자와 김사복씨,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가 마지막 바람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재조명하고 추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그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게 제 소임인 것 같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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