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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꽃 같은 누님

중앙일보 2017.12.09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정미조

정미조

눈 내린 새벽 사진 촬영을 마치자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떠올랐다.
 
근처 국밥집으로 들어서자 젊은 직원이 15분 후에 오픈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식당엔 귀에 익은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김소월의 시를 노래한 ‘개여울’이다.
 
정미조 선생의 목소리이겠거니 하고 들었다.
 
그런데 정 선생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젊은 시절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자못 궁금했다.
 
‘개여울’이 끝나자 다시 그 ‘개여울’이 반복해서 나왔다.
 
젊은 직원이 식당 오픈 준비를 하며 반복해서 듣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그에게 누구 목소리인지 물었다.
 
"아이유 목소리입니다. 개여울이란 노래이고요.”
 
그랬다. 정미조 선생의 노래를 아이유가 부른 것이었다.
 
그 덕에 정 선생의 근황을 검색했다.
 
지난달 12번째 정규 앨범 ‘젊은 날의 영혼’을 내놓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정미조 선생을 만난 게 지난해였다.
 
사진을 찍기로 한 날, 아침 생방송에 정 선생이 등장했다.
 
그간 어찌 살았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고 싶었기에
 
출근을 미루고 방송을 들었다.
 
37년 만의 복귀라고 했다.
 
가수를 그만두고 파리로 그림 유학을 간 이유가 자유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유학과 공부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노래 ‘귀로’를 들려줬다.
 
정미조

정미조

가사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
 
그렇게 돌아온 것이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회사로 내달렸다.
 
택시 안에서 ‘자유, 고독, 귀로’ 세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튜디오로 온 정 선생에게 물었다.
 
"오늘 사진의 주제를 어떻게 잡을까요?”
 
"어휴! 알아서 해주세요.”
 
"아침 방송을 막 보고 왔는데요. ‘자유, 고독, 귀로’ 중에 어떤 거로 하시겠어요?”
 
"귀로가 타이틀 곡이니 귀로가 좋겠네요.”
 
"거울을 보시는 모습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네요.”
 
"하하, 37년 만에 핀 꽃인가요?”
 
"아 그거 좋네요. 37년 만에 핀 꽃”
 
그렇게 사진 주제가 정해졌다.
 
그 순간 정 선생의 스카프가 눈에 들어왔다.
 
얼룩얼룩한 문양이 물봉선화의 꽃잎처럼 보였다.
 
"선생님! 목에 두른 스카프를 머리고 두르고 사진을 찍는 건 어떻습니까?”
 
"머리에 두르기는 너무 화려하지 않나요?”
 
"저는 화려해서 오히려 꽃잎으로 보이네요.”
 
그렇게 사진 촬영을 마쳤다.
 
그 당시 정 선생의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입니다. 그럴수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죠.
 
제가 노래를 다시 한다고 스타가 되겠습니까, 돈을 더 벌겠습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 뿐입니다. 저 사막의 낙타처럼요.”
 
그렇게 피운 37년 만의 꽃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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